19세기 유물 '운하' 건설은 무식한 건설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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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물 '운하' 건설은 무식한 건설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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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라인-도나우 운하와 라인-론느 운하에 대한 분석

 
   
  ^^^▲ 운하와 라인-도나우 지도
ⓒ 내셔널 지오그래픽 ^^^
 
 

라인-도나우 운하와 라인-론느 운하

열차가 등장하기 전에 주운(舟運)은 물자를 옮기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알프스에서 발원해서 각기 서북쪽과 동남쪽으로 흘러 북해와 흑해로 흘러가는 라인강(江)과 도나우강(江)은 유럽에 있어 혈관과 같은 존재였다. 따라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라인과 도나우를 상류에서 이을 수 있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라인과 도나우가 가장 가까이 있는 부분은 라인의 상류 지천인 마인강(江)과 도나우의 상류 지천을 잇는 것이었다. 이런 발상은 서기 793년 샤를마뉴 황제가 처음으로 했다. 샤를마뉴 황제는 라인과 도나우의 작은 지천 사이의 5천 야드를 파서 인공물길을 만들면 라인과 도나우가 이어져서 2000마일의 물길이 생길 것으로 생각했다. 황제는 군대를 동원해서 8피트 깊이의 도랑을 건설하도록 했다. 그러나 많은 비가 내리는 등 공사는 쉽지 않았다. 더구나 다른 문제가 많이 생겨서 공사 착공 2개월만에 포기하고 말았다.

1837년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1세는 라인의 지류인 마인강의 최상류 지점인 뱀버그와 도나우의 최상류 지점인 켈하임 사이에 항해할 수 있는 도랑, 즉 운하를 건설하도록 했다. 12년 간의 공사를 거쳐 1845년에 완공된 이 운하가 루드비히 도나우-마인 운하(Ludwig Donau-Rhein Canal)이다.

그러나 루드비히 황제의 야심에 찬 이 운하는 기대만큼 역할을 하지 못했다. 운하는 깊지 못했고 갑문의 폭은 16피트에 불과해서 바지가 싣고 온 화물을 폭이 좁은 보트에 옮겨 실어야 했다. 무려 100개나 되는 갑문이 있어서 운하 통과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더구나 그 때에는 이미 철도가 유럽에 부설된 후였다. 운하를 이용하는 보트는 줄어들었고, 운하는 주변 마을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하이킹을 가는 장소로 변질되고 말았다. 운하는 실패한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21년 독일 정부는 바바리아 주정부와 함께 라인-마인-도나우 회사(Rhein-Main-Donau AG : RMD사)를 설립해서 방치되다시피 한 운하를 확장하도록 했다. 2차 대전으로 인해 활동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이 회사는 라인과 도나우의 항해로를 개선하고 50여 개의 수력발전소를 세웠다.

라인과 도나우를 잇기 위해서는 밤버그(Bamberg)와 켈하임(Kelheim) 사이를 인공수로로 연결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 공사는 1971년에야 시작될 수 있었다. 171Km에 달하는 운하는 루드비히 황제가 파놓았던 운하를 거의 따라 갔지만 평지를 따라 우회한 루드비히의 운하와 달리 새 운하는 해발 406미터의 고지를 넘도록 되었다. 고도 차이를 극복하고 항해를 할 수 있도록 11개의 갑문을 세워야만 했다. 운하는 1992년 9월25일에 개통되었으니, 샤를마뉴 황제의 꿈이 1200년 만에 이루어 진 것이다.

 

 
   
  ^^^▲ National Geographic August, 1992라인-마인-도나우 운하 개통 직전에 운하를 취재한 기사 첫장 이미지
ⓒ 내셔널 지오그래픽 ^^^
 
 

내셔날 지오그래픽 1992년 8월호 기사

1991년 8월호 내셔날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은 라인-마인-도나우 운하 개통 직전에 운하를 취재한 기사를 실었는데, 운하에 대한 찬성과 반대 입장을 중심으로 그 내용을 소개하기로 한다.

운하에 대하여 긍정적 평가를 한 사람들은 모두 운하를 건설하고 운영하고 있는 RMD사 직원들이었다. 뮨헨에 있는 이 회사의 국장인 한스 피터 자이델(Hans Peter Seidel)은 “70년이란 오랜 세월을 거쳐 꿈이 이루어 졌다”면서, “벌크 화물을 수로(水路)로 운송하는 것은 값싸고 깨끗하며 에너지 면에서도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와 함께 일하는 젠스 프리제(Jens Friese)는 운하가 지역경제를 발전시키고, 홍수를 통제하며, 물이 풍부한 남부 바바리아로부터 물이 부족한 북부 바바리아로 물을 이전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고, 물이 풍부한 도나우의 물을 물이 부족한 마인 강으로 이전시켜 마인 강의 오염을 희석시키고, 운하 주변에 위락 편익을 증진시킨다고 주장했다.

운하에 대해선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환경파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고, 지나친 비용이 들어가서 경제성이 없다는 비판도 많았다. 1982년에 독일 중앙정부는 신규공사에 소요되는 비용을 대기를 중단했다. 하지만 젠스 프리제는 “운하공사를 한번 시작했으면 중간에 그만 둘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에는 공사를 계속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후 기민당의 헬무트 콜 정부가 들어서서 공사를 계속하기 위한 예산이 지원되어 공사를 완수할 수 있었다.

라인강에서 올라가는 운하는 정상(頂上)을 넘어서 아름다운 알트뮐(Altmuehl) 계곡을 바라보며 내려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내려본 경치는 장관(壯觀)을 이룬다. 원래부터 알트뮐 계곡은 자연풍광이 대단히 아름다운 곳이다. 알트뮐 계곡을 바라보면 내려가는 운하 구간의 경관 설계는 라인하르트 그레브(Reinhard Grebe)라는 조경건축가가 설계했다. 그는 20명의 팀을 구성해서 20년 동안 가장 어려운 운하구간을 설계하는 작업을 했다.

그레브는 원래 계획은 운하를 직선으로 건설할 예정이었으나, 그렇게 하면 자연파괴가 너무 심해서 자연의 모습을 살리는 방식으로 설계했다고 회고했다. 특히 2차 대전 때 공습으로 파괴된 루브비히 운하를 그대로 두어 새 운하의 옆에 바이오 톱(bio-top : 자연상태가 그대로 보존되는 지역을 의미함)이 이루어지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레브는 1970년대 초에는 환경생태를 중시하지 않았지만 그의 설계 팀은 자연을 다소나마 고려해서 설계했다는 데 대해 자부심을 갖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레브는 운하에 대해 깊은 불안을 표시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나는 운하가 세워지지 않았던 것이 나았다고 본다. 비록 우리는 훌륭하게 일을 해 냈지만 아름답고 작은 하천과 작은 운하가 있던 곳에 큰 운하를 건설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종종 나는 나 자신을 책망한다. 우리가 이렇게 좋은 설계안을 마련하지 않았더라면 운하는 세워지지 않았을 것이었으니 말이다.”

고도(高度)가 높은 운하는 기온이 내려가면 얼음이 두껍게 얼어서 쇄빙 보트가 얼음을 깨어야 바지가 다닐 수 있다. RMD사의 현장소장인 에른스트 라인홀드(Ernst Reinhold)는 “조경에만 지금까지 2억8천만 마르크(미화 1억7천8백만 달러)를 지출했다”고 말했다. 운하건설은 지역사회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 면도 있다. 운하 구간인 알테싱 마을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피터 얼이라는 사람은 “RMD사가 낡은 다리를 새로 보강하는 등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

갑문은 운하 건설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11개의 갑문은 각기 길이가 625피트, 폭이 40피트, 그리고 최고 수심이 100피트에 달한다. 대단히 큰 규모이지만 최근에 건조된 바지는 길이가 200야드, 폭이 38피트나 돼서 갑문을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다.

라인-마인-도나우 운하에 대해서 매우 신기한 점은 어느 누구도 운하 건설에 돈이 얼마나 들어갔는지를 정확히 모른다는 사실이다. RMD사의 한스 피터 사이델은 1921년 이후 들어간 돈이 대충 70억 마르크(42억 달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921년의 화폐는 구매력으로 볼 때 현재의 화폐보다는 훨씬 크기 때문에 과연 지금의 화폐 기준으로 얼마가 될지는 모르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독일 정부가 70년 간에 걸쳐 무이자로 제공해 준 융자가 이자를 포함할 경우 실제로 얼마나 되는 지를 계산해 본 사람도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 운하가 결코 건설비용을 뽑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운하가 시작되는 뉘른베르크에 위치한 에어랑겐-뉘른베르크 대학의 오이겐 비르스(Eugen Wirth) 교수는 1952년 이후의 독일의 수상 운송에 대해 연구를 해오고 있었다.

교수는 수상 주운(舟運)이 독일의 수송 네트워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라인-마인-도나우 운하는 그렇지 않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운하는 완전히 필요 없는 것입니다. 아주 기가 막힌 바보짓이지요. 북해와 흑해를 잇는 수상 루트가 이미 있다는 것을 잊었던 것입니다. 북해와 흑해는 지중해와 대서양을 통해서 이미 연결되어 있거든요. 바다를 가는 화물선을 이용해서 화물을 나르는 것이 열 배나 싸게 듭니다. 배는 운하를 가는 바지보다 열 배나 크고 더 빨리 항해합니다. 바지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지점인 파사우(Passau)까지 가는데 50개의 갑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라인-마인-도나우 운하 구간에서 바지는 시속 11Km 밖에 갈 수가 없어요. 운하를 통해 북해에서 흑해를 가기 위해선 23일에서 30일이 걸리지만, 바다를 통하면 6일이 걸립니다. 운하에 경제성이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

비르스 교수는 운하가 경제성을 가지려면 매년 2200만 톤 내지는 2700만 톤의 화물이 지나가야 하는데, 1980년대 중반에 RMD사는 1100만톤의 화물이 다닐 것으로 예측했었다고 지적했다. 비르스 교수는 300만 톤이 보다 현실적인 예측이었는데, RMD사는 그 후에 화물량에 대한 비공식적 예측을 내는 것도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비르스 교수는 동유럽 국가에서 공산정권이 무너진 후 혼란이 계속되고 있고, 서유럽은 식량이 남아서 외부로부터 곡식을 수입할 일도 없기 때문에 운하를 통해 수송할 화물이 없다고 말했다.

환경주의자들도 운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아이스테트 가톨릭대학의 물리지리학 교수인 클라우스 기스너(Klaus Giessner)는 RMD사가 많은 돈을 들인 조경사업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는 “외관적으로 조경사업은 근사하게 보인다. 하지만 자연의 다이나믹은 파괴되었고 회복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기스너는 운하가 가져다 주는 부수적 혜택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의문을 제시했다. “북쪽으로 물을 공급하는 것은 작은 파이프라인으로도 가능하다. 그것 때문에 거대한 운하를 건설할 필요는 없다. 수질오염이 희석된다고 하는데, 수질오염은 물로 희석하기보다는 오염물질 자체를 처리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바바리아 주에서 환경운동을 하는 피터 헤르(Peter Herre)는 운하로 인해 24종의 동식물이 멸종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 운하를 건설하는 모습환경을 파괴하며 운하를 건설하고 있다
ⓒ 내셔널 지오그래픽 ^^^
 
 

홍욱희 박사의 평가

환경학자로서 유럽을 두루두루 살펴 본 홍욱희 박사는 라인-마인-도나우 운하를 건설한 독일의 경험은 경부 운하가 도무지 말이 안 되는 것임을 잘 보여 준다고 첨단환경기술 2006년 11월호에서 주장했다. 홍 박사의 글을 쉽게 접할 수 없는 독자들을 위해 중요한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 괄호 안의 설명은 필자의 것이다.)

RMD 운하는 1차 세계대전 직후에 시작되었는데, 우선 세 강의 각기 다른 고도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수십 개의 갑문을 건설했다. 라인강의 지류인 마인 강에 특히 많은 갑문이 만들어 졌다. (* 운하로 연결하기 전에 기존의 하천에 갑문을 많이 건설해야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마인과 도나우를 잇는 마지막 운하 연결부분 공사는 1971년에 시작되어 1992년에 완공되었다. (* 이 운하의 길이는 171Km로 낙동강과 한강 사이를 잇는 경부 운하 구간 거리와 비슷하다.)

운하 건설의 타당성에 대해선 건설 전부터 많은 회의론(懷疑論)이 있었는데, 운하가 건설되고 1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런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운하 건설과 운영에 경제성을 달성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운하를 통과하는 화물의 양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2000년대 들어서는 화물운송에서 얻어지는 이익금이 연간 운하관리 비용의 약 7%에 불과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 건설비는 몽땅 날려 버린 셈치고 연간 운영비의 7% 정도를 화물운송에서 회수한다는 의미이다.)

최근 들어 관광 붐에 따라 유람선 통과가 늘고 있지만 경제성에서 말한다면 대실패인 것이다. 독일의 교통장관을 역임했던 하우프(V. Hauff)는 RMD 운하를 두고 “바벨탑 이후에 인류가 저지른 가장 무식한 건설사업”이라고 혹평했다.

RMD 운하를 착공할 1971년만해도 유럽의 산업은 중공업 중심이라서 석탄, 시멘트, 철강 등 원자재 운송이 필요했지만 철도 고속도로 등 육상교통이 그러한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러나 운하를 건설하던 20년 동안 육상교통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철도가 고속화되었고, 그리고 고속도로가 전 유럽에 거미줄처럼 깔리게 되었다. 게다가 중공업이 쇠퇴함에 따라 화물 물동량 자체가 감소하는 추세에 접어들었다. 이렇게 해서 RMD 운하의 가치는 해를 거듭할수록 감소하게 된 것이다.

라인강 하구의 로테르담을 출발한 바지가 라인 강을 거쳐 올라가서 운하를 거쳐 도나우 강을 타고 내려와서 흑해에 면한 루마니아의 부쿠레시티에 이르는 항해는 약 12일이다. 반면 로테르담을 출발한 큰 화물선이 대서양과 지중해를 거쳐 흑해에 이르는데는 약 25일이 걸린다. (* 화물선은 운하를 통과하는 바지선 보다 10배는 크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내셔날 지오그래픽 기사는 운하 통과시 23일 내지 30일이 걸리고, 바다로 돌아갈 경우에는 6일이 걸린다고 했다. 필자 생각으로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계산이 맞는 것 같다.) 로테르담을 출발한 트럭이 루마니아 부쿠레시티에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일 정도이다.

유럽의 경우와 우리나라의 경우를 비교해 본다면, 경부운하를 건설할 필요성은 라인과 도나우를 잇는 운하를 건설할 필요성에 절대적으로 못 미친다. 운하라는 것은 그 연장선의 길이가 길수록 유용성이 곱절로 더 커지는 속성을 갖고 있다. (* 라인과 도나우를 잇는 운하가 건설되어 총 3,500Km의 물길이 생겼지만, 거의 같은 거리의 경부 운하를 건설해도 부산과 인천 사이의 물길은 불과 500 Km에 불과해서 비용에 비해 효과가 미미하다는 의미이다. 또한 라인과 도나우는 전부터 주운(舟運)에 이용되어 왔지만 우리나라의 낙동강과 한강은 60년대 이후 수상운송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고속도로를 꾸준히 건설해 왔고, 그로 인해 물류혼잡비용이 감소하는 추세에 들어갔다. 특히 지난 10여년 동안 고속도로 총 연장이 두 배로 증가했다. 이명박씨가 구상하고 있는 경부운하의 노선은 중부내륙고속도로와 거의 일치한다. 또한 운하건설로 인해 내륙 도시가 발전한다고 하나 과연 그런 발전을 기대할 만한 도시가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게다가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는 겨울이 춥고 강수량은 여름 한철에 집중되어 있다. 홍수가 들면 운하 항해가 불가능 해지고 10월에서 3월에 이르는 갈수기에는 역시 항해가 불가능해 질 것이다. 한 겨울에는 강물이 얼어붙을 것이다. 특히 낙동강 중상류부는 우리나라에서 특히 비가 적은 지역으로 갈수기가 길다. 따라서 낙동강에는 하천 가운데에 수로를 깊게 다시 건설해야 할 것이나, 그렇게 건설한 하천 속 수로가 홍수기에 견딜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 라인 론느 운하 취소한 기사운하는 유럽에서 다시는 건설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 내셔널 지오그래픽 ^^^
 
 

라인-론느 운하 건설계획 취소

라인과 도나우를 잇는 것이 독일의 꿈이었다면 라인과 론느를 잇는 것은 프랑스의 꿈이었다. 프랑스 중부에서 시작해서 남쪽으로 마르세이유로 흘러 지중해로 들어가는 론느 강의 상류를 라인 강과 이으면 북해와 지중해가 물길로 이어지는 것이다.

1997년 6월 프랑스의 조스팽 총리는 라인-론느 운하 계획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환경적 희생이 너무 크고, 경제성도 의심스럽기 때문이었다. 이 발표는 상당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공사 시작을 앞두고 계획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 변화는 총선에서 좌파와 녹색당 연합이 승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운하 건설을 위해서 설립한 론느 운하회사(CNR)은 이미 매수한 토지 1000 헥타르를 다시 돌려주거나 매각 해야만 했다.

운하 계획을 취소하기로 한 것은 이 운하를 건설하기 위해선 24개의 갑문이 필요해서 건설비용도 많이 들고 항해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로테르담에서 라인강을 거쳐 운하를 거쳐 론느 강을 통해 마르세이유까지 가는 것보다 로테르담을 출발해서 대서양 연안을 항해해서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지중해로 들어와서 마르세이유로 입항하는 것이 훨씬 빠르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 인천에서 부산으로 바다를 통해 오는 것이 경부 운하를 거치는 것보다 훨씬 빠른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운하가 건설될 구간에 철도를 부설하는 데는 4500만 달러가 소요되는데 비해 운하 건설에는 최소한 9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이 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었다. 운하가 건설될 215Km 구간은 매우 아름답고 평화로운 고장이다. 주민들도 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를 자주 벌였다. 1997년 3월에는 운하가 건설된 지역인 몬트벨라드에서 1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게다가 1992년에 개통된 RMD 운하가 계속 적자를 냈다는 소식도 프랑스 정부가 운하 계획을 포기하게 된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이로서 운하는 유럽에서 다시는 건설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 박 대통령 경부고속도록 건설현장 시찰(좌)과 항상 철저히 계획하며 메모하는 모습(우)댐과 고속도로는 자연을 훼손하는 측면이 있지만 그 혜택과 경제성은 대단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댐을 세워 물길을 차단하고, 또 고속도로를 국토의 동맥으로 삼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 뉴스타운^^^
 
 

맺는 말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한가지 큰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RMD 운하를 직접 보고 온 우리나라 기자들의 보도, 그리고 RMD 운하를 홍보하러 서울에 온 독일의 관계자들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 드려야 하는가 말이다.

세미나나 현지 시찰에 있어 중요한 포인트는 누가 그 비용을 부담했나 하는 점이다. 만일에 그런 비용을 운하를 추진하는 측에서 댔다면 그런 세미나나 시찰에서 나오는 정보는 객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어떤 대학이 경부운하가 타당성이 있다는 연구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사실도 독자 여러분은 잘 알 것이다. ( 그 대학이 MIT도 아니고 스탠포드도 아니라는 점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새만금 간척, 경부 고속전철, 청주 국제공항 등도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는 보고서가 나온 후에 시작했다. 이 사업들의 결말이 어떤지는 독자 여러분들이 잘 알 것이다.

어떻게 본다면 이런 보고서를 작성하는 연구자들은 르네상스 미술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가들은 교회와 왕족이 요구하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바티칸의 시스틴 성당 천정에 그려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도 그런 것이다.) 보고서란 돈을 대는 사람의 의중을 헤아려서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다.

자기 돈을 써야 하는 기업은 그런 보고서를 믿고 덥석 사업을 벌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치인들을 그런 일을 저지른다. 정치인들은 자기 돈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 전에 타계한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만은 모든 공공사업을 민영화 해야만 정직하고 효율적인 사회가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고속도로를 건설해서 산업화 시대를 열었으니, 이제는 운하를 건설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한마디 해야겠다.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수문(水文)환경을 고려해서 큰 강에 다목적 댐을 세워서 치수(治水)와 이수(利水)를 해결했다.

또한 박 대통령은 간선 교통수단으로 고속도로를 선택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나라는 큰 강마다 다목적 댐이 있고 고속도로가 거미줄 같이 쳐져 있는 것이다.

댐과 고속도로는 자연을 훼손하는 측면이 있지만 그 혜택과 경제성은 대단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댐을 세워 물길을 차단하고, 또 고속도로를 국토의 동맥으로 삼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고속도로가 거미줄처럼 쳐져 있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가 쏟아내는 트럭이 널려 있는 이 시대에 ‘19세기의 유물(遺物)’인 운하를 다시 건설하겠다는 것은 상식선에서 판단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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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자 2006-11-30 01:31:02
이명박의 허구성과 표률리즘이 한눈에 보이는 군요.
이상돈 교수님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에 교수님 같은 지식인들이 많았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감사드립니다.


시민기자 2006-11-30 01:32:29
그래 명박이 니돈으로 한번 공사해 봐라!!!
국민의 혈세를 쌈지돈이나 눈먼 돈으로 보면 천벌을 받는다.

경부운하의 문제점이 확실하게 보입니다.


익명 2006-11-30 01:35:01
이 글 한방에 이명박씨는 정치 생명이 끝나는 군요.
이상돈 교수 정말 애국자 하는 지성인 입니다.

이렇게 국가를 위해서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에 미래가 보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잘못하였으면 또 엉터리 대통령을 뽑을뻔 했습니다.


이충식 2006-11-30 13:04:06
정말 좋은 자료입니다.
대한민국의 애국심을 가진 진정한 지성인을 만난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이 퍼 나르겠습니다.


익명 2006-11-30 13:05:33
감히 박정희 대통령을 흉내내는 정치인들은 이제 스스로 사기꾼임을 말하는 것이다.
제발 정신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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