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일찌기 인디안을 잡아죽이는데서 악명을 떨친 식인종의 후예들이며 침략과 정복, 살륙과 략탈을 도락으로 여기는 미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광주인민봉기를 계기로 미제와 남조선파쑈도당에 대한 남조선인민들의 쌓이고쌓인 울분은 폭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미제는 광주의 봉기자들을 무쇠주먹으로 진압해야 한다고 하면서 파쑈살인마들에게 남조선강점 미군사령관휘하의 남조선군 사단들과 기갑부대를 떼넘겨주어 살륙작전을 배후조종하였다.
1996년 2월말 남조선《련합뉴스》의 전신인 《련합통신》에 의하면 광주사태때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 사령관으로 있었던 윅캄은 한 공식석상에서 당시 자신이 남조선군 20사단의 《광주투입을 승인》했다고 실토하였다. 그리고 1997년 5월 어느날 남조선의 《제1라지오》 워싱톤특파원이 전한데 의하면 당시 서울주재 미국대사 글레이스틴은 미국무성에 보낸 전문에서 미국은 남조선당국이 《광주에서 군병력을 사용하도록 하는데 동의하였다》고 한다.
미국신문 《져널 오브 코미스》 1996년 2월 27일부가 전한데 의하면 남조선인민들이 벌리던 반파쑈민주화투쟁이 봉기에로 발전할것을 감촉한 서울주재 미국대사는 광주인민봉기가 터지기 10여일전인 1980년 5월 7일 미국무성에 보낸 비밀전문에서 남조선군부를 사촉하여 시위진압경찰무력을 군병력으로 증강 또는 교체할 의도를 밝혔다. 그리고 이틀후인 5월 9일에는 자기의 이러한 의도를 미행정부가 승인하였다는것을 남조선당국에 직접 통보하였다.
광주사태의 목격자들인 미국《평화군》 성원들은 광주인민봉기가 한창일 때 미8군소속 직승기들이 광주상공에 나타나 주민들이 모인 장소들에 기총사격을 가했다고 폭로한바 있다.
이상의 사실자료들만 보아도 광주대학살만행의 장본인이 미국이라는것을 명백히 알수 있다.
피의 수난과 시련의 력사를 통하여 미제의 침략적본성과 야수성을 깊이 깨닫고 광주의 참변을 통하여 자기들의 투쟁의 과녁을 똑똑히 알게 된 남조선인민들이 미제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키고있는것은 당연한것이다.
쯥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