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여자가 공부는 해서 무엇 하느냐고 했다. 집안에 남자들은 모두 어떻게든 학교에 보내 주었지만 여자는 그 반대로 했다. 누나 역시 초등학교를 마치고 나자 아버지가 한문을 손수 가르쳐 준 것이 전부다.
"시집이나 잘 보낼 생각이나 하여,"
"한글이라도 깨우쳐야지요,"
"그건 배워서 뭣해, 언문 배운다고 누가 밥 먹여 줘,"
딸아이는 무조건 시집이나 보내면 된다고 했다.
엄마는 아버지를 설득하여 그나마 초등학교를 다니게 하고 한글을 익혔다. 누나는 그것이 응어리져 있었다. 여자라고 가르치지 않아서 고생만 한다고 믿었다. 배운 것이 짧기는 매형도 마찬가지였다.
농사일만 한 손은 쇠스랑 같았다. 신부는 모든 것을 힘들어하며 부엌에서 눈물을 짜냈다.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하는 거여,"
"친정에 올 생각은 아예 말어."
"싫으면 못사는 거지, 왜 못 와요, 엄마는?"
"그 따위 소리는 애당초 하지도 말어, 오죽 못나면 시집갔다가 쫓겨와."
어머니는 가슴에 못이 박히도록 당부를 했다.
시집간 딸이 집에 오면 죽는 것으로 알라고 말했다. 누나는 못이 박히도록 들은 그 소리를 실천하려고 했다. 성호는 누나의 그러한 습관이 친정을 멀리하는 버릇이 되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병원에 오는 것도 대소사에 참가하지 않는 것도 다 따지고 보면 그런 연유가 있어 보인다. 부모님들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동네라고 해야 오십 호를 못 넘기는 아주 시골 촌 동네다.
아침에 수탉이 울고 뻐꾸기가 울었다. 친정엄마 생각이 나서 미칠 것 같았다. 참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귀가 아프도록 들은 터에 친정으로 가겠다는 생각은 엄두를 못 냈다. 그래서 친정에 반감 같은 것이 있었고 응어리가 있는 듯 했다.
누나는 그렇게 어려운 생활을 잘 감내하고 잘사는 듯 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을 잃었다. 가지고 있던 농토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다. 남편은 자기 잘못으로 조상 때부터 지어 오던 농토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 술을 마셨다. 취한 상태에서 선반 위에 있던 사이나를 먹었다. 우발적 사고였다. 선반 위에 위험한 독극물을 둔 것이 문제였다. 남편이 죽자 누나는 그때부터 아들 삼 형제를 위한 삶을 살았다.
오직 삼 형제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살았다. 노력 끝에 장남을 출세 시켰다. 하지만 무슨 운명인지 아들까지 교통사고로 죽었다. 누나는 그런 응어리를 가지고 살았다.
그래서 친정의 대소사에 나타나지를 않았다. 세월이 많이 지나갔건만 그 일들을 잊지 못하고 조그만 일에도 서운해하며 살았다.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하고 기구한 팔자를 원망하기도 했다. 아버지 역시 누나를 몹시 찾는 이유도 그런 연유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위독하다고 하는데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한 것 같았다.
성호는 형을 먼저 찾아보기로 했지만 어디에서 찾을지 막연했다. 그래서 형이 좋아했던 작부가 경영하는 노래방에 전화를 했다. 하지만 오지 않았다고 했다. 읍내가 발칵 뒤집혔는데 어떻게 자기 집에 오겠느냐고 반문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성호는 혹시 누나 집에 가지 않았나 해서 또다시 전화를 걸었다.
누나는 볼멘 소리로 안 왔다고 했다. 형 이야기만 나와도 화를 내는 누나다. 성호는 알면서도 혹시나 하고 전화를 했을 뿐인데, 화를 내는데 부아가 치밀어서, 몇 번씩 연락을 해도 병원에 오지 않는 연유를 따졌다.
전화기 속에서 찾아 뵙고 싶어도 못 찾아 뵙는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무슨 이유가 있어 보여서 성호는 다그치듯 물었다. 사실은 다리를 다쳤는데 걱정할까봐 이야기를 안 했다고 했다. 그제 서야 성호는 무엇이 잘못 되어 가는 것을 알았다.
"다쳤다고, 어디를 다쳤어?"
"별거 아니야,"
"그래도 왜 말하지 않았어, 알았어, 내가 지금 내려갈게,"
성호는 황급히 전화를 끊고 버스 터미널로 갔다.
누나가 사는 곳은 고향 읍내에서 는 멀지 않은 곳으로 산골 마을이다. 서울에서 내려가려면 버스를 여러 번 갈아 타야해서 꽤 먼 거리다. 늦은 시간이지만 서둘러 내려가면 늦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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