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전통혼례》文音社1996<부록>에<패륜말><가정파괴말>이 실려 있고
2《효도언어》문음사1999<부록>에 <남남언어>가 실려 있고
3《효도보감》문음사1997<부록>에 <부모은혜갑기>가 실려 있고
4《가정언어》문음사2000<부록>에 <남남언어>가 실려 있고
5《나라잃은시대 동아일보》문음사2002 <부록>에 <가정언어와 남남언어> .
저에게 소식을 주실 분은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1473번지 락원아파트 103동 105호>, 우편 704-370으로 보내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전화는 (053) 626--5753입니다.
이글을 읽는 사람에게 궁금함이 있을 것이기에《효도언어》《가정언어》《효도보감》책을 지은 짐계(斟溪) 려증동(呂增東) 교수를 알려야 되겠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1984년 갑자년에 경북 星州郡 碧珍面 징기 樹村里 月會堂에서 <효도언어>를 보존하자는 강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강사가 짐계였습니다. 이집 향약인 수촌향약(樹村鄕約) 마지막 오약(五約)에 정어상수(庭語相守)가 들어갔습니다.
樹村里는 北수촌리가 있고, 中수촌리가 있고, 南수촌리가 있는 아주 큰 마을입니다. 中南樹村里에 星山呂氏 圓亭先生 后裔가 세세로 내려오면서 近 五百년 집성촌으로 살아 왔습니다. 우리나라 집성촌 가운데서 樹里呂村이 가장 크다고 일컬어 왔습니다. 圓亭公이 星州科榜 生員에 올랐습니다.
그뒤 成均館生員으로 수학중 禮節이 밝다고 하여 中宗王子 福城君嵋 스승으로 발탁되어서, 세칭 圓亭先生으로 불리어졌습니다. 선생이 향리 樹村里에 月會堂을 일으켜 중원 송나라 呂大臨 형제가 일으킨 藍田鄕約을 본받도록 했습니다. 이것을 남들이 일컬어서 려씨향약(呂氏鄕約)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중종임금 때 조선사람 星山呂希臨이 조선땅 樹村里에서 <藍田鄕約>을 일으켰습니다.
그것이 뒤에 내려오면서 <樹村鄕約>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굼틀거려 온 것입니다. 중종때 관제향약(官制鄕約)은 흔적도 없이 그 모두가 없어졌으나, 마을향약(里人鄕約)으로 출발한 樹村里 <月會堂>은 살아서 굼틀거리는 <鄕約所>로 되었습니다. 실천유교로 남아서 언제나 살아서 굼틀거려 왔습니다. 樹里呂村에서 조선 4백년동안 生員進士文科武科가 많이 나서 성주 고을에서는 으뜸가는 과장집으로 되기도 했습니다. 不擧科人은 실천 효도인으로 살아와서 <효도언어>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마을입니다.
조선 4백년 모습을 볼 수 있는 향약촌(鄕約村)․유촌(儒村)․반촌(班村)․사촌(士村) 마을로 흘러 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수촌향약 강회소인 月會堂이 <국가문화재>로 승격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어느해에 月會堂 <말복절 강회>에 참석한 바가 있었습니다. <언어범절>이 우리 집과 똑 같았습니다. (도덕교과서 바로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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