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성의고등교 설립한 김성학 신부
스크롤 이동 상태바
김천성의고등교 설립한 김성학 신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천시에 천주교 처음으로 전파

^^^▲ 김성학 신부
ⓒ 뉴스타운 최도철^^^
김성학 (아릭스) 신부는 조선이 일본과 수호 조역을 맺기 얼마전인 1870년 평안남도 은산에서 출생하였다. 김성학 신부가 출생한 당시만 하여도 우리의 교회는 신앙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였고 박해의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 중에서는 마음놓고 신앙생활을 해 나가기가 무척 어려웠던 것이다. 어떤 신도가 한 지역에서 오래도록 살 경우, 그들의 신앙생활이 주쥐에 있는 사람들에게 발각되어 관가에까지 알려지게 된다면 모진 고난을 감수해야 되었었다. 그러므로 많은 교우들이 자기의 고향을 떠나 이곳저곳으로 유랑하게 되었다.

김성학 신부가 어렸을 때에 김성학 신부의 부모도 신앙생활을 좀 더 마음놓고 하기 위하여 자신의 연고지를 떠나 이천지방으로 옮기어서 몇 해를 살았다. 그리고 그 후 또 서울로 이사하여 살던 중 김성학은 1883년 백(Blanc) 주교에게 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그러나 당시는 일본, 미국과의 조약이 체결되어 문호는 개방되었지만 신교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지 못했던 때였다. 그러므로 국내에 신학교를 세워 신학생교육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김성학은 신학생으로 뽑힌 다른 3명의 동료와 함께 인천에서 배를 타고 몰래 조선을 빠져나가야 했다. 김성학 일행은 한달 가량의 지루한 항해 끝에 말레이반도 페낭에 도착하였다. 페낭에는 여러 전교지역의 신학생들을 교육하는 신학교가 있었다.

김성학은 이 페낭신학교에 들어가 다른 여러 민족의 학생들과 함께 신학공부를 하였고 여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한다. 그러다 한불조약으로 신교의 자유가 용인되어 국내에 신학교가 세워지자 그는 1892년 다시 돌아와 용산신학교에서 남은 학업을 마치었고 1897년 12월 18일 약현 성당(현 서울 중림동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김성학 신부가 서품을 받던 때 그의 가족들은 황해도 안악 매화동으로 옮겨 살고 있었다. 김 신부는 신품을 받은 직후 부모들이 살고 있는 매화동 성당(본당신부 Wilherm 신부)에 잠시 머물러 있었다. 그 후 1898년 6월 24일에 하 (Paihasse, M.P) 신부의 후임으로 경북 가실(현 칠곡) 성당에 부임하여 청년사제로서 열성을 다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1901년 김천성당으로 전근되어, 1911년 황해도 장연성당으로 옮길 때까지 10여년간 이지역의 교회 발전을 위하여 투신하였다. 오늘날 김천지방의 천주교 발전은 바로 김성학 신부의 기초 작업에 힘입은 것으로 생각된다.

김성학 신부는 황해도 장연성당에서 사목을 하다가 1916년 용산신학교 교수로 임명되어 1922년 여름까지 6~7년간 신학생들에게 라틴어를 가르치며 성직자 양성에 온 힘을 기울였다. 1922년 가을에는 신학교를 떠나 평양성당으로 자리를 옮기어 사목생활을 다시 시작하였다. 평양에서 수년간 전교를 하다가 그후 평안도 몇몇 지방으로 전근되어 다니면서 복음의 선포에 전력하였다.

일제의 대륙침략이 본격적으로 수행되기 시작하던 1936년, 김 신부는 평안도 지방을 떠나 충청도 아산군 공세리로 사목지를 옮기었다. 이 공세리성당은 그의 40여년간에 걸친 사목생활의 마지막을 보낸 곳이다. 김 신부는 이 곳에서 전교를 하던 중 1938년 9월 8일에 선종하였다.

김 신부는 그 동안 별반 병환이 없이 건강하게 활동을 하다가 작고하기 며칠 전인 8월 28일 공세리지방 소동리 공소에서 강복식을 거행하고 본당으로 돌아온 후 병석에 눕게 되었던 것이다. 김 신부의 병세가 갑자기 위독해지자 합덕성당의 백 신부가 와서 마지막 성사를 베풀어 주었다.

김 신부의 사인은 뇌출혈이었다 한다. 장례는 9월 10일 오전에 공세리 성당에서 거행되었다. 김 신부의 마지막 길을 떠나보내는 장례미사에는 평양성당의 교우대표를 비롯하여 각지에서 그의 훈도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서 고인을 애도하였다. 김 신부의 유택은 공세리성당 건너편에 있는 교회묘지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핫이슈포토
핫이슈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