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삼각은 속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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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삼각은 속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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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마이너스 작전이 필요하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요,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 돌궐족의 명장 톤유쿡의 비문 중에서 -

침팬지는 끝까지 바둑을 못 둘 것이다. 원숭이가 아무리 사람의 흉내를 잘 내고 앞으로 더욱 진화한다 하더라도 원숭이로 남는 한, 아마 바둑을 두지 못할 것이다. 챔팬지는 DNA가 인간과 겨우 1% 남짓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바둑을 통하여 게임하며 승부를 겨룰 수는 없을 것으로 나는 믿는다.

생물학적 차이 1%(좀더 정확하게 1.23%)를 무슨 여론조사처럼 오차범위 내에서 무시한다면 인간은 침팬지와 전혀 다르지 않다. 인간이 한다면 원숭이도 할 수 있다. 먹고, 자고, 거시기하고, 아이 낳고, 장난친다. 침팬지가 바둑 두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야. 낙솔, 자네 목숨이라도 걸 수 있나?

그렇다. 해수면의 경계를 짓는데 큰 두께가 필요 없듯이 영원과 무한으로 들어가는 게이트웨이(gateway) 준비에 1%면 충분할 것이다. 진정 바둑은 하늘과 통하는 게임이다. 바둑은 신(神)이 인간에게 선사한 마지막 게임일지 모른다. 빌게이츠가 통탄했다지, 너무 바빠서 바둑 못 배운 것을.

바둑의 신이 있다면, 인간이 갖는 핸디캡은 어느 정도일까. 사람 사이의 기력차이에 단이나 급의 단계(grade) 규정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프로는 아마로 쳤을 때 단수 차별 없이 모두 9단정도로 취급한다. 아마는 최고 7단에서 시작하여 초단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1급에서 시작하여 통칭 18급까지 말하고 있다. 또 아마세계대회에서 우승하면 8단 정도의 실력을 인정한다.

일반적으로 아마끼리는 단급의 차이만큼 기력의 핸디캡을 인정한다. 이때 두 사람 사이의 시합은 사전에 핸디캡만큼의 치석(置石)을 놓고 둔다. 가령 아마 7단과 아마 3단 사이의 치석은 4점이며, 한 단 사이는 정선(定先) 즉 하수(下手)가 먼저 둔다. 맞수 사이는 돌을 가려서 선후 즉 흑백을 정하고, 먼저 두는 쪽에서 유리한 만큼 보통 6집반의 덤을 내놓는다.

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 九단은 50대 중반의 나이에 일본기원 랭킹 선두를 지켜 그의 바둑 전성기를 누렸던 괴물이었다. 인간적인 매력도 넘쳐흐르지만 특별히 바둑에서 천재들만이 갖는 번쩍거리는 착수를 보여주어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내었다. “만일 신과 목숨을 걸고 둔다면, 4점으로 두겠다.”

바둑의 승부는 흑백 사이의 돌의 효율에서 결정된다. 즉 돌들의 시너지효과이다. 돌은 사람의 마음 또는 머리에서 출발하여 손을 거쳐 반상에 떨어진다. 4점의 차이는 한판의 바둑에서 완벽하지 못한 착수가 4번 정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가까지 간 바둑은 흑백 합쳐 2백수에서 3백수가 걸린다.

돌 3개로 만든 형태 중에 효율이 가장 나쁜 것이 “빈3각”이다. 반상의 우물 정(井) 4각에 1각을 비워두고 나머지 3각을 채운 모양이 빈3각이다. 빈3각은 우형(愚形)의 본보기이다. 그리고 빈3각이 2개 이상 뭉치면 응형(凝形)이라 부른다. 따라서 빈3각을 상대는 어쩔 수 없더라도 나만은 피하자는 것이 반상의 경영법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이 일본바둑 미학의 요체이다.

그런데 실전에서 빈3각이 최선일 때가 종종 출몰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한국바둑의 강미이다. 한국기사들은 빈3각을 미리 터부하지 않고 언제나 둘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다. 독이 약제로 쓰인다고 할까. 1선과 2선의 부분적인 환경에서는 빈3각이 실제로 정맥이나 묘수로 작용할 때가 많다.

돌의 효율을 따질 때 응형은 오히려 다다익선(多多益善)의 원칙에 거스른다. 내 돌을 하나 채워 넣어서 상대의 많은 돌을 잡는 환격(북의 말로 자충잡이), 상대 말이 응형이 되도록 모는 회돌이(홀치기), 내 응형을 잡혀주고 상대의 대마를 포획하는 후절수(되잡기), 5궁도화 또는 매화6궁으로 유도하여 상대의 대마를 잡아내는 방법 등이 응형의 응용수법으로 두루 쓰인다.

때로는 황우석사태 같은 마이너스 작전이 전국(戰局)을 유리하게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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