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세 나이에 목회자가 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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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세 나이에 목회자가 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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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벌써 나이가 65세다. 하루가 왜 그리도 빨리 가는지? 조용히 사무실에 앉아 옛 친구들 생각 중에 목회자가 된 강 나사로 목사가 생각난다. 지금은 대전 보문산 에 있는 보문산 교회 목사님이시다. 진정한 친구로 항상 생각하면서도 나는 부끄러움이 앞선다. 몇 년 전 강 목사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인천에 있는 친구와 같이 문상을 갔다. 그리고 별다른 생각 없이 겉치레 인사만 하고 훌쩍 떠나왔다. 사과하는 말은 바로 전화로 전했으나 나는 지금도 죄인의 심정이다.

어린나이에 집안일을 도맡았던 친구다. 해보지 않은 목수 일을 하면서 서울최초의 광화문지하도 공사판에서 집안일만 하시던 어머님을 상경시켜 어린동생들과 함께 험한 세파와 부딪치면서 식당일을 하시게 했다. 요행히 식당일이 잘되면서 돈을 벌게 됐다. 이 무렵 나는 군에 있었다. 휴가 나와 바쁘게 사는 모습을 보며 여기저기 공사현장 구경도 했다. 제대할 무렵 그는 용산의 아파트에서 점포를 운영하고 있었다. 역시 바쁘고 장사가 잘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시험하시는 모양이었다. 집안에 불상사가 자주 생겼다. 당시서울은 무허가 건물들이 철거당하면서 신림11동 지금의 난곡동에 정착하게 된다. 부지런한 그는 다시 여기서도 앞서가는 길을 갔다고 본다. 남다르게 발전기를 놓고 TV시청하면서 아이들이 만화를 보는 만화방을 차렸고 동생들은 형의 뜻대로 공부도 잘하고 열심히 일하면서 가족들의 보금자리를 위해 서로가 힘을 합쳐 생활하고 있었다.

이 무렵 내가 군에서 제대를 했다. 제대 하는 날 형님 댁에 잠시 들리고는 막 바로 친구네 집으로 향했던 기억이다. 친구가 올해 추석에 전화가 왔다. 나도 모르게 아이들이야기가 나왔다. 카드 사고에 정신이 없다는 말로 친구의 안부전화를 대신하고 말았다. 역시 사람은 자기 손톱 밑에 가시가 남의 갈비뼈 아픈 것 보다 더 아픈 것 인가보다. 다음날 전화로 사과는 했지만 사람이 산다는 것이 꿈을 꾸는 것만 같다.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젊은 날의 기억이 새롭다.

강 나사로목사의 험난한 인생길

어떻게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나? 내 입장에서 가끔 생각을 해보는 때가있다. 서울개발붐을 타고 객지생활 적응하여 어느 정도 생활터전이 자리가 잡혀갈 무렵 부자 집 아들로만 살아오신 친구아버님이 현실의 무서움을 모르고 주변사람들의 술수에 말려 자식들의 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심각한 사태를 유발시켰다. 이에 당혹한 친구는 주변정리를 하고자 했다. 생각 없이 내가 뱉은 말이 지금도 생각난다. “나는 돈 없어도 살수가 있어 자네는 어린동생들하고 돈이 있어야지?” 조금은 내 마음이 꼬인 말이었다고 생각하며 후회한다.

말없이 돌아서던 친구와 나는 당시 신림동에서 지물포를 운영하면서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일 년 정도의 세월을 두문불출하던 그가 고향으로 갈 결심을 하고 나를 찾았다. 실속 없이 큰소리만 치던 내 생활이었다. 맥주 집에서 마주한 나는 그에게 “우리가 돈만 생각하고 맥주 한 잔하지 제대로 못 마셨지 맥주한잔 하고 떠나게” 그는 대전으로 갔다. 얼마 후 몇 푼의 돈을 사기당하고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 그는 대전에 모 신학대학을 입학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8년 만에 졸업하고 대학원을 가고 목사시험에 12년 만에 합격했다. 끈질긴 집념의 힘을 발휘한 그였다. 강한 집념의 원천은 역시 하나님을 믿는 그의 자세였을 것이고 가족들의 헌신적인 사랑이었을 것이다. 결혼중매를 한 나로서는 지금은 사모가 된 친구부인에게 가끔 이런 소릴 한다. “어느 누가 뭐라 해도 사모는 범사에 감사 해야지요” 성경도 모르고 교회라고는 어릴 적 크리스마스이브에 과자 얻어먹기 위해 가던 것이 기억될 정도의 나로서는 얻어들은 성경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항상 생각되어지는 친구 강 나사로 목사 그가 개척교회를 힘들게 꾸리고 있는 대전 보문 산은 주변이 모두가 사찰이고 암자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잘 모르지만 기억엔 주변이 모두가 사찰표시를 한곳이 전부다. 그는 외로운 십자가의 고행을 한다고 할까? 그 한가운데 버젓이 십자가를 세우고 하나님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일반시민들이 생각할 때 장소를 바꾸면 교회도 번창 할 텐데 왜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을까 할 정도다.

시대적 지배 사상이 뚜렷하지 못한 혼돈의 시대다. 인류의 역사를 아니 우리민족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어려우면 어려운 데로 시대의 지배사상과 구도가 뚜렷했다고 생각한다. 충과 효사상이 오랫동안 이민족을 지배했다고 생각한다. 서구문물이 만연하면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했다. 현실적으로 무섭게 변하는 시대적배경속에서 어쩔 수 없는 환경이 되어간다고 생각한다.

종교계가 변하고있다고 생각한다. 성경적 효 운동을 벌이고 있다. 교회가 베푸는 문화 사업을 하고, 사회단체가 진정한 봉사를 부르짖고 있다. 21세기는 봉사의 시대라면서 우후죽순처럼 사회단체가 생겨나고 시민사회단체가 앞장서서 움직이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삶의 참모습을 보는 것 같아 흡족하기도 하다. 많은 교회들 역시 노인들을 위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각종사회사업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흡족한마음이다.

자가용 타는 기름진 얼굴의 목사님보다 깡마른 친구목사의 얼굴이 더 다정하게 떠오른다.

어렸을 적 막연한 목사님에 대한 동경은 까까머리 코 흘리게 아이들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인자한 웃음으로 외로운 낙도나 빈촌을 훈훈하게 하여주시는 목사님의 얼굴이 연상해지던 생각이다. 그런데 이제 그 얼굴의 주인공의 얼굴이 바로 자랑스럽게도 내 친구의 얼굴로 각인되고 있다. 어려운 교회 살림에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강 나사로 목사님의 깡마른 얼굴에 하나님의 은총이 꼭 함께 하시리니 인내의 세월 속에서 아름다운 삶의 노트가 채워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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