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형국은 졸병 거느려야 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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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형국은 졸병 거느려야 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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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년 선생의 우리강산 풍수지리]

▲ ⓒ뉴스타운

많은 졸병을 거느린 장군은 예나 지금이나 높은 직위로 간주, 선망의 대상이 되어 왔다. 풍수지리 형국론에서도 장군의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장군대좌형, 장군단좌(端坐)형, 장구출진(出陣)형, 장군전기(展旗)형, 장군전마(轉馬)형에 장군이 북을 치며 진격한다는 장군격고형, 장군격고월적(越敵)형, 장군이 검무를 하는 장군무검형 등이 그것이다. 이런 장군의 이미지가 담긴 형국에는 그에 상응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즉 진군을 알리는 북모양의 지세가 있거나, 깃발을 꽂아 놓은 듯한 모양이 좌우에 있거나, 졸병을 상정할 수 있는 안산이 있어야 한다. 여근형에서는 시장이 남성들이 많이 모인다는 의미로 음(陰)을 조화시키기 위해 양(陽)으로 해석되었지만, 장군형국에서는 졸병으로 해석된 사례도 있다.

조선조 14대 효종때의 유명한 유학자 우암 송시열(宋時烈)의 묘가 바로 대표적인 예. 송시열의 묘는 충북 괴산군 청천면 청천리에 있다. 우암의 묘 때문에 청천시장이 생겼다는 것.

지금부터 210년 전인 조선조 정종 3년(1779), 화양동(화양계곡)에 살고 있던 송종수 씨가 그의 7대조인 송시열(1607~1697)의 묘를 경기도 수원에서 청천리로 이장했다.

우암 송시열의 묘는 형국론상 장군대좌형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장군은 졸병이 있어야 하고 젊은 졸병들이 없으면 장군의 위엄이 없게 마련이며, 장군형국의 무덤 또한 발복이 있을 수 없다는 논리다. 그래서 묘 앞에 졸병에 해당하는 많은 사람이 우글거리는 시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송종수 씨는 청천리 사람들과 의논, 시장을 세우기로 하고 그 시설자금으로 300냥(구멍 뚫린 돈, 상평통보)를 기부했다. 시장은 월 6회, 즉 5일장이 서게 됐다. 청천시장이 생겨나게 된 유래다. 결국 시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송시열 묘의 졸병 역할을 함으로써 장군대좌형의 지세에 부합되어 자손이 번창 하였다는 것이다.

우암 송시열은 서인(西人)의 거두로 남인(南人)과 논쟁하고 후에는 노론(老論)의 거두로 활약하다가 숙종 15년 세자 책봉의 일로 왕의 노여움을 사서 사사(賜死)되었다.

[김호년 선생의 우리강산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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