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신비' 고구려 벽화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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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신비' 고구려 벽화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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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고구려 유적 대탐방-3]고구려 반세기의 수도 집안시(5회분 5호묘)

^^^▲ 고구려 벽화들집안시 박물관 안에 비치된 5회분 5호묘의 벽화(모조품)들이다.
ⓒ 뉴스타운^^^

거대한 고구려사 박물관 집안시

고구려의 태생지인 졸본성을 내려온 뒤 환인현에서 나와 길림성 집안시로 방향을 틀었다.

집안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만포시와 마주보고 있으며 인구는 23만(조선족 약 3만 명)의 소도시에 불과하지만 425년간 고구려의 수도(국내성)이자 군사요충지였다.

^^^▲ '수풀사이로'1000년도 더 된 역사를 간직한 고구려 고분은 오늘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 뉴스타운^^^

특히 이 곳은 광개토대왕비를 비롯해 국내성터 환도산성 등 고구려 유적들이 곳곳에 산적해 있어 경주 자체가 신라의 박물관인 것처럼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고구려사 박물관이다.

^^^▲ 대원들이 현지 가이드로부터 박물관에 걸린 고구려 그림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뉴스타운^^^
다섯 개의 대형투구 무덤 5회분

집안시는 경주와 마찬가지로 무덤들이 참 많았다. (장군총.무용총 등 고분 총 1만 2천여기)

그중 넓고 완만한 평지 위에 다섯 개의 산처럼 높고 큰 봉토묘 (흙으로 봉한 묘)가 동서로 길게 배열된 것이 꼭 5개의 대형 투구와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5회분, 광개토태왕비의 북서쪽 약 1km 지점에 나란히 위치한 각저총.무영총 등이 특히 유명하다.

벽화가 확인된 곳은 5회분 4호묘.5호묘.무용총.각저총 등 모두 20여기, 그 중에서 5호묘는 규모가 가장 크고 고구려 후기 (6세기 말-7세기초)의 왕실의 묘로 점쳐지고 있다.

흙으로 덮은 봉토묘인 5호묘의 내부는 모두 석실로 그 내벽에는 커다란 사신도(청룡.백호.주작.현무)가, 벽과 천장에는 일월신, 비천상, 용호도 등이 그려졌다.

특히 이 벽화들은 선에 힘이 있고 색채가 아름답고 화려해 고구려 미술사의 걸작으로 일컬어 진다.

다만 크게 아쉬웠던 점은 5회분 5호묘마저 다른 묘와 마찬가지로 (현재)묘실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

때문에 대원들은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수렵도와 무용도 등은 '집안시 박물관'에 전시된 모조품을 관람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계속]

^^^▲ '수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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