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상수도의 역사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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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는 로마의 상수도

인류는 처음에 생활에 필요한 물을 하천 및 지하수에서 얻었다. 점차 산업화가 진행되고 인구의 증가가 급속해지자 우물로는 양적 부족과 수질적으로도 위험하게 되었다.

보다 깨끗한 하천수의 사용도 인구의 집중으로 오염되어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위생적인 수도를 만들어야 했다. 고대의 수도는 모두 이러한 경과를 거쳐서 만들어졌다.

세계최초의 상수도는 로마의 수도이다. 로마의 수도는 BC 312년~BC 30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산수(山水)를 연장 578 km의 수로로 끌어들여 분수 ·목욕탕 ·공공건물 등에 급수하였다. 이 수도는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파괴되었다.

그 후로는 1,000년 이상 수도가 없었다. 그 뒤 16세기 말 런던에 대규모 수도가 건설되었는데, 이 런던 수도는 템스강의 물을 펌프로 퍼올려서 시내로 급수하였다. 그 후 정화처리(淨化處理)를 한 것으로는 1829년 런던의 모래여과[砂濾過]가 처음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가 교차한다. 이에 따라 강우의 계절적인 편재가 매우 심해 계절적인 물의 부족으로 인한 생활의 위협이 많았다. 그러나 음료수에 관하여는 화강암지대가 많기 때문에 항상 깨끗한 물을 대량으로 손쉽게 얻을 수 있어 생활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경주 안압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상수도관과 하수도관은 토기관으로서 7~10세기경 통일신라시대에 사용된 것인데, 이것으로써 신라인들의 물에 대한 높은 인식과 기술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조상들의 우수한 기술을 전수받지 못하여 이후 조선 말기까지 수도라고 칭할 만한 시설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근대에 들어와 1903년 12월 9일, 미국인 골브란과 보스토워크가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수도 부설경영의 특허를 받았는데, 그들은 이 특허권을 1905년 8월에 영국인 회사인 조선수도회사(Korea Waterworks Company)에 양도하였으며,

이에 따라 1906년 8월 1일 최초로 뚝도정수장의 완속여과지가 착공되어 1908년 8월에 완공됨으로써 현대적인 수도시설로 서울 시민에게 급수를 개시하게 된 것이 근대적인 수도의 효시이다.

이어서 인천 ·평양 ·부산 ·대구 등 각 도시에도 점차적으로 수도시설이 보급되었다. 경술국치 후 조선총독부는 수도시설을 위한 도시선정과 급수구역을 엄격히 제한하였으며, 주로 일본인 기술자들에 의하여 건설되었는데 8 ·15광복까지 전국의 총 83개 도시에 계획급수 인구 200만, 1일 최대급수량이 27만 2000 t에 이르렀다.

광복과 더불어 사회적인 변동으로 인구의 도시집중현상이 급격해진 반면 절대량이 부족한 기존 수도시설로는 감당하기 곤란하여 각 도시의 급수난을 해결하지 못하여 대부분의 시민이 우물물에 의존하는 실정이었다.

자료에 의하면 1947년 남한의 총인구 1780만 명 중 급수인구는 328만 명이며, 수도 시설용량은 1일 4만 t으로서 1인당 1일 급수량은 66ℓ에 불과하였다. 더욱이 6 ·25전쟁으로 인해 40개 도시에 급수시설이 기능을 상실하였다.

1954년 FOA와 ICA 원조로 수도시설의 복구와 확장 및 신규공사가 추진되었는데, 제1차 경제개발계획에서는 급수보급률을 22 %로 확대하였다. 이어서 제3차 경제개발계획에서도 계속적인 투자로 급수보급률이 1976년에 50 %로 향상되었으며, 공익사업으로서 독립채산제로 하여 경영의 합리화를 도모하였다.

한편, 미국 ·독일 등의 차관에 의한 정부재정융자로 서울을 비롯한 부산 ·대구 ·광주 ·인천 ·대전 ·청주 등 7개 도시의 수도시설을 개선하였다. 또한 중소도시의 수도사업은 지방교부금에 의하여 시설의 확장 및 개량을 보게 되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GNP의 성장에 따른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대도시 인구의 과도한 집중현상과 생활용수 수요의 증가를 초래하였다.

한강 하류에는 미처리된 하수와 공장폐수의 유입으로 서울시의 수도원인 한강이 오염되어 정부에서는 시민보건을 위하여 수원(水源)을 한강상류의 광암저수지로 이설(移設)하였다.

1981년도 서울의 급수인구는 813만 448명이고 1일의 급수량이 258만 8639 t, 1일 1인당 급수량은 318ℓ로 보급률이 93.7 %였다. 1992년 말 현재 서울시 급수인구는 1096만 4145명이며 1일 급수량은 약 520만 t, 1일 1인당 급수량은 456 ℓ, 보급률은 99.9 %이다.

한국 전체로 볼 때, 1992년 말 현재 급수인구는 3,564만 명, 1일 1인당 급수량은 385 ℓ, 1일 총급수량은 2만 4000 t, 보급률은 80 %이다.[자료참조 : 수자원공사,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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