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홍이씨의 어눌한 복수 심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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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홍이씨의 어눌한 복수 심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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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목적>, 소통을 주제로 한 주인공의 심리묘사 뛰어나

^^^▲ 영화 <연애의 목적> 포스터
ⓒ 싸이더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스타워즈 에피소드3-시즈의 복수>를 누르며 개봉관에서 선전한 영화 <연애의 목적>(제작 싸이더스, 감독 한재림)을 뒤늦게 보게 된건 일종의 편견 때문이었다.

'나중에 DVD로 보지 뭐'라는 생각은 감각적인 포스터나 무수한 예능 프로그램의 영화 소개로 인해 이미 본 듯한 섹시 코미디쯤 여겼고, 옴니버스 단편 영화같은 느낌으로 읽혔던 시나리오 때문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편견만큼 무서운게 없다는 것을 이 영화 <연애의 목적>은 가르쳐준다.
한 감독은 시나리오에서 보여지는 단편 성격의 에피소드를 걷어내고 최근 이슈화 되고 있는 '사이버 명예휘손'이라는 사회성 있는 에피소드를 영화 속 주인공의 세밀한 심리묘사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나 B급 영화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함께 영화를 본 친구들이 '싸이코 같은 주인공들을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내두르는 영화의 2/3 가량이 지나는 시점부터 였으니까.

최근 인기리에 방영중인 드라마 <부활>의 OST 속 가사로 흥얼거리게 되는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라고 믿는 여자 홍이(강혜정 분)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극장전> 등에서 익히 보았던 경수, 문호, 동수를 닮은 지식인 유림(박해일 분)은 애인이 있으면서도 연애를 통한 소통을 꿈꾸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에다가 홍상수 또는 허진호식 멜로를 섞은 느낌의 색다른 멜로라고 해도 좋을 듯.

어쩌면, 로맨틱 코미디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 속에서 관객들에게 발견되는 유머나 웃음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얻는 그 것과 다르지 않다.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스크린 속에서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자조 섞인 웃음과 닮았다. 한 감독은 한 남자의 연애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키듯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학교 운동장 구석 벤치에 서로 멀리 떨어져 앉아 벌이는 유림과 홍이의 성적인 대화로부터 시작된다. 교사 유림이 막 실습 나온 교생 홍이에게 우리 말의 중의적 표현을 통해 작업을 거는 장면이다. 유림 역의 박해일은 <국화꽃 향기><인어공주> 등에서 보인 낭만적 캐릭터를 벗고 다소 어눌해 보이지만 간사한 듯 느껴지는 말투를 채택하고 있다. 영화 내내 홍이에게 끈질기에 달라붙는 모습에서, 있으면 뭐라도 그냥 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이다.

^^^▲ 영화 초반부 홍이에게 작업을 거는 교사 유림(박해일 분)
ⓒ 싸이더스^^^

"딴 생각 하면 금방 죽어요"
"언제 죽는데요. 그렇게 금방 죽어요?"

이쯤 되면 유림의 작업 대상이 된 홍이가 내뱉는 말에서 그녀 역시 예사롭지 않은 경력의 소유자임을 눈치챌 수 있다. 오히려 유림보다 한 살 많은 교생 홍이, 아픈 실연의 상처로 인한 고질적인 대인기피증과 함께 서울로 온 이후로는 잠을 못자는 그녀의 불면증은 유림과 심상치 않은 앞날을 암시하게 된다.

지도교사와 교생이라는 신분적 상황에 음주라는 요소가 곁들여진 두 주인공은 서로 필연적인 상황을 거부하지 못하고 잠시 이성을 잠재우고 감성적인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 수학여행지, 회식 자리, 그리고 윤리선생 등 주변인물이 만들어내는 상황 속에서 지식인들의 달콤하고 아찔한 연애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현실에 대한 안주(홍이)와 도덕성(유림)이라는 사회 통념 앞에 처참히 무너져 내리고, 홍의 애인 연호는 홍을 떠나며, 유림이 애인 희정(박그리나 분)에게 부탁한 홍의 과거에 대한 조사는 홍과 유림의 관계에 갈등을 불러 일으키며 영화를 마지막 반전으로 치닫게 한다.

곧, 개봉을 앞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가 반어적인 표현의 영화 제목이라 한다면 이 영화 <연애의 목적>을 서슴없이 '친절한 희정씨의 복수극'이라 해도 좋을 장면은 홍이와 유림의 연애 소문이 희정의 입을 통해 동료 교사에게 전해지면서 시작된다. 반목과 화해를 거듭하는 두 주인공의 내면은 이제 첫 눈오기 전까지 연애하기로 한 의기투합으로 하나가 되지만 '인터넷 에피소드'를 통해 한 감독은 홍이를 막 다른 길로 몰아 넣는다.

유림은 홍이의 집에서 우연히 듣게 된 녹음기 테이프에서 유부남 강사를 사랑하고 돈까지 뜯겼던 홍이의 과거, 그리고 홍이가 말한 친구의 이야기란 것이 홍이의 이야기 임을 알게 된다. 유림은 장난끼로부터 벗어나 홍이에 대해 북받치는 애틋함이 가득하지만, 비밀없는 우리나라는 홍이의 돈을 떼먹고 스토커로 몰아넣은 과거 유부남 강사의 시나리오가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돼 학교가 온통 발칵 뒤집혀 진다.

^^^▲ 감사반을 향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홍이(강혜정 분)
ⓒ 싸이더스^^^

하지만, 이것도 모르고 학생들의 아지트에서 음식을 해놓고 유림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홍이와 학생들은 물론 동료 교사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은 유림의 모습이 교차하며 점점 둘 사이의 극적 위기감이 고조된다. 결국 교육청의 감사가 시작되고, 이 과정에서 홍을 희생양으로 유림에게 호의를 보이며 뒤돌아서는 감사반들에게 울부짓으며 내뱉는 홍이의 한 마디.

"저기요, 아직 말 안한게 있는데요"

이제 관객은 두 번은 당하지 않으리라는 '친절한 홍이씨의 복수극'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이 강간을 당했다며 말하는 홍이를 바라보는 황당한 표정의 유림은 경찰차로 향한다. 그리고 몇 년 후 교사 자격을 박탈당한 채 일반 보습학원에서 시간강사로 연명하는 유림을 보았을 때 관객들은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다만, 사태가 역전 되어 유림의 학원으로 찾아 온 홍이가 술을 사며 자신이 유림을 책임지겠다고 나서자 내뱉는 유림의 또 한 마디.

"너 이후론 여자 믿을 수 없고 무서워서 여자 사귀지 못해!"

영화 <연애의 목적>은 이렇듯 친절하지만 어눌한 홍이씨의 복수극으로 막을 내린다. 아픈 과거로 인해 '더 이상의 사랑은 없다'고 믿으며 대인기피증을 안은 홍이를 보면서 영화 중반에 유림이 던진 말이 결말에 역전됨에 따라 결말부에 음식점을 나오는 홍이와 유림이 맞는 흰 눈처럼 관객들은 희망을 갖게 된다. 기존 남성 주류사회에서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었던 홍이로 대표되는 여성들은 조금은 특이한 남자 유림을 만나면서 이제 소통을 위한 목소리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을 맡은 유림 역의 박해일 뿐 아니라 홍이 역의 강혜정은 단편영화 <나비>, <올드보이> 및 왁스, 포지션의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 등에 출연, 밑 바닥부터 다져온 연기력을 영화 속 흔들리는 홍이의 내면에 잘 녹여내고 있다. 비중이 많지 않았지만 친절한 희정씨를 맡은 박그리나 역시 최근 진행되고 있는 윤석호 PD의 차기작 <봄의 왈츠> 주인공 최종 오디션에 이름을 올릴 만큼 연기력을 갖춘 배우로 영화에서 마지막 반전을 이끄는 역할을 소화해냈다.

^^^▲ 영화 중반부와 반전된 결말부...유림을 찾아간 홍이
ⓒ 싸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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