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고 김 삿갓 문학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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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고 김 삿갓 문학관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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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부평향교 원로와 임원들 선진지 시찰단

^^^▲ 난고 김 삿갓 문학관을 가다
ⓒ 뉴스타운 신중균^^^

정처 없이 떠도는 내 삿갓 빈 배와 같아/ 한번 쓰고 난 뒤 사십 평생을 함께 하네/ 더벅머리 목동이 소몰이 나갈 때의 차림이고/ 본래는 갈매기와 벗하는 늙은 어부가 쓰는 것이네.

술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어놓고/ 흥이 나면 손에 들고 누각에 올라 달을 보며 기뻐하네/ 사람들의 의관은 모두가 겉모습 치장뿐이지만/ 내 삿갓은 비바람 가득 몰아쳐도 근심이 없다네.

방랑시인 김 삿갓, 우리들이 술 한 잔 얼큰하면 자주 부르는 이 노래의 주인공 김 삿갓의 유적지, 영월군에 그의 문학적 가치와 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난고 김 삿갓 문학관이 있다. 전국유명관광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 유적시비
ⓒ 뉴스타운 신중균^^^
허름한 삿갓을 쓰고 조선 팔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당시양반 귀족들의 부패상과 죄악상, 비인도성을 폭로 풍자한 방랑시인 김 삿갓 그의 본명은 김 병연 호는 난고이다. 5세 때 홍경래의 난으로 삼족이 멸하는 처지에 놓이자 종이었던 김 성수가 그의 목숨을 구하여 황해도 곡산에서 그를 키웠다.

20세가 되기도 전에 천재적 재능을 보여 백일장에서 장원이 되었으나, 조부를 욕하였다는 죄책감에 하늘을 가린 삿갓을 쓰고 22세부터 방랑을 시작 40여 년간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읊은 그의 반항적이고 풍자적시가 전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인도주의적인 감정과 평민사상에 기초하여 지배층에 강한 반항정신을 나타낸 그의 시는 서민대중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1863년 3월29일 전라도 구 암 리 에서 5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고 ,3년 후 아들 익 균이 영월군 하 동면 와 석리 노루목으로 묘를 이장하였다.

200년 전 민중과 백성들 교육의 가운데 있었던 인천유림들의 후예가 오늘 그곳을 찾았다. 한 시대를 살다간 천재시인의 시가 들려주는 의미를 되씹으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특히 유림의 후예를 자처하는 시찰단원들에게는 남다른 의미와 시사 하는바가 크다 할 것이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여름날 강가에서 삿갓시인을 생각하며 마시는 탁 배기 술 한 잔이 세상이 덧없음을 말하여 주는 것 같다. 재행무상의 철학적 의미와 함께 이날의 선진지 시찰은 커다란 문학적의미를 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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