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생각해도 너무나 얼굴이 화끈거린다. 34살 때 이야기다. 1973년도로 기억된다. 당시 관악구 신림동 난곡 종점가는 중간지점에서 나는 4살, 3살 짜리 딸, 아들, 아내와 같이 방 3칸이 있는 집에 방 한 칸을 전세금 50만원에 얻어 생활하고 있었다.
고향친구와 지업사를 운영하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저녁에 들어온 나에게 마누라가 “집세100만원 올려야 한데요.” 머리가 띵 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튿날 저녁 나도 모르게 소주잔을 비웠다. 만취한 나는 대문을 거칠게 밀어제쳤다.
안채를 향해 “야 ! 주인 놈 나와 이것도 집이라고 세를 올려?, 이 새끼야! 나도 대전에 이보다 몇 배 큰집 있다. 더럽다 더러워 뭐 백만원 올린다구?” 술 취한 내 소리에 주인 내외와 꼬마들이 나왔다. 눈이 동그래진 집주인은 “ 아니 무슨 소리야 신형”
“신학대학은 뭐 하러 다녀 이놈의 집구석 내가 휘발유 확 뿌려 버릴 거야” 이야기 전말은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안주인이 내 식구에게 집값이 오르고 전세금이 오르니까 전세를 올렸으면 한다고 이야기 했고 약사인 남편은 아직 모르고 있던 터였다.
긍정적이지 못한 불편부당한 마음으로 살아가던 나였다. 지업사 지방대리점에서 실패하고 나이가 삼십이 넘어 친구가 서울로 불러올려 같이 한참 개발 붐 속에 지물판매사업을 하고 있었다. 같은 또래나이의 집주인은 영등포에서 약사로 일하고 있었다. 비교되는 생활에서 오는 감정이 깔려있었음도 물론 작용했다. 핑계 좋게 친근하게 대해주던 집주인에게 그만 술주정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얼굴을 못들고 그집을 나와 이사를 했다. 올려달라는 액수의 돈을 마련해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했다. 어렵게 전세 집만 5군데를 전전하다가 인천으로 연립주택을 마련하여 이주했다. 그동안 겪은 집없는 설움이야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우연히 지나는 나를 발견하고 쫓아 나와 박카스 병을 건네던 집주인이 생각난다. 전셋집 전전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나이 65세에 마련한 25.7평형 소위 국민주택이 우리집이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살고있다. 서울의 집값이 10억을 넘고 몇 십억의 호화주택에 살면서 몇 푼의 세금을 안내고 배짱으로 살아가는 파렴치한 사람들을 보면서, 재벌들의 공수래 공수거의 인생을 보면서 나에게 주어진 아파트가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이순간도 쪽방생활의 노인들이나, 거리에서 잠자는 노숙자들을 한 번쯤 생각해보면 너무도 과분한 행복이다.
호화로운 옷이나 궁궐같은 집이 행복의 척도는 아닐진대 자그마한 집에서 잠잘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마음으로 살아가자고 소리치고 싶다. 나에게는 영원히 몇 십억 하는 아파트는 필요 없을 것 같다. 주택정책은 거시적 안목의 수요자의 기호에 맞는 임대주택 확충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옷 보따리와 내용물만 옮기면 되는 선진국형의 주택이 많아지면 구태여 내 집 장만하려고 평생고생은 안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집주인이 영등포에서 약국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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