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성을 말한다 (10)
스크롤 이동 상태바
청소년의 성을 말한다 (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름다운 생명의 꽃, 성

^^^▲ 아름다운 성의 영혼은 우리의 생명과 맞닿아있는 소중한 가치이다^^^

그동안 ‘ 청소년의 성을 말한다’라는 제목 아래 청소년 성문제를 다루기 시작한지 어느 덧 10회에 이르렀다.

처음 성을 말하기로 결심했을 때, 어른들의 삐뚤어진 잣대에 아이들을 세어놓지 않겠다는 내 나름대로의 확고한 기준이 있었다. 단순히 사람들의 편견속에 자리한 성(性)이 아닌 생명을 잉태하는 아름다운 사랑의 성(城)을 짓기 위한 마음을 모두에게 일깨워주고 싶었다.

그것은 어른들이 애써 영상으로 미화시킨 성도 아니요, 가리기에 급급한 치부의 성도 아니었다. 그저 성의 본질적 기능인 아름다운 생명을 잉태하는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성(性)의 본래의 기능으로써의 아름다운 성(城)이다.

이미 퇴색되고 변질된 성의 벽을 인지하는 과정에 있어 몇 가지 실망적인 일들이 있었다.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청소년의 성문제를 어느 정부 부처에서 다루는 것인지 아는 이들이 흔치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의 홍보방법이 적극적이지 못 했음을 가시화하는 한편, 국민 모두의 인지도가 성에 대해 심각함을 느끼면서도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서 ‘서울이 멕시코시티보다 못하다’와 같은 파격적 광고문고를 제시해 논란을 일으키며 한순간 집중을 받은 정부의 홍보능력이라면 얼마든지 국민들에게 청소년 문제를 상담하고 해결해 줄 수 있는 정부부처를 홍보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있으리라 믿는다.

사실 많은 이들이 청소년의 성문제라면 교육부나 청소년 보호위원회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 두 부처 모두 포괄적인 개념의 청소년을 위한 기관에 불과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소년의 성 문제에 대한 구체적 논의나 해결은 교육부도, 청소년 보호위원회도 아닌 문화관광부의 '청소년정책과'에서 담당했었다. 얼핏 청소년 보호위원회를 떠올리기 쉬운데 그곳도 물론 청소년들의 성매매 피해 사례등의 자료를 확보하고 있지만 구체적 대안을 얻기엔 부족할 것이라는 진단이 대부분이다.

최근에 이르러, 이런 지적을 인식해 청소년 보호위원회와 문화관광부가 통합하여 청소년의 성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홍보 부족인 상태로 청소년의 성 문제를 담당하는 공공 기관이 여전히 부재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은 아직까지도 우리 나라에서 청소년을 다루는 문제는 법제화되어있지 않고 체계적인 절차가 마련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그 예로, 이 기사를 준비하며 청소년 보호위원회에 원조교제의 구체적 피해 사례를 요청했는데 관계자가 ‘성매수 이후 2차 피해유형’이라는 엉뚱한 자료를 보내준 것을 보면 청소년 보호위원회에 대한 성격을 단면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여러 가지로 흩어진 민간 상담단체에 청소년 성문제를 맡기는 것보다 보다 확실하고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청소년의 성문제에 대한 공적 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연재기사를 쓰며 가장 중점이 되었던 사항은 “누가 이 소녀들에게 돌을 던지는가”와 소제목 아래 쓰여진 원조교제였다. 원조교제에 대하여 모든 잘못을 청소년들에게 전가시키는 어른들의 교묘한 술수에 대해 꾸짖고자 했다.

이 중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 제시한 ‘성매수 이후 2차 피해유형’이란 자료를 검토해보면 약 40%에 이르는 학생들이 성매수 이후 오히려 피해를 당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 피해사항중 제일 많은 것을 차지하는 사항이 ‘약속한 만큼 대가를 받지 못했다’고 밝힌 학생들이 20%에 이른다는 것. 이 밖에 폭행, 스토킹, 협박위협, 절도. 그리고 ‘약속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 등 예상밖의 다양한 피해사례가 접수된 것을 볼 수 있다.

어린 아이들에게 성을 파는 조건으로 대가를 약속하는 어른들의 실태는 성매수 이후에도 피해를 겪는 청소년들을 발생케 하였다. ‘약속한 대가’라는 말이 끝끝내 마음에 걸리며 한편으로, 보다 행복한 조건에서 엄마가 될 수 있었던 아이들에게 그 기회를 박탈한 것도 약속된 것인지 묻고 싶다.

마지막 연재기사 10회 ‘청소년을 말한다’를 쓰면서 다른 날들에 비해 기사가 쉽게 쓰여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과 단단하지 못한 아이들의 성세계관이 염려되며 돌아서야 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아이들이 현재 쌓아올린 성(城)은 어른들에 의해 균열과 틈이 너무 많은 채 억지로 쌓아올려졌다. 차곡차곡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바르는 과정으로 쌓아져야 할 성이 어느 순간부터 시멘트를 바르지 못하고 쌓이기 시작했다.

그 흔들리고 있는 성에서 살아가는 몇몇 어른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이 성을 쌓아올린 이는 누구이며 이 성에 살아갈 이가 누구인지를 진정으로 알고 있는가, 이다. 비록 청소년들이 자라나는 동안의 성은 어른들의 것일지 모르지만, 그들이 어른이 된 뒤에는 그 성은 청소년들의 것이다. 그 때 돌려주어야 할 아이들의 성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인가?

끝으로 청소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성은 아름다운 생명을 잉태하는 사랑의 우주라는 변치않는 진리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는 강조와 부탁의 말이다. ‘누가 이 소녀들에게 돌을 던지는가’의 기사에서 말했듯 단지 어른들의 삐뚤어진 잣대에 서서 평가를 받았던 것 뿐이고 잠시 지나가지 말아야 할 바람이 풀꽃을 헤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 아름다운 성의 주인은 우리임을 잊지 말자. 약속한 대가로 받을 수 없는 소중한 생명과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은 어떤 이유로도 곡해되서는 안될 것이며 생의 마지막 진리임을 인지한다면 지금 당장의 시련은 그저 시련일 뿐이다. 아름다운 성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어른들이고 무너질 성을 지을 수 있는 것 또한 어른들이다. 그러나 그 성을 단단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은 우리 청소년들뿐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하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