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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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바다를 건넜다. 주전에서의 농사일이 고되고 나라 잃은 설움에다 일본인 밑에서 아전으로 일하는 조선인들의 횡포가 싫었다.

배운 것도 없이 밀항하여 노동판을 전전하며 모은 돈과 노동인력을 밑천으로 잔밥집을 운영하여 큰 돈을 벌었다. 강제징집도 피할 수 있었다. 틈틈히 본국으로 향하는 밀선에 피땀으로 번 돈을 부모와 형제의 고향으로 보냈다.

해방이 되었다. 방어진 항에서 포경업으로 배를 불리던 일본선주가 떠나면서 조선인 서기에게 물려준 몇척의 선물은 머슴살이의 고된 눈치밥과 복종의 결과물이었다. 그들은 이 도시에 나타난 몇 몇 신생의 지주와 선주가 되었다. 역사가 준 크나큰 행운이었다.

방어진, 치열했던 좌우 이념의 언덕을 넘어 피바람의 고통을 겪었다. 1960년대 중반은 울산과 고 박정희대통령의 야심작이 불꽃을 지폈고 한국의 메트로폴리탄이란 작품으로 태동하였다. 그의 주변에는 불세출의 입지영웅이 있었다.

고 아산 정주영 그는 70년대 초 자동차 조선왕국의 도읍지를 이곳 동구로 정하고 오지의 어둠에 묻혀있던 사포를 열었다. 사포는 미포만의 다른 지명이다. 그는 개발이란 시대적 숙명앞에 피와 땀으로 신명을 다 바쳤다.

여기에 백년고절의 12지경, 공존이란 이름으로 내어준 지역민의 희생과 기쁨(?)은 희비쌍곡선이었다. 이곳 대부분 지주들은 개발이 쥐어준 토지보상의 대가로 지금의 오늘이 되어 작은 풍요의 꿈을 이루었고 대부분 무언가를 통해 지자제의 감투를 쓰고 갓끈도 고쳐매는 일생일대의 전기를 맞은 것도 사실이다.

이 세상이야기는 지난달 구민체육대회에 현대왕국의 후계자인 국회의원 J씨를 따르며 끝없이 그의 불세출에 곡나발로 환호를 올리며 어깨춤을 추던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역민의 구세주 J씨, 민노당의 성주 L구청장 그리고 토착민들의3파색 환호와 출세기를 바라보면서 삶의 이상한 아이러니를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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