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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제스 생가에서 바라 본 고향 산천 일부. 사진 오른쪽 지붕들이 그의 고택, 친인척 가옥들 ⓒ 김상욱^^^ | ||
명절 때가 되면 유난히 고향(故鄕), 친척(親戚), 만남이라는 단어들이 우리의 뇌리를 스친다. 그리움과 만남, 그리고 즐거움과 다시 헤어짐이라는 ‘공식 아닌 공식’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살아생전에 그리운 내 고향, 내 부모, 내 친척 그리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생전 자기 고향 땅을 밟아 보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외로움이 얼마나 클까? 수구초심(首丘初心 :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저 살던 쪽으로 행한다는 뜻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말함) 속에서 꼭 한 번만이라도 고향 땅을 들러 봤으면 하는 생각이 얼마나 간절할까?
최근 필자는 중국 상하이 남방에 들른 적이 있다. 우연히 그 곳에 대만 전 총통 장제스(장개석(蔣介石, 1887 ~ 1975)의 고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장제스의 고향은 닝보 근처인 팽후아시(市) 시코우라는 지역이었다. 그 곳에 짬을 내어 들르면서 필자의 뇌리에 문뜩 2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하나는 “사회주의 국가 중국 정부가 사상이나 정치적으로 적대 관계였던 장제스의 고향을 온전하게 놔 뒀을까?“ 라는 생각이었다. 왜냐면 우리 대한민국의 분단 상황이 먼저 생각났기 때문이다. 실제 장제스 고향이라는 곳에 다다르면서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록 정적의 장제스지만 그의 고향 땅은 유명한 관광 명승지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런 식으로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가꾸고, 기리며 관광객을 유치하며 돈까지 벌려는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 것은 비단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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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장제스가 살았다는 고택. 지붕위의 용이 이채롭다 ⓒ 김상욱^^^ | ||
드넓은 장제스의 고향에는 그가 태어나 살았다는 고택(古宅)과 생가(生家), 그가 어릴 때 낚시를 했다는 강가, 그리고 그의 친인척들이 살았다는 수많은 집들이 마치 박물관처럼 잘 정리돼 보존되고 관리되고 있었다. 장제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등이 살았다는 거대한 규모의 집들이 방문자들을 놀랍게 하기도 했다.
여러 개의 코스를 설정해 관광객들로 하여금 선택하게 해 시간과 비용을 감안한 상술(商術)도 역시 중국인다운 것이었다.
스쳐 지나간 또 다른 하나의 생각은 비록 그가 대만통치를 하고 그곳에서 죽었지만 고향 땅에 묻히기를 희망했다는 것인데, 끝내 죽어서도 대만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현실. 돈벌이(?), 관광지(?), 장제스 기리기(?) 어느 것인지는 그 의도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중국 정부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그 곳에 그의 무덤을 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애석하기까지 했다.
668미터 높이에 있는 장세스의 모친의 무덤, 선친들의 무덤이 즐비하게 있건만 정작 장제스 자신은 죽어서도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현실이 애통하기도 했다. 장제스 모친 묘소로 가는 길목 양쪽에는 쭉쭉 벗어 하늘을 찌를 듯한 커다란 소나무들이 질서정연(秩序整然)하게 그 자태를 뽐내며, 그의 아들이 그 길을 따라 올라오기를 기다리고나 있듯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지난 7월경 장제스 전 대만 총통과 그의 아들로 총통직을 물려받았던 장징궈(蔣經國 : 1988년 사망)시신이 대만 타이베이(臺北) 인근 군사묘역에 묻힐 수 있도록 유가족들이 대만 국방부에 협조를 요청했으며 대만 국방부가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 부자지간은 1949년 중국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배해 대만을 본거지로 삼았다. 장제스는 그의 국민당 정부가 중국 본토를 다시 탈환해 자기 고향인 중국 저장성(Zhejiang : 浙江省) 팽후아시 시코우에 묻히기를 강력히 희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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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부인 송메이링(송미령)과 함께 사용했던 생가내 거실 ⓒ 김상욱^^^ | ||
하지만 어찌 세상 일이 뜻대로만 되겠는가. 유족들은 대만이 중국 대륙을 탈환할 가망이 없다는 판단 아래 최종적으로 두 전직 총통을 대만 땅에 공식 묻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통일이든 탈환이든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장제스가 사망한지 근 30년이 흐른 2004년도에 와서 지금까지의 임시 매장터를 공식 매장터로 영구히 묻히기를 희망한 것이다.
대만 국방부측은 2005년 3, 4월경 국장(國葬, a national funeral)이 열릴 수 있도록 천수이볜(陳水扁)총통에게 요청서를 보낼 것이라고 한다. 현 집권당인 민진당도 두 전직 총통에 대한 대만 안장(安葬)에 지지를 표했다고 한다. 죽어서도 염원(念願)을 풀지 못하고 대륙의 고향 땅을 영원히 밟지 못하는 그의 처지가 새삼스레 안쓰럽기도 하다.
이데올로기가 다르고 정치적 대척점에 있던 사람은 정녕 죽어서도 고향을 갈 수 없다는 말인가? 하기야 수많은 실향민들이 우리에게도 많이 있지만, 제 고향 한 번 제대로 갈 수 없는 처지라 장제스의 처지만 안쓰러운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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