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문서의 이름은 Buenos Aires Consensus 이다. 이 문서는 외채지급이나 사회적 정의, 성장과 부의분배, 교육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다. 또, 미국이 미주공동시장(FTAA)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양국이 주도하는 남미공동시장인 메르코수르의 장래에 관해서 논의하고 있다.
남미의 두 대국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메르코수르를 강화함으로서 미국이 밀어붙이는 FTAA에 대한 협상능력을 높이고, IMF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Buenos Aires Consensus 의 주요기능은 역시 외채협상과 FTAA협상에서 두 나라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이루기는 그다지 쉽지 많은 않을 것이다. 미국의 힘은 역시 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Buenos Aires Consensus 라는 문서의 이름에서는 다소의 비장감이 감돈다. 1994년에 작성되어서 이제까지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미국과 국제금융기관들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기초가 되었던 Washington Consensus 에 대응하려는 의도가 바로 그 이름에서부터 도발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과연 훗날 이 Buenos Aires Consensus가 보다 독립적인 라틴 아메리카를 향한 첫발이었다는 것으로 밝혀지는 그 날이 찾아올 것인가? 아마도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의 삶의 결과가 결정할 것이다.
어쩌면 이 말은 단지 아름다운 수사에만 그치고 점차 기억에서 사라져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과 아르헨티나의 키르츠네르 대통령 모두가 변화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문서는 21가지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대략 다섯 가지 정도의 범주로 묶을 수 있다.
첫째 - 경재발전과 사회정의 : 양국은 ‘자율적인 정책’과 ‘보다 균등한 부의 분배’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려고 한다. 양국은 1990년대에 신자유주의정책을 따랐던 결과, GNP는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심화되는 과정을 겪어왔다. 규제의 완화와 국가의 간섭의 제거를 요구했던 Washington Consensus와는 달리, 이들은 이제 공공기관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지속적인 성장과 이익의 평등한 분배를 촉진하려고 한다.
둘째 - 외채의 상환 : 이것은 이들에게 매우 민감한 문제이다. 어쩌면 이것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상호접근을 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동기였을지도 모른다. 양국은 부와 일자리의 창출, 빈곤의 감축, 교육과 건강의 증진 없이는 외채의 상환은 불가능하다는데 공감했다. 아르헨티나는 IMF와의 협약을 개정하면서 외채를 갚는데 사용해오던 재정의 흑자분을 빈곤율의 감소와 부의 불평등을 감소시키는데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종래의 IMF의 정책을 수정한 것이다. 아르헨티나와 IMF의 재협상에 브라질은 은근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결국 유리한 결과를 도출하도록 했다. 브라질은 자국의 협상에서도 아르헨티나의 선례를 사용할 것이다.
셋째 - 세계화의 요구 : 이 문서는 현재의 세계화를 ‘유례가 없는 전반적인 경제적 집중’이라고 규정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남미공동시장(Mercosur)의 범위를 넘어 남미의 나머지 국가들까지 포함한 경제공동체를 확대하기로 했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들이 90년대의 Washington Consensus에 따른 자본시장의 규제완화로, 엄청난 규모의 자본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에 대해 보다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방안을 만들려고 노력하기로 했다.
넷째 - 자유무역과 미국의 보호주의 : 이 문서는 ‘경제통합이라는 것은 여러 참여국의 서로 다른 조건들에 대해서 균형 잡힌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다.’라고 규정한다. 즉 현재 가장 갈등 요소인 미국은 남미국가의 농산물에 대한 보호 장벽을 치면서, 유독 라틴 아메리카의 국가들에 대해서만 경제적 문호를 열 것을 요구하는 불일치를 지적한 것이다.
다섯째 - UN의 역할과 일방주의 : 이 문서는 비록 미국을 직접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국제연합의 목적과 원칙에 어긋나는 어떤 일방적인 힘의 행사를 거부한다.’라는 일부 국가의 헤게모니에 대한 명백한 비판과 이라크 침공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또 이 문서는 국제적인 평화와 안전과 테러에 대한 국제연합의 역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남미의 두 대국이 이러한 문서에 합의를 했다. 이것은 90년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결별을 선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일부 사람들은 룰라 대통령과 키르츠네르 대통령의 출신을 들어 좌파적 정책이라고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노골적으로 미국에 반발하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을 보면, 확실히 남미에서 미국에 대한 원심력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좌파적 정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차베스대통령을 제외한 이들은 지극히 시장주의자이다. 아들은 단지 ‘상호공정성’을 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남미의 대국이자 또한 채무대국인 두 나라가 IMF와의 채무재협상을 앞둔 시기에 이런 문서에 사인했다는 것, 게다가 그 문서의 이름이 Washington Consensus에 대한 명백한 반대의사를 보인다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저개발국을 착취한다는 IMF의 음모론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더라도, 그동안 IMF가 이들 나라에 가져다 준 것에 대해 이들은 이제 공개적이고 떳떳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채무국이 어떻게? 그들의 시각으로는 그 채무가 쌓이는 과정이 공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떳떳할 수 있는 것이다.
IMF의 고통을 당하기는 했지만 그동안의 각고의 노력으로 이제 외환보유고를 늘리고 있는 우리나라는 일부의 주장에 의하면 오히려 세계화의 수혜국이라고 이야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거시경제의 이야기일 뿐이다. 빈부의 격차와 생활의 고통은 증가되고 있다. 우리의 노동의 많은 부분은 해외로 이전되고 있다. 언젠가는 이런 구조를 깨어야 한다. ‘채무국이니까.’ ‘약소국이니까.’라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바로 Buenos Aires Consensus이다. 이 문서가 그 이름대로 우리에게 신선한 바람(Buenos Aire)를 몰고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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