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강대국 미국에 힘없이 굴복해야 하는 우리 위정자들의 모습을 볼때 마다 한편으로는 약소국의 비애에 따른 서글픔과 동시에 어쩌다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에 대한 허탈함과 절망감,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마저 두루 두루 느끼게 된다.
도대체 경운궁이란 어떤 곳인가?
명색이 한 독립국가의 명실상부한 왕궁유적으로 후세에게 널리 전해져야 할 역사의 현장이요, 문화의 유산인 경운궁의 일부가 왜, 무엇때문에, 어쩌다가 남의 나라 대사관이 들어서야 할 기구한 운명을 맞아야 한단 말인가?
월산대군(성종의 형) 사저로 출발했다가 임진왜란 직후 의주에서 돌아온 선조의 행궁으로 처음 시작된 경운궁은 한때 광해군을 추종하던 대북파 권력자들에 의해 인목대비가 유폐되어 서궁으로 격하되는 수모를 당하였고, 이후 1896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공사관에 있었던 고종이 환궁하면서 본격적인 역사의 흐름이 이루어졌던 중심지였다.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궁의 면적이 다른 궁궐들에 비견될 만큼 커졌던 경운궁이지만, 끝내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막지 못한채 저 극악무도한 일제의 침략과 횡포 앞에 궁궐 대부분이 헐리거나 터전의 일부가 떨어져나가는 등 차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수난을 겪는다.
그리고 그렇게 수난을 겪었던 경운궁의 일부인 옛 경기여고 자리가 이제 또다시 미국이라는 외세 앞에 힘없이 무너질 위기에 놓여 있다. 이렇게 힘없이 문화적 주권이 빼앗겨 가는데도 우리의 위정자들은 오만한 미국의 큰 소리에 이렇다 할 반대의견 하나 없이 묵묵히 내 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경운궁의 옛 터에 끝내 남의 나라 대사관이 들어설 것인가?
우리 스스로의 문화적 자존심을 짓밟으면서 까지 남의 나라 대사관을 짓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정말 울분을 토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그 자리는 왕실의 선왕들을 모시던 진전(초상화를 모시던 전각) 및 혼전 (국상이 났을 때 종묘에 봉안하기 전까지 위폐를 모시던 전각)이 있던 궁궐 가운데에서도 가장 경건하면서 엄숙한 자리인데, 이렇게 엄숙한 자리를 어찌 외국 대사관 건물이나 짓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만일 이대로 넘어간다면 정녕 우리세대는 후손들에게 평생 죄인이 될 지도 모른다. 후손들에게 단 한점의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경운궁 옛 터에 대한 많은 관심이 있어야 겠다. 후손들에게 부끄러움이 없게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뉴스타운
뉴스타운TV 구독 및 시청료 후원하기
뉴스타운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