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우연히 지난 2001년도 수첩을 보다가 발견한 글이다. 지난 2001년 1월에 어느 신문에 상자 기사로 나온 것을 관심 있게 보다가 깨알같은 글씨로 메모해 놓은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겐 큰 시련인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지난 8일이 입동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겨울은 한마디로 시련이다.
'가난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거짓 우정도 곧바로 창문을 열고 달아나 버린다'는 말이 있다.
우리집엔 항상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동네 한복판, 그것도 길에 면해 있었고, 가게를 하고 있어서이기도 했는데 오고 가는 사람들은 마치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듯, 그렇게 사람들의 걸음이 항상 끊이질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식구 많은 집에 항상 열려있는 우리집이 내심 불만이었다. 길을 지나가다가도 부침개 냄새만 나도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와 먹고 가는 사람, 풋고추와 막된장에라도 수저를 보태고 한 그릇에 넣어 먹고, 수다 한보따리 풀어놓고 가는 엉덩이 질긴 동네 아주머니들….
부모님은 사람들에게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하하… 호호… 파안대소하며 마실 나온 아낙들이 수다 한 보따리 마음껏 풀어헤치고 함께 밥까지 먹고 놀다가곤 하면서 열려 있는 우리 집이었다.
그러나, 가난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 그토록 자주 왕래하던 사람들의 발걸음은 뚝 끊어지고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외면하며 지나가는 낯선 모습들을 보았다.
나는 외상장부를 들고 밀린 외상값을 받으러 다니는 심부름을 자주 했지만 거의 대부분 받지 못했다. 빚 독촉에 시달리는 부모님, 예상치 못한 힘겨운 현실….^
가난이 또다시 그렇게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온 뒤,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흘어졌다. 고교 졸업 후 나는 낯선 도시로, 언니도 객지로 나갔고, 남아 있는 가족들은 소도시로 이사를 갔다. 고향집은 버려 둔 채로.
소도시에서 부모님은 어린 동생들을 학교에 보냈다. 고향집은 마치 영혼 없는 육체처럼 차츰 피폐해져 갔다. 세월이 흐를수록 집은 괴기스럽기까지 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나중에 부모님이 십수 년을 객지에서 보낸 뒤 고향집에 다시 들어가셨을 때 동네 사람들은 한가운데 있는 집이 비어 있으니 무서워서 그 골목을 지나다니지 못했다고 말들 했다고 한다. 고향집은 영혼이 육체에 다시 깃든 것처럼 금방 생기를 찾았고, 골목을 환하게 만들었다.
도시에서 십수 년을 힘겹게 사시던 부모님은 다시 고향에 들어가 사신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땅을 일구면서 자연과 가까이 호흡하며 사신다. 작은 꼬마 배를 타고 가끔, 이른 새벽에 바다에 나가셔서 고기를 잡아오시기도 하시는 아버지.
날이 갈수록 고향집이 그립다고, 흙을 일구며 살고 싶다고 노래하시던 아버지의 소원대로 고향집에서 땅과 호흡하며 고향에 아직도 남아있는 사람들과도 함께 호흡하면서 살아가고 계신다.
지금 내 고향집은 불꺼진 방에 환하게 전깃불이 켜진 듯, 환하게 사람 모여 사는 불빛들이 모여 산다. 사람냄새 나는 삶을 산다.
언젠가 본 영화 <하늘과 땅>에서 마음 깊숙한 곳에 들어와 꽂히는 말이 있었다. 그 영화는 두 번이나 봤는데도 볼 때마다 감동이었다.
'산다는 것 자체가 벌 받는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서있는 것이 나의 운명, 고생을 선물로 받는 것도 신에게 가까이 가기 위한 길이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지탱할 수 없는 힘겨운 현실 앞에 설 때마다, 무너져 차라리 일어나고 싶지 않은 절망스러운 현실 앞에서도 나의 엄마는 한 가지 놓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기도였다. 엄마의 삶은 기도의 삶이었다. 우리는 엄마의 기도로 컸다. 그 기도의 수액을 받아 우리는 자랄 수 있었다.
힘들고 지칠 때, 나는 가끔 엄마를 생각한다. 오랜 세월동안 응달진 시장 한 모퉁이를 자리잡고 앉아 콩나물과 여러 가지 채소를 팔면서 기도하면서 희망을 버리지 않으시고 살아오신 엄마. 그 가운데서도 기쁨과 희망을 발견하며 사신 엄마.
난 그에 비하면 엄살을 떨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난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사람들은 내게서 멀어져 가고 사람에 대한 실망할 수 있으나, 그 고난을 통해 '하늘과 땅'에서 말하고 있듯이 신에게 더 가까이 나아가는 길이다. 인생에서 귀한 것을 발견하고 얻을 수 있는 시간이다.
고난은 아프고 쓰지만, 고난을 통해 신에게로 가까이…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되고… 인생의 의미와 가치의 진정성을 찾게 된다. 어떤 환경과 여건 속에 있다 할지라도 그 가운데서 의미를 찾고 삶의 보람과 보배를 찾을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겠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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