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공청단 내치기와 독재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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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의 ‘공청단 내치기와 독재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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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겨져 있던 인재 발굴의 창 공청단의 쇠퇴와 시진핑의 미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제 3임기와 그의 미래. 뉴스사이트 WION 비디오 갈무리 

총리는 엘리트 재상(宰相)으로 추앙되었고, 그의 영향력의 끝은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공청단(중국 공산주의 청년단) 출신의 리커창은 시진핑의 공청단 후배라고 할 수 있다. 원래 공청단은 서민들 속에서 드러나지 않고 있던 인재들을 발굴하고, 정권의 핵심에 끌어 올려 공산다이 주창해온 번영과 안정을 도모하자는 뜻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리커창의 죽음은 사실상 공청단의 쇠퇴를 상징하게 됐다.

어린 시절부터 수재(秀才)로 알려져 경제학 박사 학위를 가진 리커창은 시장화 개혁을 지향, 민간의 활력을 대단히 중시해온 인물이다. 총리 재임 중에는 ‘대중(大衆)에 의한 기업(起業)’을 내세웠다.

리커창의 ‘대중에 의한 기업’은 자칫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이었지만 공산당 일당 지배의 수단으로서의 ‘안정과 번영’의 두 축에서 번영을 가져올 수 있는 수단이 ‘대중에 의한 기업’이라는 설명이 가능했을 것이다.

경제발전보다 ‘국가안전’을 보다 더 무겁게 보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는 하나의 선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 시진핑 주석이 권력집중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리커창 총리는 실권을 빼앗겨 올해 3월 은퇴하기에 이르렀다.

리커창은 1920년 설립된 중국 공산당 하부조직인 “공산주의 청년단” 출신이다. 공청단은 청년들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조직임과 동시에 전국 젊은이들로부터 유망주를 선발, 공산당과 정권을 담당하는 인재를 키우는 구조로 기능을 했다. 전 국가 주석 후진타오(胡錦濤)도 공청단 톱(TOP)의 경험자이며, 리커창은 그 다음 세대로 눈길을 끌었다.

민주적인 선거가 존재하지 않는 중국공산당이 일당 지배를 이어가려면 ‘번영과 안정’이라는 과실로 인한 사람들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당은 뛰어난 지도자 후보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고, 그러한 인재를 배출시킬 수 있는 공청단은 중요한 존재였다.

그러나 시진핀 주석은 그러한 ‘공청단’을 ‘특권적인 집단’으로 간주, 리커창을 비롯해 공청단계의 유력 간부를 은퇴, 좌천으로 몰아넣었다. 당을 지지해 온 제도를 스스로 파괴했다고 할 수 있다.

개혁 지향 리커창은 임기가 끝나기 시작한 지난해 8월 베이다이허 회의가 끝나고, 선전으로 남하, 덩샤오핑(鄧小平)의 동상에 헌화하고, 선전 시찰기간 동안 “개혁개방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며, 황하 장강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덩샤오핑의 동상 아래에서 선전사람들에게 “황무지를 개척하는 소의 정신을 드높여, 개혁개방의 혈로를 뚫고 나가자”고 호소했다.

또 리커창은 중국에는 “중저소득층이 6억 명 있다”고 솔직하게 말한 적이 있다. 시진핑은 베이다이허 회의가 끝나고 북상하여 ‘랴오닝’의 국유기업을 시찰했고, “자력갱생은 국가와 민족발전을 자신의 역량에 두는 기본점”이라고 강조하고, 중국식 현대화는 “소수의 부유가 아니라, 전체인민의 공동부유(共同富裕)”라고 강조했다. 리커창의 발언과는 엇박자가 나는 강조점이다.

리커창은 재해 때는 곧 현지로 날아가 서민의 생활에 관심을 보인 지도자로서도 기억된다. “근면하고 성실하고 검소했으며, 일에는 철두철미해서 정반대의 이해관계를 가진 미국의 헨리 키신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매력적인 인물‘이었던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와 이미지가 겹친다.

리커창의 사후, 안후이성(安徽省)에 있는 엣 거주지에는, 꽃다발을 손에 든 많은 시민이 방문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중국 공산당 체제 하에서 ‘요인의 추도’에는 현 정권에 대한 이의 제기 의도가 내밀하게 흐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1976년 저우언라이 사망 때와 1989년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 사망 당시 모인 시민들이 당국에 배제된 “두개의 천안문 사건”이 상기된다. 이번에도 SNS에 대한 투고가 제한되는 등 당국 측의 엄격한 경계가 엿보였다.

현재 중국은 저출산,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제로코로나 정책이 사라진 이후에도 경제회복은 둔화되고 있다.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시진핑 주석이 주창했던 ‘공동부유’는 슬로건에 그치는 양상이다.

중국 공산다의 엄격한 일당지배 아래에서 그나마 숨겨져 있던 인재들을 발굴, 육성, 국가의 중추로서 끌어다 쓰던 순기능의 공청단을 쇠퇴하게 함으로써, 시진핑 본인에게 충성맹세를 하는 부하들만으로 정권을 굳건하게 하고, 개인 독재를 강화해가는 시진핑 정권의 앞날에 대한 우려들이 외부 세계에서는 넘쳐나고 있다. 정작 본인은 그러한 사실을 인식이나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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