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죽도록 싫어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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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죽도록 싫어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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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 증오는 3가지 기본 정서
- 이스라엘의 3가지 기본정서 : 공포(fear), 질투(envy), 분노(anger)
-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에게서 실존적 두려움(공포심) 느껴
- 이스라엘 사람들, 팔레스타인의 모든 국가적 상징들을 두려워 해
- 이스라엘 사람들, 팔레스타인 임신 ‘인구학적 위협’이라며 두려워 해
- 이스라엘, 팔레스타인들의 포기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는 모습에 분노
-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내부의 힘과 외부의 자존심을 부러워 해
-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문화를 가장 부러워 해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이 미국을 지배한다고 한다. 그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미국사회에서 특히 미국의 정치 분야를 쥐락펴락할 정도로 힘이 막강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일이다. 기술, 자금, 조직이 있는 이스라엘은 옆에 있는 조그마한 이슬람 국가인 팔레스타인을 그토록 싫어하는 것일까?

전에 파리 아메리카대학의 국제관계학 교수였던 중동의 알자지라의 선임 정치 분석가 마르완 비샤라(Marwan Bishara)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증오는 3가지 기본 정서에 의해 형성되고 추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역설적으로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증오할 충분한 이유가 생긴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조국의 폐허 위에 세워진 정착민-식민지 인종차별 국가(settler-colonial apartheid state)이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그렇게 죽도록 싫어할까?

다수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삶과 생계를 통제하고, 가학적이고 조직적으로 위협하며, 봉쇄하고, 투옥해왔으며,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까지를 속박해왔다. 이스라엘에 비해 팔레스타인은 약자이자 소수파이다.

국제사회에서 양국 혹은 다자간 관계는 뻔한 답일 수도 있지만 정반대일 수도 있다. 이스라엘은 소수의 이스라엘인들에 영향을 준 팔레스타인 폭력과 테러를 혐오하지만, 지난 주말처럼 이스라엘은 대체적으로 팔레스타인들에게 대규모의 폭력을 가한다. 팔레스타인의 로켓포와 이스라엘의 첨단 무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증오는 공포(fear), 질투(envy), 분노(anger)”라는 세 가지 기본정서에 의해 형성되고 움직인다고 마르완 비샤라는 주장한다.

특히 공포(두려움)’은 주요한 요소이다. 공포는 비()이성적일 수 있지만 또한 중요하기도 하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모든 영토를 점령하고, 강력한 지역 및 핵보유국이 된 후에도 계속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포는 단순히 물리적 또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실존적이기 때문이다.

2014년 이스라엘의 한 칼럼니스트는 왜 모든 이스라엘인이 겁쟁이인지, 어떤 사회가 비무장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을 먼 거리에서 쏘는 비겁한 군인들을 양산하는지 궁금했다. 4년 후인 2018, 이스라엘 군인들이 며칠 동안 계속해서 수백 명의 비무장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쏘면서 요새화된 방어선 뒤에 숨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비현실적이었다고 이스라엘 칼럼리스트는 말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2005년 공포에 질려 가자(Gaza strip)를 탈출한 대부분 난민인 2백만 명을 비인간적인 봉쇄를 가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강경함(steadfastness), 팔레스타인 통일성(unity), 팔레스타인 민주주의(democracy), 팔레스타인 시(poetry), 그리고 이스라엘 애써 무시하는 팔레스타인 언어와 금지시키려는 팔레스타인 국기를 포함한 모든 팔레스타인 국가 상징들(all Palestinian national symbols)’을 두려워한다.

이스라엘은 특히 팔레스타인 산모들이 아기를 낳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이를 인구학적 위협(demographic threat)”이라고 부른다. 팔레스타인의 번식에 대한 이스라엘의 국가적 강박관념을 반영하듯, 한 역사가는 12년 전 인구통계학이 핵의 이란과 마찬가지로 유대인 국가의 생존에 위협이 된다고 경고했다. 예를 들어, 그의 견해로는 팔레스타인이 2040년에서 2050년까지 다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서의 수십 년간의 경험을 요약한 책에서, 미국의 한 기자는 오늘날 이스라엘 정부는 공포를 불러일으켰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허구이거나 적어도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었다면서 이스라엘은 고립되고, 외롭고, 위협받고, 항상 방어적이고, 항상 어딘가에서 증오의 다음 징후를 주시하며, 간절히 갈망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잘못된 (이스라엘의) 반응이라고 지적했다.

요컨대, 공포는 증오를 발생시킨다. 왜냐하면 다른 이스라엘 관찰자의 말에 따르면, 항상 두려워하는 국가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땅의 원주민들에 대한 호전적인 메시아주의(messianism, 절대적 신앙)와 추악한 인종차별주의(ugly racism)로 형성된 국가 또한 진정으로 독립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또 팔레스타인인들이 포기하지 않거나 굴복하지 않는 것에 대해 항상 화가 나 있다.

이스라엘은 1948년 이후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고, 지역 초강대국이 되어, 아랍 정권들이 굴욕에 굴복하도록 강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승리를 계속 부정하고 있다. 그들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계속 저항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미국, 유럽, 그리고 아랍 정권들과 함께 세계 강대국들을 그들의 편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고립되어 있고, 심지어 잊혀 져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패배를 인정하기는커녕 그들의 기본권을 포기하기를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많은 무고한 피를 손에 묻혔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은 분명 화가 날 일이다. 팔레스타인의 소중한 모든 것을 죽이고, 고문하고, 착취하고, 강탈하지만, 그들은 묵인하지 않을 것이다. 수년에 걸쳐 그들 중 백만 명 이상을 투옥시켰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항복하기를 거부해왔다. 그들은 자유와 독립을 갈망하고, 투쟁하며, 많은 사람들은 식민지 국가로서 이스라엘 자신의 죽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또 팔레스타인 내부의 힘과 외부의 자존심을 부러워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강한 신념과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부러워하며, 아마도 오늘날의 이스라엘인들에게 초기 시온주의자들(Zionists)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오늘날의 이스라엘 징집병 출신의 로보캅스들(Robocops)은 그들의 장갑차 뒤에서 비겁하게 복수를 하며, 흉포한 팔레스타인 용기와 맞서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속한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문화를 가장 부러워하고 있다.

땅에 대한 애착 때문에 시오니즘(Zionism)은 유대인들을 식민지 개척자로 유인하기 위해 만들어야만 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이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경관의 역사, 지리, 자연에 필수불가결한 존재라는 것을 싫어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이 그러한 정당성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 그것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오랫동안 신학과 신화에 의존해왔다.

이스라엘은 길거리, 이웃, 마을의 이름까지 바꾸면서 팔레스타인의 존재의 모든 흔적을 지우거나 묻으려고 노력했다. 한 이스라엘 역사학자의 말에 따르면, “정복자에 의한 예배 장소의 재건에 대한 정확한 유사점을 찾기 위해서는 15세기 후반 스페인이나 비잔틴 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땅 없는 땅에 정착하는 민족인 시오니즘의 근간이 기껏해야 신화적이고 현실에서는 폭력적이며, 식민주의적이라는 살아 있는 증거라는 것을 팔레스타인인들이 싫어한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시오니즘의 꿈을 실현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리고 특히 가자 지구에 사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꿈을 악몽으로 바꿔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을 미화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증오보다 낫다(Love is always better than hate). 증오는 파괴적이고, 증오는 더 많은 증오를 낳는다. 증오는 증오와 미움을 받는 사람들에게 파괴적이다.

이스라엘은 폭력적 과거에 대해 속죄하고, 범죄에 대해 사과하고, 고통에 대해 보상하고, 심지어 특권층인 그들의 고향에서 동등하게 대우할 수 있는 존경과 명예로 그들을 대할 용기가 있다면, 여전히 그 모든 증오를 관용, 부러움, 그리고 분노를 공감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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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i77 2022-08-14 22:31:41
지나치게 편협적인 기사와 확실하지 않은 주장에 근거한 기사에 동의할 수가 없네요.
뉴스 기사라면 사실에 근거하여 팩트를 써야하는건 아닌지...
또한 기사를 다 쓰고 다시한번 본인의 글을 차근차근 읽어보세요... 구글에서 번역하였는지 몰라도 앞뒤 문장조차 맞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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