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 김인호가 증언한 뜻밖의 '감방 동기' 2명
노병 김인호가 증언한 뜻밖의 '감방 동기' 2명
  • 조우석 주필(평론가)
  • 승인 2021.03.2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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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저는 위대한 순교자 김화식 목사 이야기를 전해드린 바 있다. 지금도 그런 분을 소개했다는 게 가슴 뿌듯한데, 오늘은 문재인 출생 의혹 문제와 관련해 등장한 제2의 제보자인 김인호 선생이 알려준 또 다른 뜻밖의 인물 두 분을 소개할까 한다. 이젠 김인호 선생을 모르시는 분은 없을텐데 그래도 짧게 소개를 하자면, 국군 방첩부대원으로 남북을 오가며 첩보활동하셨던 진정 숨어있는 노병이고 문재인의 아버지 문용형이 흥남지역 공산당 거물이라는 걸 폭로하신 엄청난 분이다.

저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만일 그 분이 좌익이었다면 이미 좌파는 그 분을 영웅으로 만들고도 남았을 것이다. 사실 비전향 장기수도 그렇고, 탤런트 문근영의 외할아버지인 빨치산 출신 류낙진조차 영웅으로 통일운동가 따위로 띄워온 게 바로 저들 아니냐? 그에 비해 예우는 그 다음이고 기억해주는 이조차 드문 게 김인호 선생의 케이스이지만, 어쨌거나 그 분의 감방동기는 김화식 목사, 그 한 분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 중 평양교도소에서 만났던 조영창이라는 분도 있는데, 그는 북한의 민족지도자로 저명한 고당 조만식 선의 아들이었다. 그 조영창은 인품이 뛰어났다. 순교하신 김진수 목사를 위해 밤새 철야기도를 올리는 등 진지한 태도는 결코 흔한 게 아니었다.

공자에서 세익스피어까지 오가는 인문학적 지식도 대단했고, 간혹 배꼽 쥐게 만드는 유머감각도 있었는데 한 번은 그분이 눈에 띄게 시무룩하기에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간밤에 아버지 조만식의 꿈을 꿨는데, 영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건 예지몽이었는데, 그 며칠 뒤 북한 로동신문에 기사가 떴다. 당시 평양에 왔던 백범 김구가 조만식 선생을 모시고 서울에 가겠다는 얘기인데, 그 기사를 본 뒤 조영창 씨가 한 마디로 잘라 말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왜? 오로지 북한 주민들만 생각하는 분이 어떻게 그들을 버린 채 남한 땅으로 갈 수 있을까란 걱정이었다.

그렇게 부심하던 조영창 씨와는 끝내 헤어졌는데, 김인호 선생이 평양교도소에서 흥남교도소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훗날 얘기를 들었다. 조영창 씨는 끝내 아오지탄광으로 끌려갔다는 것이다. 자 그런데 조영창보다 더 관심있는 게 또 다른 뜻밖의 재소자인 통일교 문선명씨다. 문선명에 대한 언급은 <능라도여관>이란 책에는 나오지 않고, 그것보다 30년도 더 전인 그러니까 1985년에 나온 ‘서울로 가는 길’에 등장한다. ‘서울로 가는 길’에는 나오던 내용을 왜 <능라도여관>에는 뺐습니까? 라고 제가 김인호 선생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나 “너무 중요한 대목이라서 따로 활용할까 싶어서 그랬다”고 밝히셨다.

자 문선명에 대한 언급을 짧게 하겠다. 내 관심은 기독교에서 하는 이단이다 삼단이다 하는 논쟁과 달리 그 분이 개신교에서 나와 통일교로 가지쳐나가기 이전 모습이다. 그 초창기 모습이 책에 담겼다. 아는 이는 알 듯이 문선명은 평안북도 정주 출생이다. 1954년 서울에서 통일교를 창설했는데, 이건 순결함을 중시하는 가정윤리에 반공사상을 결합한 것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그런 문선명 특유의 반공사상은 지금부터 언급할 북한 교도소 생활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라고 짐작하고 있다. 자 그럼 책에 문선명이 어떻게 그려질까? 김인호 선생은 김화식 목사를 성자라고 표현했지만, 문선명도 “감옥 안의 성자”라고 또렷하게 표현했다. 직접 살펴보자.

“역시 남다른데가 많았다. 그는 항상 곧은 자세로 있었는데, 누구라도 피곤에 지쳐 서로 기대고 벽에 브스듬히 기디서 앉는 게 보통인데, 문선명 선생만은 항시 정좌를 하고 있어 앉음과 잠자리의 누운 태도가 분명했다. 심지어 그는 공산당 골수 간수들까지도 인정하는 모범수였다.” 교도소 작업도 군말 없이 잘 했지만, 새벽에는 두 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 묵상과 기도를 올리는 종교인의 모습도 한결같았다. 금쪽같다는 잠자는 시간을 그만큼 할애한 것부터 예삿일이 아니었다. 실은 문선명만의 새벽 냉수욕도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든 일이었다. 보통 재소자들은 탄광 일을 한 뒤 교도소에서 제공하는 그 더러운 물에 어쩔 수 없이 목욕을 해야 했는데, 문선명은 그걸 거부했다. 대신 먹는 물을 아껴서 조금씩 모은 다음에 수건에 적셔뒀더가 새벽기도 뒤에 깨끗이 몸을 닦는 일을 반복했다.

당시 문선명은 3년 형을 언도 받았고, 죄목은 사회혼란죄로 그건 반동죄와 같은 죄목이었다는 게 김인호 선생의 회고다. 구체적으로는 1948년 북한지역 금지된 종교활동을 어겼던 것이 죄목이었다. 그런 문선명과는 김인호 선생은 함께 출소했다. 흥남지역이 수복된 직후 극적으로 함께 풀려난 것이다. 그렇게 풀려난 뒤 문선명은 서울에서 종교활동을 하면서 거물로 몸집을 불린 뒤 훗날 소련 고르바초프를 만나 그 앞에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무신론을 폐기하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1년 김일성을 만나서는 그 면전에서 주체사상을 내려놓으라고 충고를 했는데, 이 모든 게 흥남교도소 체험과 무관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김인호 선생이라고 하는 놀라운 기억력을 가진 노병 덕분에 위대한 순교자 김화식 목사가 어떻게 공산주의의 희생양으로 돌아가셨는가를 우리는 알게 됐다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문선명이라고 하는 또 다른 종교지도자의 젊을 시절 삶도 우린 알게 됐다. 어쨌거나 이번 방송으로 윤월 스님의 컴퓨터 기억력도 대단하시지만, 김인호 선생의 증언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사람들은 모두 없어지길 고대한다.

※ 이 글은 29일 오전에 방송된 "노병 김인호가 증언한 뜻밖의 '감방 동기' 2명"란 제목의 조우석 칼럼을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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