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국전쟁 기억과 시진핑의 대만 통일 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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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국전쟁 기억과 시진핑의 대만 통일 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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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및 PLA 소장인 쉬옌(许岩)은 “한국전쟁-비용-효과 관점에서”라는 책에서 “33개월간의 전쟁이 끝날 무렵, 40만 명 이상의 중국 군인들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전쟁 포로가 된 2만1000명의 PVA군을 포함하여 약 2만5600명이 실종됐다”고 적었다.
역사학자 및 PLA 소장인 쉬옌(许岩)은 “한국전쟁-비용-효과 관점에서”라는 책에서 “33개월간의 전쟁이 끝날 무렵, 40만 명 이상의 중국 군인들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전쟁 포로가 된 2만1000명의 PVA군을 포함하여 약 2만5600명이 실종됐다”고 적었다.

아래는 17일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가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이해 중국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이 대만 통일을 어떻게 부추기는 가에 대한 기사를 게재했다.

중국 남동부 푸젠성 위로 시원한 가을바람이 막 불기 시작한 195010월 초 어느 날, 당시 취안저우에 본거지를 둔 군인 왕유슈(Wang Yushu, 18)는 솜을 두른 군복을 입고 즉각 쌀쌀한 동북쪽으로 향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왕유슈는 1950년 초 대만 재통일을 위한 중국 인민해방군(PLA) 정치문화선전운동의 일환으로 신설된 대만예술단(Taiwan Art Troupe)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그 예술단의 모든 사람들은 대만 인구의 70% 이상이 공유하고 있는 방언인 호키엔(福建話, Hokkien)이라는 토착언 어를 구사할 줄 알았고, 이들의 초점은 '대만 해방'이라는 사명감을 가득 차 있었다.

왕유슈는 우리 그룹은 대만 해협을 건너기로 되어 있었지만, 한국 전쟁의 발발은 이 계획을 중단시켰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한국전쟁 발발 70년이 지난 지금, 한국전쟁은 사실상 끝났지만(기술적으로는 한국전쟁은 지속되고 있으며, 단지 휴전 상태에 있음), 대만해협을 건너려는 계획은 여전히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냉전 전문가와 역사학자들은 말하고 있다고 scmp는 전했다.

한국전쟁은 당시 마오쩌둥(毛澤東, 모택동) 중국공산당 당수가 이끄는 PLA가 장제스(蔣介石, 장개석)의 국민당 군을 격파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일어났다. 마오는 194910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언하여 장제스가 자신의 국민당 정권을 대만 섬으로 옮기게 했다.

당시 미국은 갈등이 불거지면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중국 내전에 편을 들지 않기로 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1950625일 김일성의 조선인민군이 남조선으로 쳐들어가 옛 소련의 은밀한 지원으로 서울을 점령한 이후 달라졌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 주도의 유엔군 사령부가 한반도에 군대를 배치하는 계기가 됐다.

이틀 뒤 공산주의자들에게 빼앗길 경우 소련의 영향력이 대만까지 확대될 것을 우려한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당시 미국 대통령은 미 7함대를 대만해협에 배치해 마오쩌둥과 장제스의 공격을 저지했다.

화둥사범대학(華東師範大學校, East China Normal University)의 역사학 교수인 셴지화(沈志华, Shen Zhihua)에 따르면, 격분한 마오는 대만대표부를 보류시키면서 김일성에게 중국의 지지를 보냈다고 한다.

셴지화 교수는 자신의 저서 마오, 스탈린, 한국전쟁(Mao, Stalin and the Korean War)에서 마오쩌둥의 눈에는 '대만을 해방시키는 것'이 그가 남은 평생 할 수 있는 마지막 큰 역사적 거래였다고 적었다.

그는 7함대가 대만해협에 침입함으로써 대만을 해방할 수 있는 PLA의 합법성을 박탈했고, 섬에 상륙하는 그들의 길을 차단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마오쩌둥의 반미 분노를 촉발시켰다.

이에 대해 중국 공산당은 미국에 대한 혐오, 경멸, 업신여김을 모든 학교를 중심으로 애국적인 선전과 교육 활동을 전개했다. 더 많은 중국 젊은이들이 미국에 저항하고 북한을 돕기 위한 전쟁, 즉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에 참가하기 위해 인민의용군(PVA, People’s Volunteer Army)에 입대했다.

그 중에는 당시 15세였던 광저우에 본부를 둔 황자오(Huang Zhao, 35)가 있었는데, 1951PVA 공군에 입대하여 전신기사(telegraph operator)자가 됐다. 그는 미국이 우리 대만해협에 진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매우 화가 나서 공군에 입대했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또 다른 사람은 당시 쓰촨성 학생이었던 장제시(Zhang Zeshi, 21)가 베이징 칭화대에서 물리학 공부를 포기하고, 10대 중등학생들을 이끌고 한국 전장(Korean battlefield)의 최전선에서 싸웠다.

역사학자 및 PLA 소장인 쉬옌(许岩)한국전쟁-비용-효과 관점에서라는 책에서 “33개월간의 전쟁이 끝날 무렵, 40만 명 이상의 중국 군인들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전쟁 포로가 된 21000명의 PVA군을 포함하여 약 25600명이 실종됐다고 적었다.

21살의 장제시는 장제스가 정치 정무관(political officers)을 보내 잠입시키고, 장제시의 전우 3분의 2반공영웅(anti-communist heroes)’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을 때 남부의 전쟁 포로 신세였다.

그는 1954년 베이징으로 돌아온 후, PVA의 영어 번역가 겸 협상가였던 장제시는 배신자’'로 분류되어 PLA에서 해임되고 당에 의해 추방됐다. 1981년이 되어서야 그는 복권됐다.

대만을 둘러싼 투쟁은 그가 한국 전쟁을 반성하는 데 있어 여전히 중심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장 씨는 2013년 한국 전쟁이 중국 본토와 대만에서 벌어진 중국인들의 동족상잔(a fratricidal fight)’을 피한 것을 깨닫고 안도했다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10월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에 대만 통일을 위한 PLA의 조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왜냐하면 그는 일부 대만인들이 자신들이 중국인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났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대만 독립 세력은 일본인과 미국인을 친족으로 여기며 중국인을 적군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그런 상황에서 양안전쟁(중국-대만 전쟁)은 이제 형제간의 동족상잔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중앙 지도부가 일단 명령을 내리면 모든 참전용사와 현역 군인과 여성들이 일단 대만을 되찾기로 결심하면 중앙정부에 귀 기울일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카오의 군사 관측통 안토니우스 웡통( Antony Wong Tong )은 중국 본토가 PLA의 전투력을 과대평가하고, 대만의 방어력을 과소평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현대전에서는 미국이 직접 양안전쟁에 개입할 필요가 없고, 전자간섭기술과 위성정보 공유 등 타이베이에 군사적 지원을 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무도 전쟁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북한의 김일성은 미국이 한국전쟁이 발발할 경우, 남한과의 내전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라고 물었다. 결국 미군의 개입으로 한국전쟁은 끝났다.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한국전 전문가 자오 마(Zhao Ma)전시부터 지금까지 중국 공산당이 PVA의 한국전 참전을 정당화하는 핵심 이유로 대만 문제를 부각시켰다면서 선전 운동은 대만 독립을 반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PLA는 통일을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대만을 되찾는 것이 중국 본토의 대대로의 핵심 과제가 됐다고 말했다.

워싱턴과 타이베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 2018대만여행법(臺灣旅行法, Taiwan Travel Act)’을 통과시켜 고위급 인사들의 교류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보다 선진적이고 대규모의 (무기) 시스템을 타이베이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외교관계를 강화했다.

중국은 이러한 조치가 하나의 중국 정책(one-China policy)”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비난했고 PLA는 이후 대만 인근에서 군사 훈련을 강화해왔다. 군사 관측통들은 PLA와 대만군의 더 격렬한 만남이 군사 충돌의 위험도 증가시켜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군사전문지 칸와아시아디펜스(漢和亞洲防務, Kanwa Asian Defence)의 창간자인 안드레이 창(Andrei Chang)양측의 적대감이 치솟을 때, 특히 그들의 애국 교육 속에서 본토의 반대만 독립정서가 강해질 때는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위성사진에 대만해협을 관할하는 중국 본토 동부전구(东部战区, Eastern Theatre Command)가 대만에서 불과 130km 떨어진 푸젠성(福建省, 복건성) 부근의 미사일 여단 사령부와 기지를 업그레이드하고 확장한 모습이 포착됐다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전임자들과 비교해 대만을 되찾고자 하는 마오의 열망을 성취하는 데 더욱 더 열심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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