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길성 광주판사에 보내는 북한개입 추가증거
박길성 광주판사에 보내는 북한개입 추가증거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7.08.0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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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쇠뇌 시킨 광주비디오

▲ ⓒ뉴스타운

이 동영상은 1980년에“김일성훈장을 수여받은 조선기록영화촬영소 편집”으로 자막 돼 있는 북한이 제작한 선전 선동용 기록물입니다. 제목은 “군사파쑈도당을 반대하는 광주인민항쟁”42분의 박진감 넘치고 분노를 자아내는 선동영화입니다.

이른바 “광주비디오” 바로 이 내용을 비디오로 복사하여 광주-전남 일대에 마을 단위 조직단위로 보았다는 것이 바로 이 내용입니다. 1980년에 즉시 제작된 이 기록물이 광주-전남일대에는 물론 1980년대의 대학가를 분노케 하였습니다. 황석영의 ‘넘어 넘어’도 여기에 부합하고, 전라도 사람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5.18, 판검사들이 알고 있는 5.18은 바로 이 ‘광주비디오’ 내용 그대로입니다.

1980.6.6.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는 일본에서 기자들을 모아놓고 “찢어진 깃폭”을 발표하였습니다. 하루에 475명씩이나 도청 지하에서 학살했고, 노인의 머리를 때려 정수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오르게 했고, 여학생 셋을 발가벗겨 희롱한 후 대검으로 등을 찔러 한 손으로 청소차에 집어 던지고, 임산부를 희롱하다가 배를 찔러 타아를 임산부 얼굴에 뿌렸고, 여학생의 젖가슴을 대검으로 도려냈다는 등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모략을 하였습니다.

위 동영상은 1980년 전광석화의 속도로 조선기록영화촐영소가 남쪽 지방에 보낸 비디오입니다. 남쪽 사람들은 이 비디오를 대량 복사하여 은밀한 분위기 속에서 몰래 몰래 보았습니다. 1980.6.6.에 “찢어진 깃폭”에 담겨있는 내용과 이 동영상 내용이 정확히 일치합니다. 6월 6일이라면 5.27.광주사태가 진압된 지 불과 9일 만입니다

넘어 넘어는 북한책 베낀 것

이 기록물에서 카메라에 잡힌 대부분의 주역들은 군사들 중에서도 용병 정도의 날랜 몸놀림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무기와 차량을 자유자재로 다룹니다. 이 기록물에는 현장의 하이라이트들이 응축돼 있습니다. 참고로 신청인 양기남이 자기라고 주장하는 제36광수는 이 동영상 25분 근방에 나오며 무기를 들고 머리와 목에 비표를 한 5명의 무장시위대 속에 끼어 있습니다. 이 장면들은 무기고를 털어 분주하게 나누어 가지고 총기의 기능을 숙달된 매너로 점검하고 총기와 실탄을 분주하게 나누어 작전에 투입되는 과정입니다. 이들 모두의 모습을 보고 저 사람들이 광주의 20대라고 생각할 국민 없을 것입니다.

당시 현장에서 이런 기록을 촬영할 수 있는 대한민국 매체는 없었습니다. 정부가 막았고, 광주의 주역들이 막았습니다. 푸른 눈의 목격자라는 독일 기자 힌츠페터는 5월 23일 외지인들의 안내를 받아 샛길을 통해 광주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2015.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행사에 얼굴이 크게 비쳐진 인물입니다.

그러나 북이 5.18직후 배포한 이 동영상 내용들을 힌츠페터가 다 담을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는 광주뿐만 서울을 위시한 전국의 폭동상황들고 담았습니다. 아마도 1980.5.20. 힌츠페터가 도쿄에 가서 촬영한 것을 독일로 송고한 내용들 중에는 북한이 촬영한 것들을 북한 간첩으로부터 받은 것들이 상당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북한이 광주현장에서 촬영한 것을 세계에 내보내려면 힌츠페터와 같은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 기록물의 하단 부분에는 청취자들의 분노와 증오심을 한껏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광주-전라도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사실로 믿고 있는 내용들이 그대로 쏟아져 나옵니다.

“경상도 괴뢰공정대놈들이 장갑차는 물론 미사일까지 내왔다, . . 야수 같은 인간 도살자 전두환은 광주시민 70%를 무조건 죽이라고 명령했다. . 젊은 놈들은 무조건 죽여라. .관용과 인정은 군대의 금물이다. . 괴로군놈들은 환각제를 마시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조건 찌르고 쏘라는 살인명령을 받았다. . .만족살인에 광분한 괴뢰군놈들. . 동족상쟁을 일삼는 남조선 군사파쑈놈들, , 국민학생은 물론 세 살난 어린이 노인들까지 가리지 않고 살육 . . 임신부 태아를 꺼내 남판치는 치떨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 . 순진한 여학생들의 젖가슴을 도려내고. .잔인성만이 군대의 길이라고 명령했다 피로 물든 광주는 참혹한 인간도살장이 됐고 피의 목욕탕으로 변했다. 하루에 475명이나 도청지하실에 끌어다 죽였다. . 여학생들과 부녀자들을 생매장했다. . 학살된 사람이 2천명을 넘고 부상당한 자가 1만5천을 넘는다. .전두환 도당의 살인만행은 절대로 용서될 수 없다. . 통일이어 어서 오라 민주화와 주국통일을 위해 싸운 공주시민들의 영웅적인 투장은 영원히 승리할 것이다. . 광주인민들이 흘린 피값을 천백배로 받아내며 통일을 향해 전진할 것이다. . 민주 자유 통일의 열망이 솟구치던 광주, 전두환을 영원히 쓸어버릴 새로운 투쟁의 폭풍을 준비하고있다. 인민의 의사를 짓밟은 전두환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

북한이 어째서 사태가 끝나기기 무섭게 전광속화의 속도로 이런 기록물을 제작해 광주-전남일대에 뿌렸겠습니까? 김일성은 어째서 1989. 황석영과 윤이상을 북으로 불러 5.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를 제작해 1991년 전역적으로 상영해 주었겠습니까? 북한이 어째서 해마다 5.18을 북한 전역 시군에서까지 기념하는 것이며, 북한에서 최고인 것들에 어째서 ‘5.18’을 영예의 상징으로 하사하겠습니까?

조선기록영화촬영소가 1980에 제작한 이 내용 그대로가 광주-전남 사람들에는 물론 수많은 국민들에 그대로 투영돼 있습니다. 5.18단체는 물론 현재 이 사건 및 전두환 사건을 지원하는 변호사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5.18의 유일한 바이블로 내세우는 황석영의 ‘넘어 넘어’(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 그대로 투영돼 있습니다. 황석영 이름으로 발간된 이 책은 2011. 신동아 매체로부터 북한 책 2권(주체의 기차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 광주의 분노)를 베껴 쓴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이에 황석영은 그 책을 자기가 쓴 것이 아니라 어떤 조직이 가져다주면서 황석영 이름으로 책을 내야 파급효과도 크고 구속당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요청에 따라 가필하여 발행했다고 하였습니다.

김영택기자의 500명과 5.18기념재단 500명

1. 김영택기자의 500명

광주출신 동아일보 기자 김영택이 검찰에서 “복면한 500명”이 무기반납을 방해하고 계속해서 싸우자고 선동“한 사실을 증언하면서 그 500명의 외지인이 전두환이 광주사태를 키우기 위해 위장 침투시킨 정부군일 것이라고 믿는다는 내용을 검찰에서 진술하였습니다. 수상한 집단 500명에 대한 해석은 달랐지만 그 존재에 대해서는 인정을 한 것입니다. 아래는 그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5월22일 광주시내]金泳澤 당시 동아일보 광주주재기자의 5·18

『500여 명의 시위대를 新군부 측이 의도적으로 투입시켰다』(金泳澤씨의 주장)

진술조서(제2회·1996년 2월7일·요지)

金泳澤(당시 동아일보 광주 주재기자)

진술인은 5·18 광주사태와 관련하여 당청에 왜 서신을 우송했나요.

서신내용에 기재된 바와 같이 5·18 광주사태는, 全斗煥 보안사령관 등 新군부 측에서 12·12 사건을 통해 군권을 장악하고 다시 정권까지 갈취하기 위한 구실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광주시민들을 폭도화시킨 후 이를 진압함으로써 결국 정권장악에 이르게 된 것으로 생각되므로 그에 대한 근거자료를 제공하여 주기 위해서 제가 위와 같은 서신을 우송하여 드린 것입니다.

그럼 全斗煥 등 新군부 측에서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광주사태를 유발하고 이를 무력으로 진압한 것이라는 말인가요.

예, 제가 5·18 광주사태 당시에 동아일보 광주 주재기자로 재직하면서 느낀 바로는 분명히 5·18 광주사태는 全斗煥 등 新군부 측에서 의도적으로 야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진술인은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시위현장에 투입된 상황을 실제로 보았나요.

예, 제가 당시 취재하면서 위와 같이 항쟁본부에서 스피커를 통하여 발표하는 것을 듣고 있었는데, 그 당시 도청 앞 광장에 20~30명 정도의 젊은이들이 도착하자 기존의 시위대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했고, 서로 간에 만세를 부르면서 시위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켰습니다.

그전에도 연·고대생 30여 명이 광주시내에 도착했다고 했는데, 어떤가요.

위와 같이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 500여 명이 광주시내에 나타나던 날 10시45분에 저는 도청 앞에서 취재하고 있었는데, 항쟁본부에서 스피커를 통하여 연·고대생 30명이 광주에 도착했다고 하며 위와 같은 방법으로 환영행사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위와 같이 대학생들로 보이는 사람들을 新군부 측에서 의도적으로 투입했다면, 왜 시위대 측인 항쟁본부에서 그들을 환영했을까요.

그것은 시위대들이, 그 대학생들을 新군부 측에서 의도적으로 위장투입했다는 것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날인 5월23일 오후경 복면부대가 나타나 시위를 더욱 과격화시키고 확산시켰다고 했는데,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위하던가요.

저는 당시에 도청 앞 및 금남로 일대에서 복면부대들이 하는 시위광경을 지켜보았는데, 그들은 수십 대의 버스와 트럭 등 차량을 타고 다니면서 몽둥이를 각자 하나씩 들고 차량을 치면서 『全斗煥 물러가라』, 『신현확 물러가라』, 『계엄해제하라』, 『金大中 석방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이를 통하여 주위에 있는 기존의 시위대들로 하여금 시위를 과격하게 하도록 유도했으며, 그때부터 시위는 더욱 가열되고 확산되었습니다. 그들은 기존의 시위대학생 등이 총기를 반납하고 대화로써 사태를 해결하려고 하자 이를 반대하며 총기를 반납하지 못하도록 제지하고, 『우리는 끝까지 투쟁을 하여야 한다』고 외치면서 시위를 과열시켰습니다.

진술인의 서신내용을 보면 위 복면부대들은 정규 정보원이 아니라 무연고자인 광주 무등갱생원 원생들로서 광주사태 당시 위와 같은 의도하에 이용당한 후 전부 집단으로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의 설을 접했다고 했는데, 어떠한 경위로 그와 같은 말을 듣게 되었나요.

저는 최근까지도 全斗煥 등 新군부 측에서 정권찬탈을 기도하고 시위대들을 폭도화시키기 위한 구실을 만들기 위해 광주사태를 의도적으로 악화·확산시킬 의도로 정규정보원을 투입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95년 12월 초순경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저의 친지로부터 그 당시 투입된 복면 부대원들은 정규정보원들이 아니고 광주 무등갱생원 원생들로서 그들은 시위에 투입되어 위와 같이 이용당한 후 집단 살해되었다는 소문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저는 단순히 첩보제공의 차원에서 김상희 부장검사에게 사신을 보냈을 뿐입니다

2. 5.18기년재단 공식 기록에 기재된 서울서 온 대학생 500명

5.18기념재단 홈페이지 타임라인(상황일지)에도 ‘서울서 온 대학생 500명 환영행사’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현재 5.18기념재단 홈페이지 ‘타임라인’에는 “1980년 5월 22일 15:08 목요일 맑음 서울서 대학생 500명 광주도착 환영식 거행”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이 이 기록은 2013.부터 2년 동안 기록에서 사라졌다가 2016.6.경 다시 원상복구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1980년 5월 22일 15:08 목요일 맑음 서울서 대학생 500명 광주도착 환영식 거행”이라는 기록은 2013.7경, “시위도중 연행된 시민학생 등 800명 석방되어 도청도착” 이라는 내용으로 조작됐습니다.

그러다 가2016.6. 한 네티즌이 “최초석방자는 33명이고, 이들은 5월 23일 19:40분에 도청광장에 도착했다고 같은 타임라임에 기록돼 있는데 5월 22일 15:08분에 석방자가 800명씩이나 도청에 왔다는 게 말이 되느냐 따지자 다시 원상복구되었습니다. 5.18단체가 불리한 기록을 자꾸만 조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결

김영택기자의 검찰조서 내용을 보나 5.18기념재단 기록을 보나 외지인 500명의 존재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분명하게 존재했던 이 500명 외지인에 대한 정체가 공식 부정되거나 해명되지 않는 한 5.18을 순수한 민주화운동이라 할 수 없을 것이며, 5.18에 북한군이 절대로 오지 않았다 재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500명은 5.18의 성격규정을 하는데 반드시 풀지 않으면 안 되는 목엣가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핵심쟁점에 대해 누가 규명하였습니까. 1997대법원이 규명하였습니까. 미CIA가 규명하였습니까. 김관진과 정홍원이 규명하였습니까. 전두환이 규명하였습니까. 5.18특별법이 규명하였습니까? 그런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5.18에 외지인 개입이 전혀 없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이는 “증명이 없는 판단”의 전형이 될 것입니다.1960. 신천박물관 모략과 1980.광주모략의 일치

1980년 광주의 모략적 유언비어는 1980. 광주비디오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고 1960. 김일성이 미군을 모략하기 위해 건립한 황해도 신천박물관 모델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학살자 부풀리기가 일치하고, 워커장군살인명령 내용과 전두환의 살인명력이 정확히 일치하고, 여성의 젖가슴, 톱으로 머리 자르기, 어린아이들고 부녀자들의 생매장, 사람들을 동굴에 가둬놓고 다이너마이트로 폭발, 여상을 찢어죽이기, 여성의 생이빨 빼기, 여성 정수리에 대못 박기 등 그 잔인함에 대한 모략 개념이 1980. 광주에 그대로 이동되었습니다. 아래는 광주비디오 내용의 일단입니다.

“경상도 괴뢰공정대놈들이 장갑차는 물론 미사일까지 내왔다, . . 야수 같은 인간 도살자 전두환은 광주시민 70%를 무조건 죽이라고 명령했다. . 젊은 놈들은 무조건 죽여라. .관용과 인정은 군대의 금물이다. . 괴로군놈들은 환각제를 마시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조건 찌르고 쏘라는 살인명령을 받았다. . .만족살인에 광분한 괴뢰군놈들. . 동족상쟁을 일삼는 남조선 군사파쑈놈들, , 국민학생은 물론 세 살난 어린이 노인들까지 가리지 않고 살육 . . 임신부 태아를 꺼내 남판치는 치떨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 . 순진한 여학생들의 젖가슴을 도려내고. .잔인성만이 군대의 길이라고 명령했다 피로 물든 광주는 참혹한 인간도살장이 됐고 피의 목욕탕으로 변했다. 하루에 475명이나 도청지하실에 끌어다 죽였다. . 여학생들과 부녀자들을 생매장했다. . 학살된 사람이 2천명을 넘고 부상당한 자가 1만5천을 넘는다

다음은 신천박물관 내용입니다.

▲ ⓒ뉴스타운
▲ ⓒ뉴스타운

미제8군사령관 워커의 명령

닥치는 대로 죽이라설사 그대들 앞에 나타난 것이 어린이나 로인이라 할지라도 손이 떨려서는 안 된다그대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조선사람들을 죽임으로써 미국 국민으로서의 임무를 다하라

위 내용은 ‘5-가’항에 나오는 “전두환의 살인명령 내용과 자구만 다를 뿐, 그 내용과 형식이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 모든 모략내용들은 단지 그 대상이 미국이냐 한국이냐만 다를 뿐, 정확히 그 개념이 일치합니다. 5.18을 북한이 만든 모략의 역사라는 뜻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뉴스타운

최미애와 무장괴한 조직 10명

5.18측 사람들이 늘 내세우는 인물이 있습니다. 최미애입니다. 그녀는 23세의 만삭으로 영어교사인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며 문 앞에 나와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다가 계엄군의 M16으로 무참히 사살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최미애가 총을 맞아 쓰러지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는 광주의 안 노인이 참깨방송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공수부대원 여러 명이 얼굴에 시꺼먼 칠을 하고 가정집에 마구 들어와 젊은 사람 내놓으라 행패를 부리다 나가는 것을 뒤따라가 보았는데 총을 마구 쏘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쪼그리고 앉아있던 최미애가 공수대원이 쏜 총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보고 정신없이 남의 담을 넘어 집으로 왔다는 내용입니다. 얼굴에 무엇을 징하게 발라 우둘투들 해보이고 무서웠다는 말을 강조했습니다.아래 사진은 그 할머니가 말하는 그 공수대원들의 사진입니다.

10명 중 M1소총을 든 사람이 5명 보이고, 막대기를 든 사람이 3명 보입니다. 공수부대일 수 없습니다. 옷도 얼룩무늬 옷과 무늬가 없는 일반 군복을 섞어 입었고, 머리가 군대 머리가 아닙니다. 이렇게 군인 흉내를 엉성하게 한 10명이 5명의 시민을 엎드려놓고 기획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원으로 표시된 3명이 얼굴에 검은 위장크림을 발랐습니다. 당시 공수부대는 얼굴에 위장크림을 바르지 않았고, 이렇게 개별행동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내용은 2명의 공수부대원이 이 동영상 말미에 증언하였습니다.

이들 10명은 광주의 20대가 아닙니다. 광주의 20대 시민들은 이렇게 10명씩 조직해 본 적이 없으며, 광주시민이 또 다른 광주시민을 이렇게 엎드리게 해놓고 공포를 줄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구태여 할머니의 증언이 없다 해도 이 사진은 사진 자체만으로 광주에, 지금 우리가 보아도 섬뜩하게 보이는 괴한조직, 총과 몽둥이로 무장한 괴한 조직이 있었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이 무장한 괴한들이 광주사람이라는 증명이 없는 한 5.18에 외지인이 없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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