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수죽이기 5.18 대표선수로 나선 박남선-심복례-곽희성-백성남
광수죽이기 5.18 대표선수로 나선 박남선-심복례-곽희성-백성남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7.07.24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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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지법 두 부장판사 이창한과 김동규는 기네스북에 올려야

▲ 5.18당시 사진 ⓒ뉴스타운

2015년 5월부터 뉴스타운에서 호외지를 통해 광수의 존재를 널리 보도했다. 이에 다급해진 5.18단체는 물론 광주 전체가 광수 죽이기 작전에 나섰다. 5.18단체들이 소송당사지로 나섰다. 여기에 더해 그 단체들이 4명의 광수죽이기 대표선수를 내보냈다. 박남선(62), 심복례(76), 곽희선(56), 백용수 신부가 나섰다. 망 백용수에 대해서는 그의 조카라는 백성남이 대신 나섰다,

5.18단체들과 이들 4인은 광주족들의 광수지우기 작전 초기 대표 장수들로 나왔다. 이들이 가처분신청서를 광주법원에 내자 광주법원 부장판사 이창한은 서류 접수 3일 만에 소송당사자인 나와 뉴스타운에 통지조차 하지 않고 도둑재판을 했다. 

광주인간들이 사기(위계)로 신청한 가처분 사건에서 광주족들이 허위로 주장한 모든 것을 그대로 100% 반영하여 인용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이 네 5.18단체들은 대부분 깡패-조폭집단으로 광주-전남 일대에서는 물론 서울에까지 와서 폭력을 휘두르는 이른바 적폐세력이다. 그런데 이들이 권고하여 소송당사자로 나온 4명중 3인은 왜 자기들의 얼굴이 광수의 얼굴과 같은 것인지에 대해 입증을 하지 못했다.

광주지법 두 부장판사 이창한과 김동규는 기네스북에 올려야

박남선은 자기가 황장엽으로 지정된 71광수라 주장했고, 심복례는 처음에는 제62광수 리을설이라고 주장했다.이창한 부장 판사와 김동규 부장판사는 이 두 사람과 함께 곽희성, 백성남의 주장을 그대로 다 받아들였다. 그 후 호외지 발간은 강제로 중단됐다.

그런데 국제수준의 코미디가 심복례에 의해 발생했다. 심복례는 이창한-김동규 두 부장판사의 인용이라는 엄청난 선물을 받아들여 놓고서도 돌연히 그 두 판사들의 뺨을 때렸다. “저 두 판사들, 이창한과 김동규는 거짓 판결을 했다. 두 판사는 내가 주장하는 그대로 내 얼굴이 제62광수(리을설)라 판결했다. 양심이 없는 판사들이다. 나는 62광수가 아니라 제139광수(홍일천, 김정일 첫 부인)다”. 이렇게 주장을 바꾼 것이다.

대한민국의 부장판사 두 사람이 이런 수준인 것이다. 이는 기네스북에 올려야만 하는 중대사건이다. 나는 이 두 판사들의 이름을 누군가 기네스북에 올릴 수 있게 되기는 간절히 소망한다. 세계 전체 판사들의 명예를 소중히 지켜주기 위해서다. 

결론적으로 나는 나를 죽이기 위해 형사-가처분-손배소 사건에 나선 4명의 광주인들 모두가 위계(거짓 계략)에 의해 소송에 나선 것으로 판단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2017.7.7. 광주법원에서는 개인자격의 원고 4사람을 놓고 자기가 왜 광수인지에 대해 묻는 이른바 신문이 있었다. 원고측 변호인 피고측 변호인 재판장이 번갈아 묻는 절차가 진행됐다.

박남선의 위계(거짓 계략)

(광주재판의 7.7.자 광주재판 녹취록에 터 잡아)

1. 박남선은 5.18기간에 무장시민의 총지휘관이었다(박남선 녹취 2쪽)

2. 제71광수는 박남선인데, 원고가 재71광수 얼굴 중 턱 부분을 조작하여 황장엽과 비슷한 얼굴로 바꾸어 놓았다(8쪽).

3. 제71광수 주변에 있는 사람들 즉 박남선이 지휘하는 사람들은 당시 신분을 파악할 필요가 없어서 누군지 모른다.(9쪽)

4. “황장엽은 코 모양, 입 모양, 뺨에 크고 높게 돌출돼 있는 에스자형 근육, 아래위로 나 있는 크고 작은 두 개의 사마귀점이 있는데 박남선의 얼굴에는 그런 특정점이 없었지요”라는 질문에 박남선은 “예,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10쪽)

5. 박남선은 M16유탄발사기를 공수부대와 전투 중에 노획한 무기라고 답했다(10쪽). 그러나 당시 공수부대는 M16유탄발사기를 소지하지 않았다. 모든 공수대원들은 M16소총을 등 뒤에 X자 형으로 메고 뛰었다.

6. M16유탄발사기 중 유탄과 유탄발사 구성품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사진이 무엇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박남선은 처음 보는 것이라 모른다고 답했다(11쪽).

7. M16유탄발사기 완성품 사진을 보여주면서5.56미리 총탄을 발사할 때와 유탄(수류탄 효력)을 발사할 때 각기 어느 가늠쇠를 사용하느냐고 묻자 M16유탄발사기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11쪽).

8. 박남선이 들고 있던 무전기는 어디에서 났느냐는 물음에 박남선은 도청에 이런 무전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고 답했다(11쪽). 하지만 제71광수가 들고 있던 무전기는 워키토키로 당시 경찰이나 군이 소유하고 있던 장비가 이니거니와 무전기는 발전 속도가 빨라 무기고 자장품목이 아니었다. 위 사진의 무전기는 5.18당시 무전병이 지고 다니던 군용무전기이고, 현재의 무전기는 아래 사진과 같다.

제71광수가 가지고 있던 무전기는 주파수를 바꿀 수 있는 밴드가 좁고 통달거리가 작고 보안성이 없는 개인 또는 소규모 조직이 사용하는 민간용 워키토키다. 무기고에서나 군에서 나온 장비가 아니다.

9. 박남선은 일주일동안 광주가 피바다였기에 (낮에는 물론) 잠을 잘 때도 워커를 신고 잤다고 했다(13쪽). 그런데 제71광수는 검정색 사제 단화를 신었다.

10. 김청길, 김종배, 정상용, 허유정(주:5.18영웅) 등은 5월 23일에는 광주인이 아닌 사람들이 도청을 장악했다고 진술하는데 맞는가요?라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심복례의 위계

1. 심복례는 가처분사건에서는 자신이 제62광수라고 했다가 1개월 후 돌연 주장을 바꾸어 자신은 제62광수가 아니라 제139광수라 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기억을 못한다, 나는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른다고 답했다(5쪽).

2. 제62광수와 제139광수는 모습과 역할이 매우 다른데, 주장을 바꾼 이유가 무언가요하는 질문에 모른다. 바꾸지 않았다고 답했다.

3. 고소장에서는 5.18기년재단 청년회장의 전화를 받고 자기가 제139광수라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었는데 2017.7.7. 신문에서는 청연회장의 이름도 모르고 혼자 결정한일이라고 답했다(5쪽).

4. 심복례는 가족사진을 보여주고 김인태의 얼굴을 가리키며 이 사람이 김인태인가요 묻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6쪽). 위 1,2,3,4항만 보아도 심복례는 스스로 소송에 나설 처지가 못 되는 사람으로 보인다.

5. 지만원으로 인해 주위로부터 간첩이다 북한군이다 하는 말을 들은 적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6쪽). 지만원으로 인해 명예훼손을 당한 적이 없다는 말이다. 계산이 없는 정직한 대답이다.

6. 피고측 변호인이 사이버추모공간에 심복례이름으로 기재돼 있는 “여전히 하나밖에 없는 남편”이라는 제목의 글 “해남에서 농사를 짓던 김인태 씨가 광주와 맺고 있는 연이라고는 큰아들이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하숙을 하고 있다는 것 밖에 없었다. 

김인태 씨는 손이 귀한 집의 독자로 태어나 심복례씨와 결혼해 아들 넷과 딸 둘을 낳아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김인태씨의 큰 아들이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1980년 2월에 졸업했으나 하숙비를 해결하지 못해 집으로 가지 못하고 있었다. 

1980년 5월 19일이 돼서야 그동안 농사일로 바빠 해결하지 못했던 큰아들의 밀린 하숙비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집에 남겨두고 광주로 향했다. 집을 나선 김인태씨는 열흘이 넘게 소식이 없었다. 심복례씨는 별일 없을 거라는 믿음으로 남편을 기다렸다. 5월 말께, 심복례씨는 장을 보기 위해 시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만난 면사무소 직원에게 김인태씨의 사망통지서가 면사무소에 도착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를 모두 찬찬히 읽어주며 이 내용이 맞느냐고 묻자 심복례는 맞다 사실이다 라고 답했다(7-8쪽),

그 추모공간에는 심복례의 동영상다큐가 게시돼 있다. “지금 29살 막둥이가 그 때는 1살이었다. 젖을 묵응께 업고 갔다”. 1살짜리 젖먹이를 업고 광주로 간 것이다. 그런데 심복례가 자기라고 주장한 제139광수는 덩치가 매우 크고 우람한 여인인데다 젖먹이도 업고 있지 않다. 반면 심복례는 키가 겨우 150cm정도로 보이는 매우 왜소한 체격을 거지고 있다.

구글에서 '망월동 가매장'으로 검색하면 1999.5.에 심복례가 남편 김인태 주검에 대해 증언한 증언록이 나온다. 시누이 등 동네사람들과 함께 해남에서 목포를 경유, 도청에 도착한 기각이 5.30. 오전 8시였고,시에서 내준 버스를 타고 곧장 망월동에 가서 가매장 직전의 남편을 처음 보았다는 것이다.

 “열흘 후쯤(5월 29일로 추정) 막내아들 동일이를 들쳐업고 농협­면사무소 바로 옆­에 비료를 사러 나갔다가 버스정류장에서 유연히 산이면사무소 직원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직원이 ‘아주머니 면사무소로 남편의 사망통지서가 왔으니 빨리 가보세요’라고 말해 곧장 면사무소로 갔습니다. 

사망통지서에는 남편이 망월동 묘역에 가매장되었으니 29일까지 와서 시신을 확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의 호주머니에 들어있던 주민등록증을 보고 통지서가 해남 산이면사무소로 보내진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광주로 나가는 교통편이 많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다음날인 30일 아침 6시경 시누이와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똑딱선을 30만원에 빌려 목포까지 나왔습니다. 

목포에서 광주로 오는 버스를 타고 도청 앞에 도착하니 아침 8시쯤 되었더군요. 도청 앞에는 저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있다가 시에서 내준 버스를 타고 곧장 망월동 묘역으로 출발했습니다. 망월동에는 이미 구덩이를 파놓았고 관은 한쪽에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하루에 시신을 15구씩 확인 매장한다고 했는데, 남편의 시신을 확인하고 함께 온 시누이, 동네 어르신들과 장례를 치렀습니다. 관 뚜껑을 열자 남편의 시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어 있었고 핏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한 식구라 남편의 체격이나 형상을 알아보는데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시신의 형태는 어떻게 죽었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온몸에 피가 낭자하고 부어 있었습니다. 최근 묘를 이장하면서 시신을 재부검해보니 심한 구타로 인한 두개골 압박골절 때문에 사망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김인태(망월동 가매장으로 검색)

제139광수가 촬영된 날은 1980.5.23. 하지만 심복레가 남편의 관을 처음 맞이한 곳은 망월동, 날짜는 5.10.이었다.

곽희성(당시 20세)의 위계

1. 상황에 대한 허위성: 제184광수가 본인인데, 당시 본인은 YWCA 옥상에서 카빈소총을 메고 보초를 서고 있으면서 도청에서 부르는 애국가를 따라 부르고 있다가 촬영되었다고 주장한다(2쪽). 총은 그냥 들고 있었고, 총 다루는 방법은 몰랐다고 증언했다(7쪽). 그러나 이 진술은 이치에 맞지 않고, 상황에 맞지 않는다.

1) 10층짜리 전일빌딩 마즌편 건물인 YWCA는 고층건물이다. 곽희성의 얼굴 사진은 매우 선명하고 화질이 좋아 누군가가 바로 근접해서 찍은 사진이다. 고층건물 옥상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사진이라면 사진사가 옥상에 함께 올라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그는 누가 특별히 옥상에까지 올라와 근접한 거리에서 사진을 찍어주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2) 곽희성은 도청 앞에서 부르는 애국가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제184광수 얼굴은 애국가를 부르는 얼굴이 아니다.

3) 알리바이도 성립되지 않는다. 도청에서 애국가를 불렀다면 영화 ‘화려한 휴가’가 핵심장면으로 묘사한 바로 그 오후 1시이고, 이제까지 널리 알려진 바의 그 오후 1시다. 오후 1시에 계엄군으로부터 무차별 사격을 받고“우리도 총이 있어야 한다며 나선 것이 무기고 탈취로 이어졌다”는 것이 5.18측의 정설이다. 수사기록에도 무기가 일반시민에 배포된 시각은 5.21.오후 5시경이다. 그런데 곽희성은 오후 1시 그 유명한 시각에 총을 메고 도청 앞 인파를 내려다 보면서 함께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다 주장한다. 알리바이 성립이 안 되는 것이다.

4) 그는 또 군대를 가기 전이라 소총 다루는 법을 알지 못한 채 그냥 메고만 있는 상태로 보초를 섰다고 한다. 무기를 사용할 줄도 모르면서 무기를 들고 있는 다는 것은 자살행위다. 또한 작전의 중요한 지형지물인 고층 빌딩을 총도 쏠 줄 모르는 이런 어린 사람에게 일임할 조직은 있을 수 없다. 또한 보초를 서려면 반드시 통신수단을 가동해야 한다. 높은 건물 옥상에서 보초를 선다는 것은 시야가 좋은 높은 곳에서 주위상황을 잘 내려다보고 시기각각 변하는 상황을 무전병처럼 보고하라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곽희성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2. 얼굴 생김새에 대한 허위성: 피고측 변호인이 물은 “카빈총을 든 인물은 얼굴이 길고, 광대뼈가 크게 돌출돼 있고, 코가 매우 크고, 눈썹이 일자이고, 턱선이 뾰족하고, 이른바 아구 부분이 강하게 튀어나왔고, 당시 남한에서는 드물었던 장발에다 화이버 모를 썼고, 콧수염을 길렀고, 얼굴형이 좀 험악해 보이는 30-40대 얼굴로 보이지요?” 라는 질문에 대해 곽희성은 생김새에 대해서는 일체 말이 없고, 단지 당시에는 “장발이 유행”이었다는 답변만 하면서(6쪽) 얼굴 특징을 따지는 질문을 동문서답으로 회피하였다.

“원고가 고소장에 첨부해서 제출한 을제90호증의 2에 나오는 얼굴들은 매우 어려 보이고, 광대뼈가 없고, 눈썹이 초승달처럼 동그랗고, 얼굴형이 곱상하고, 턱선이 완만하게 둥글어 보이지요?”라는 질문에 곽희성은 고소장에 제출한 사진은 1982년 사진인데 그 때는 면도도 하고 머리도 짧게 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고, 5.18때는 며칠 동안 씻지도 못하고 세면도 못한 상태라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답했다(6쪽). 

그러나 두 사진의 차이는 면도와 두발의 문제가 아니라 얼굴 구조와 생김새에 대한 문제다. 제184광수의 특징은 두툼한 입술, 힘 있는 광대뼈,긴 얼굴, 묵직한 코, 매서운 눈매, 일자 눈썹, 뽀족한 턱선, 단련된 뼈대 등이며 이 얼굴을 30-40대의 얼굴이지 20세의 얼굴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원고 곽희성은 법정 신문을 통해 왜 본인이 제184광수와 같은 얼굴인지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고, 설명할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설명 하려하지도 않았다.

백성남의 위계

1. 백성남이 제출한 그의 작은 아버지 백용수의 사진 3매는 5.18 전후에 촬영된 사진들이다(3쪽). 백성남은 백용수의 목 부위가 빨간색으로 변해 있어서 금방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5쪽), 피고의 변호인은 을제91호증의 2 내지 4를 보여주면서 목 부위 어디가 어떻게 빨갛게 되었다는 것이냐 질문하자 백성남은 백용수가 늘 음식을 먹으면 목에 고여 저희들보고 만져달라 해서 빨개졌다고 답했다(5-6쪽).

재판장이 이를 확인하기 위해 동영상을 틀어 백용수가 나오는 화면을 정지시켜 보여주었으나, 백성남은 “목부위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이렇게 봐서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6쪽). 사진에서는 확인이 안 된다는 말이었다.즉 목부위를 가지고 제184광수가 백용수가 틀립 없다고 주장했었는데 그것이 확인되지 못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백성남은 제176광수가 백용수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한 것이다.

이어서 피고측 변호인은 을제91호증의 2 내지 4를 보여주면서 176광수와 북한의 김진범은 두 얼굴 모드가 하관이 뾰족하게 바르고, 매우 특이한 모양의 코가 두 사람 사이에 정확히 일치하는 것으로 보이고, 눈썹, 눈매, 인상이 동일해 보이지 않느냐 물었지만 백성남은 “닮아 보이지 않습니다. 눈이 다릅니다” 이렇게 답했다(6쪽). 답을 회피한 것이다.

176광수와 김진범의 사진을 보고 두 사람이 닮지 않았다고 생각하느냐의 질문에 백성남은 비슷하기는 한데 아니라고 답했다(6쪽). 이어서 코 모양, 턱 모양이 전자의 2사람에게는 일치하는데 백용수의 경우에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물음에 백성남은 “인상을 가지고 표현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턱이 뾰족하냐 동그라냐고 물어보시면 제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라 대답을 회피했고(6쪽), 전자의 두 얼굴은 삼각형 얼굴이지만 백용수의 얼굴은 직사각형의 얼굴이 아니냐고 묻자 백성남은 “잘 모르겠다, 인상에 대하 자꾸 몰어보시는데 제가 의사도 아니고 그것은 정형과 의사에 물어보십시오”라고 답했다. 박성남의 능력을 가지고는, 얼굴 사진을 놓고 176광수가 백용수라고 주장하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피고의 변호인은 전자의 두 사람은 얼굴의 여려가지 특징들 즉 코, 턱, 이미지, 아구, 얼굴형태(3각얼굴)을 공유하고 있지만, 백용수의 얼굴에는 그와 같은 특징이 전혀 없다고 일일이 열거하여 물었지만, 원고 백성남은 이 질문내용을 뒤집는 답변을 하지 않고 대답을 하지 않거나 잘 모르겠다는 요지로 일관했다.

마지막으로 피고측 변호인은 녹취록 제7쪽에서 노숙자담요가 제176광수와 북한의 김진범이 어째서 같은 인물인지에 대해 기재한 게시문 자료를 인용하여 결정적인 질문을 하였다. “영상분석가인 노숙자 담요는 ‘눈썹, 미간,눈의 외선형, 눈아랫두덩, 콧대, 산근, 인중, 입술, 턱, 귀 모두 일치합니다. 

특히 김진범 만의 부인할 수 없는 특징적인 일치점은 왼쪽 눈 미간쪽 눈썹 아래에 보이는 눈안쪽 끝 바로 위 직경 약 1Cm정도의 넓이로 갈색의 옅은 사마귀 기미점이 30년이 지난 후에도 똑같이 일치하며, 왼쪽입술 끝 아래에 있는 잔근육의 융기면적과 융기정도가 똑 같이 일치합니다.’ 이렇게 분석을 하였는데, 원고는 이 설명 중 어느 것이 잘못된 것인지 지적할 수 있는가요” 이렇게 물었다.

이에 백성남은 ”눈매가 다르고 눈 크기기 다르다“고 답했다. 노숙자 담요는 12개의 얼굴 특징을 열거했는데, 백성남은 단지 ”눈매와 눈의 크기가 다르다”는 대답만 하였다. 백성남은 그가 가장 크게 내세운 “백용수의 목부위”를 설명하지 못했다. 결국 백성님은 게시글에 대한 아무런 분석 없이, 그리고 근거 없이 5.18기념재단의 권고에 따라 무조건 제176광수는 백용수라는 주장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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