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공산폭도에 습격 당한 12개 경찰지서의 표지석
4.3 공산폭도에 습격 당한 12개 경찰지서의 표지석
  • 김동일 칼럼니스트
  • 승인 2016.11.2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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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석 건립에 박근혜 정부가 도움을 준 것은 전혀 없었다

▲ ⓒ뉴스타운

4.3 공산폭도들에게 피습당한 12개 경찰지서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를 기해 남로당 공산폭도들은 제주도 경찰지서 12개를 동시다발로 습격했다. 4.3 폭동의 발발이었다. 이날 습격에는 제주 감찰청과 제1구 경찰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습격은 국방경비대 9연대의 몫이었다. 그러나 남로당 인민해방군과 9연대 프락치 사이에 접선 차질이 벌어짐으로서 감찰청과 1구경찰서는 습격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4.3 새벽 습격당한 경찰지서는 현재 행정상으로 제주시내 지역 3개, 제주시 읍면지역 6개, 서귀포 읍면 지역 3개 지서였다. 파출소 1개소가 전소되었고 다수의 민가들이 불에 탔다. 경찰의 피해는 사망4, 부상6, 행방불명2이었고, 우익인사와 민간인 8명이 피살되었고 19명이 부상을 당했다.

4월 3일 습격 당시 남로당 폭도들은 경찰지서만 습격한 것이 아니라 미리 지목해 두었던 우익인사들의 집을 습격하여 가옥을 불태우고 우익인사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폭도들의 죽창에 저항하며 도망갔던 우익인사들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심한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남로당이 폭동을 일으킨 4월 3일부터 대한민국이 건국되는 8월 15일까지의 제주도는 남로당의 세상이었다. 4월 4일 남로당은 현상 공고를 내걸었다. 경찰관을 살해하는 폭도에게는 순경 1인당 1만원, 경위급 이상 2만원의 현상금 공고를 걸고 경찰 살해를 독려했고, 대낮에도 우익인사 집을 습격하여 집에 불을 지르고 가족들을 살해했다.

제주 4.3 바로잡기의 태동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며 4.3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며 일어났던 폭동에서 획기적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었다. 건국 반대 공산폭동은 이승만의 탄압에 저항한 항쟁으로 둔갑하고, 지서를 습격하고 민가에 불을 지르고 죽창으로 사람들을 잡던 폭도들은 무고한 희생자로 둔갑하여 거대한 4.3 평화공원에 누워 대한민국의 혈세를 먹을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4.3은 다시 한 번 획기적인 변신술을 부렸다. 4.3 폭동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된 것이다. 그러나 애국인사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4.3 국가추념일 지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4.3 정부보고서 문제점, 4.3 평화공원의 불량위패 존재에도 문제를 제기하여 박근혜 정부의 4.3 왜곡 수정 결정을 이끌어 내었던 것이다.

제주 4.3 바로잡기에 앞장을 섰던 것은 제주도의 보수단체들로, 제주 4.3 정립연구유족회와 자유논객연합은 단연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 자유논객연합은 중앙을 무대로 활동하는 보수단체였지만 회장이 제주도 사람인 관계로 4.3 전쟁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논객연합은 4.3 정부보고서의 문제점을 파고들었고, 제주 4.3 정립연구유족회는 불량위패와 4.3 평화기념관의 문제점을 파고들었다.

그중에도 제주 4.3 정립연구유족회(4.3정립유족회)의 활약은 눈부신 것이었다. 특히 4.3 평화공원의 불량위패 문제는 수 년 간에 걸친 연구의 결과로서 방대한 자료를 섭렵한 끝에야 밝혀낼 수 있는 심오한 결과였다. 제주 4.3 정립연구유족회가 이런 정밀하고 방대한 자료를 내놓을 수 있었던 저력은 이들 핵심멤버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동아릴르 만들고 회비를 걷어가며 4.3 왜곡의 연구에 매진한 결과, 그 결과물을 축적해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제주 4.3 정립연구유족회의 활약

4.3 정립유족회의 빛나는 업적이 또 하나 있다. 4.3 당시 습격당한 12개 경찰지서에 표지석을 건립한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각 정권들은 매년 제주 4.3에 수십억의 예산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이 거액의 예산들이 보수우파를 위해 사용된 것은 단 한 푼도 없었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에서도 수 십 억의 4.3 예산은 좌파들의 돈 잔치에만 씌여졌다.

언제 어디서나 보수단체들은 가난했다. 중앙의 거대한 보수단체들도 지갑이 가벼워 손가락만 빠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지방의 조그만 유족단체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었다. 이런 가난한 시절에 표지석 건립 계획은 세워졌다. 4.3 정립유족회가 표지석을 세우려 했던 이유는 순전히 4.3 추념일 때문이었다. 세간에 4.3 불량위패 존재가 드러나게 된 이유도 4.3 추념일 때문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4.3 국가추념일 지정을 추진하자 4.3 정립유족회는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하여 그동안 축척해 놓았던 자료에서 불량위패 자료들을 꺼내어 풀어놓았다. 4.3 불량위패 문제는 나라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4.3 국가추념일에 대한 의견 개진이 행자부로 쏟아져 들어갔다. 4.3 불량위패 문제는 4.3 추념일을 돌려 세우지는 못했지만 국민들에게 4.3 왜곡의 문제점을 충격적으로 각인시키는 데에는 성공했다.

4.3 국가추념일 지정은 4.3 정립유족회를 분발시키기도 했지만 4.3 유족들을 분노시켰고 중앙의 보수단체들도 제주 4.3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아이러니 하게도 4.3 추념일 지정은 서울에서 4.3 세미나가 열릴 때마다 세미나장을 인파로 가득 차게 했고, 4.3 정립유족회 통장에 성금이 들어오게 만들었다.

12개 경찰지서 표지석 건립 계획의 태동

4.3 추념일이 지정되면서 국민들의 눈길을 제주 4.3으로 돌리는 계기를 만들었고, 제주 4.3은 보수우파의 가장 큰 이슈의 하나로 자리 잡으면서 4.3 정립유족회는 보수우파 단체들 중에서도 제주 4.3을 바로잡을 유일한 주인공으로 등극하는 계기도 만들어줬다. 그래서 4.3 추념일은 4.3 정립유족회에게 실망과 탄식도 줬지만 유족회에 성금을 들어오게 하는 계기도 만들어 주었다.

성금이 들어오자 4.3 정립유족회가 처음으로 추진했던 사업이 월평동에 있는 2연대 추모비 재건립이었다. 4.3 당시 4.3 진압에 출동했던 2연대가 월평동을 지나가다가 남로당 인민해방군의 매복기습을 받아 군인 7명이 전사했다. 이에 2연대 장병들이 그 자리에 전사자 추모비를 세웠는데, 그 추모비가 세월을 잘못 만나 길섶 풀밭에 버려져 있던 것을 다시 재정비하여 세웠던 것이다.

두번째로 세운 표지석은 4.3 당시 희생당한 이도종 목사 추모비였다. 이도종 목사는 제주1호 목사로 4.3 당시 순회 예배를 가던 중 무장폭도들에게 붙잡혀 생매장을 당했다. 이도종 목사 추모비는 생매장 당한 그 자리에 세워졌다. 두 번의 표지석 사업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4.3 정립유족회가 계획한 사업이 바로 4.3 폭동 때 습격당한 12개 지서에 표지석을 세우는 사업이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수많은 4.3 표지석을 세우기는 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군인이 양민을 학살했다는 선동왜곡 표지석 건립에만 몰두해 있었기에 4.3 정립유족회의 표지석 사업은 도내의 안보단체들에게도 많은 공감을 얻었고, 표지석 사업에 동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중앙의 단체들도 지원을 표시하고 나서면서 12개 경찰지서에 표지석을 건립하는 계획에 탄력이 받혔다.

4.3 폭동 피습 경찰지서에 표지석 건립

그러나 표지석 건립에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 더군다나 표지석은 1개에 2~3백만 원 하는 고가 였고, 가난하고 조그만 유족 단체에서 하나도 아닌 12개를 세운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였다. 그래서 이 계획은 유족회의 분위기에 따라 추진과 좌초, 침몰과 부상을 거듭하며 오랫동안 4.3 정립유족회의 지상과제로 남아 있었다.

자금 부족으로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4.3 정립유족회에서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 우선 1개만이라도 건립하고 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첫 번째로 간택된 지서는 조천읍 함덕 지서였다. 함덕 지서는 4.3 습격 당시 폭도들에 의해 전소된 지서였고, 납치 살해, 중상 후 순직된 경찰까지 합하면 전부 경찰관 7명이 목숨을 잃었고, 지서가 이전함에 따라 지서의 위치도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함덕지서 옛터는 사유지로 변해 있었고 나대지 상태로 버려진 상태였다. 그래서 표지석은 옛터 입구 돌담에 부착하는 형태로 만들었다. 지서를 습격하여 불태우고 경찰관들을 살해한 남로당 폭도들에 대해서는 노무현 정부가 만들었던 '무장대'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공비'라는 정확한 용어를 사용했고, 공비들의 만행을 기록했다.

함덕지서 표지석이 세워지자 도내 안보단체에서도 동참에 나섰고, 특히 표지석 내용을 보고 중앙의 모 단체는 정기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나섰다. 이런 분위기가 넘쳐나자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겠다는 유족들도 나타났다. 이건 순전히 '진실의 힘'이었다. 4.3의 왜곡만 보다가 4.3의 진실한 표현 앞에서 유족과 단체들이 움직였던 것이었다.

지서 표지석 건립의 난관

습격지서 표지석 건립에는 성금이 척척 들어오고 표지석이 척척 건립되고 이랬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자금이 모자라면 성금이 찰 때까지 무기한 연기해야 했고, 유족회 임원들은 구걸에 나서야 했다. 지서가 이전해버려 사유지로 변한 곳은 지주를 찾아다니며 양해를 구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표지석 건립에 박근혜 정부가 도움을 준 것은 전혀 없었다. 특히 삼양지서 표지석을 세울 때는 제주동부경찰서장이 끝끝내 반대하는 바람에 길 건너편에 표지석을 세우는 촌극도 있었다. 4.3 지서 표지석은 경찰이 앞장서서 세워야 당연했지만 민간이 세워주겠다는 데에도 경찰서장이 반대하는 것은 좌익범람시대의 웃기는 한 풍경이었다. 육지로 전근 갔다는 박근혜 정부하의 그 경찰서장은 민주당의 비례대표나 받을 런지 모르겠다.

4.3 정립유족회는 표지석 사업에 제주도의 지원을 받을 요량으로 제주도에 사회단체 등록 신청을 했다. 사회단체 등록이 되면 제주도에서 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청은 번번이 반려되었다. 원희룡의 제주도가 사회단체 등록 신청에 불가 통보할 때마다 공문에 적어 보내는 문구는 "4.3 정립유족회가 화해와 상생을 저해하는 단체이기 때문"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행자부에도 4.3 담당 부처가 있고, 원희룡의 제주도에도 4.3 담당 부처가 있다. 그러나 4.3 정립유족회는 이들로부터 어떠한 지원이나 도움을 받은 일이 없다. 원희룡은 대놓고 말한다. 4.3 정립유족회가 도지사를 면담하려면 4.3 희생자유족회장과 상의하라고... 4.3 희생자유족회는 좌파유족회로 우파인 4.3 정립유족회보다 몇배나 표가 많기 때문이다. 원희룡은 도와주지 못할망정 고추가루나 뿌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대망의 마지막 지서 표지석 건립 예정

4.3 당시 습격 당한 12개 지서 표지석 건립 사업은 간난고초의 길을 걸으며 이제 마지막 1개를 남겨놓고 있다. 마지막 지서 표지석은 조천읍 조천지서이다. 조천지서는 4.3 당일 습격에는 피해가 크지 않았지만 조천은 4.3 폭동 당시 남로당 세력이 막강했던 지역으로 폭동의 두뇌 역할을 담당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12번째 표지석 건립행사는 4.3 정립유족회의 자축도 곁들일 겸 성대하게 계획하고 있다. 시골에서 성대하게라고 해봤자 별게 없다. 다른 표지석 건립 때보다는 좀 더 많은 인원이 행사에 참가하고, 중앙에서 4.3 바로잡기 활동에 나섰던 '4.3 국민모임'의 단체장 몇분을 모시는 것 말고는 다른 게 없다.

그렇지만 이날의 행사는 4.3 정립유족회에게는 아주 특별하다. 그동안 외롭게 걸어왔던 가시밭길, 박근혜도 원희룡도 그 많은 공무원들도 거들떠보지 않아, 버려진 고아 같았던 4.3 정립유족회가 그 외롭고 거칠고 아팠던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라고 외치는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끝끝내 승리할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다짐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표지석 건립 날짜는 11월 29일 화요일이다. 행사는 11시에 시작이다. 4.3 바로잡기에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들이 서울에는 많다. 이런 많은 분들을 모시고 행사를 하는 게 당연지사겠지만, 제주에 오시는 것이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넘어 오시는 것이기에 모든 분을 모시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11월 29일은 중앙의 애국지사들께서 제주도의 애국지사들께 멀리서나마 축하를 보내도 좋을 날이다.

지서 표지석은 눈물과 역사의 기록

지서 표지석 건립에는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거동도 불편하신 채로 4.3 당시 폭도들의 만행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시던 4.3 유족들, 건립 행사 때마다 빠지는 일 없이 단골로 참석하시곤 하시던 안보단체의 어르신들, 특히 표지석 건립 비용이 모자랄 때마다 자기 일처럼 성금 모금에 앞장서고 독려해 주시던 중앙 모 단체의 김00 사무총장님께는 너무 많은 신세를 졌다.

그리고 4.3 정립유족회는 성금 모금을 하면서 4.3 유족들에게 본의 아니게 너무 많은 거짓말을 했다. 조금만 더 도와주시면 불량위패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번만 도와주시면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불량위패는 정리되지 못했고, 좋은 소식도 가져오지 못했다. 그러나 어쩌랴, 4.3 정립유족회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시대가 4.3 정립유족회를 속였던 것을.

그러나 지서에 건립된 12개의 표지석은 4.3 정립유족회의 노고와 눈물을 증언해 줄 것이다. 좌편향으로 치닫는 시대에 좌익이 범람하는 제주도에서 온갖 고초와 방해를 무릅쓰고 세운 12개의 돌비석은 종이처럼 찢어지지도 않고, 바람처럼 흩어지지도 않고, 성벽처럼 무너지지도 않은 채 꼿꼿이 천년을 서서, 이 제주도에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일군의 대한민국 애국자들이 있었음을 후대들에게 상기시킬 것이다.

지나가는 길손이시여, 대한민국 국민들이시여, 여기 제주도에 세운 12개의 표지석을 보시라. 이 표지석을 뽑는 자 누구인지 눈 부릅뜨고 지키시라. 대한민국이 망하는 날 12개째의 표지석은 뽑힐 것이고, 첫 번째의 표지석이 뽑히는 날에 대한민국에는 망조가 들 것이니, 누군가 이 표지석을 뽑으려는 것을 목도한 사람은 가차 없이 몽둥이로 폭도를 응징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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