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의병은 지금 일어나 아래와 같이 공격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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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4.01.25 1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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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추념일 반대의견 제출하기

4.3 추념일 반대의견 제출하기

4.3 추념일이 입법예고 되었습니다. 입법예고는 입법내용에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여 반영하라고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여기에 최대한 우리의 의견을 반영시켜야 합니다.

1. 입법예고의 담당은 안행부 의정담당관실, 전화, 팩스, 우편으로 최대한 많은 분들이 추념일 반대 의견을 개진해 주십시오. 동시에 청와대 비서실장에게도 편지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2. 의견 제출은 개인이나 단체, 기관 모두 가능합니다. 기간은 2월 26일까지입니다.

3. 제출할 때에는 성명(기관 혹은 단체인 경우에는 명칭과 대표자 성명), 주소 및 전화번호를 기재토록 되어 있습니다. 같은 의견을 아래 안행부와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동시에 보내주시가 바랍니다.

(우)110-760, 서울시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종합청사 안전행정부 의정 담당관실
전화 02- 2100-3149 팩스 02-2100-4091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우)110-820,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로1 대통령비서실

참고의 글 1

4.3 추념일 지정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추념일을 반대해야 할 사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대한민국은 10월폭동, 4.3 폭동, 여순반란, 6.25,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면서 피와 뼈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왜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한 4.3 폭동을 추념해야 합니까.

2001년 헌법재판소는 성우회 등이 낸‘제주4.3사건 특별법’ 위헌심판의 결정문에서 주도적, 적극적으로 살인, 방화 등에 가담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본질을 훼손한 자들을 희생자로 결정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라고 밝히고, 4.3사건 희생자 심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할 대상으로 ①수괴급 공산무장병력 지휘관 또는 중간 간부 ②4·3사건 발발의 책임이 있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핵심 간부 ③무장 유격대와 협력하여 진압군경 및 동인들의 가족, 제헌선거 관여자 등을 살해한 자 ④경찰 등의 가옥과 경찰관서 등 공공시설에 대한 방화 등 폭동행위에 적극 가담한 자라고 명시했습니다.

그런데 그후 4.3 특위에서는 저런 자들까지 전부 희생자로 둔갑시켜 놓았습니다. 폭도사령관, 인민군 사단장, 박진경 연대장을 암살한 남로당원 군인까지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엄연한 위헌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이런 위패에 절을 올려서야 되겠습니까.

4.3 정부보고서의 서문에는 고건 총리가 제주4.3의 성격규명은 후대의 사가들에게 미룬다고 했는데, 4.3 정부보고서의 결론 부분에는 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으로 4.3이 발발하였다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국무총리의 발언을 무시하고 멋대로 4.3 정부고서를 작성한 좌익적 4.3 위원들의 하극상이 벌어졌습니다.

참고의 글 2

“4월 3일을 국가가 추모한다”는 결정이 국회,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의 재가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제주도에는 1921년부터 1948년 4월 3일까지 27년간 ‘소련을 종주국으로 모시는 공산집단’이 일본경찰의 끈질긴 검거를 피해 지하에서 역량을 축적했습니다. 4월 3일은 스탈린-김일성-박헌영으로 이어지는 지휘계통에 따라 대한민국 건국을 위한 5.10 선거를 본격적으로 방해하기 위해 일으킨 무력-반란 폭동의 첫날이었습니다.

4월 3일은 500명 정도의 한라산 유격대와 4,000여 명의 ‘동네빨갱이’들이 연동하여 무수한 경찰과 그 가족 그리고 마을 유지들을 점찍어 살해하기 시작한 날입니다. 이후 2년 동안 본격적인 토벌작전이 진행됐고, 토벌작전의 대상은 한라산 유격대와 그들을 지원하는 제주도 동네 빨갱이 및 그들에 부하뇌동 하는 20만 좌익이었습니다. 1957년 4월 2일, 한라산의 마지막 공비 오원권이 생포될 때까지 무려 9년 동안 제주도 공비들과 동네빨갱이들이 애국자를 살해하였습니다.

이 반란-토벌 사건을 놓고, 당시 국가기관들은 100% “4.3사건은 반란사건”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책들 역시 “4.3 사건은 미제를 몰아내고 민족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제주민중이 일으킨 혁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노무현을 비롯한 지금의 빨갱이들만 “4.3은 미제와 이승만의 박해-학살 행위를 견디다 못해 자위 차원에서 일어선 성스러운 민중항쟁”이라 우기고 있습니다. 지금 “4.3을 국가 차원에서 추모해달라”고 앞장 선 사람들은 노무현 계통의 빨갱이들입니다. 제주도에서는 지금 노무현측 주장이 100% 진실인 것으로 고착돼 있습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서명을 하면 곧바로 “4.3은 미제와 이승만의 만행에 정당하게 항거한 민중항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박근혜가 여기에 서명할 것인가 아닌가? 숨죽여 기다립니다.

참고의 글 3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는 제주에서 4.3 관련하여 죽은 사람이 14,000명 정도라고 기록했다. 제주도에서는 생명에 대한 테러, 파괴, 방화, 강간 등의 반란행위들이 9년 동안이나 지속됐다. 반란세력과 이를 진압하기 위한 토벌대와의 전투가 9년 동안이나 이어져 온 것이다.

충돌에는 당사자가 있다. 한쪽은 빨갱이, 다른 한쪽은 토벌대. 부락 주민들 사이에도 토벌대 편이 있고 빨갱이 편이 있었다. 토벌대의 편에 선 사람들은 동네 유지, 액구청년 등 국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었고, 빨갱이들은 반란자 편에 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제주도는 고립된 지역이라 동네결혼, 근친결혼을 해서 마을 전체가 8촌 이내로 구성된 씨족사회였다. 한 사람이 빨갱이 되면 마을 전체가 빨갱이 부락이 되었다.

1921년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수재 김명식이 제주도에 ‘반역자구락부’를 조직하면서 출발한 제주도 공산화(소련의 국제공산화 작전의 일환), 이로 인해 확산된 빨갱이 세력은 1945년 독립 당시, 제주도 주민의 80-85%나 되었다. 한라산에는 무장유격대가 준동했고, 산의 중간 지대에는 이들 민간 빨갱이들이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다. 마을은 사실상 무장유격대의 동조부대요, 보급창고요 짐을 나르는 수송부대요 첩보부대 역할을 수행했다.

필자는 1967년-71년 사이 월남전에서 4년 동안 전투를 했다. 마을 부근의 도로를 지나다 보면 늘 민간 마을들로부터 사격을 받았다. 부하가 쓰러진다. 지휘관들은 부하가 죽으면 눈이 뒤집힌다. 월남 도지사나 군수의 허가를 받아 그 마을을 통 채로 불바다로 만든 적이 많다. 그보다 20년 전인 제주도 빨갱이들이 어떻게 죽고, 빨갱이 부락들이 어떻게 불탔는지 필자의 눈에는 훤히 짐작이 간다.

당시 빨갱이들은 경찰과 그 가족, 마을 유지와 그 가족들을 찝어서 공격했다. 임산부를 윤간하고, 찌르고, 사지를 자르고, 생매장 하고, 톱으로 목을 베어 잔인하게 죽였다. 빨갱이들이 사람을 죽이는 방법은 김정은이 장성택을 죽인 방법과 똑같다.

이들 빨갱이들에 의해 죽은 군인과 그 가족, 경찰과 그 가족, 마을 유지와 그 가족들은 참으로 참혹하게 죽었고 그래서 가장 억울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빨갱이들은 그들의 죽음이 억울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경찰은 미제의 검은 개이고, 군인은 미제의 노란 개 노릇을 하며 혁명을 방해한 반동분자라는 것이다. 경찰은 검은 옷, 군인은 노란색 카키 옷을 입었기 때문이 빨갱이들이 붙인 이름이다.

제주도의 우익인사들까지도 14,000명중 12,000명 정도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들은 산간마을에 살면서 빨갱이들의 보급창, 수송대, 첩보부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죽은 것이고, 의심가는 행동을 해서 죽은 것이다.

군인과 경찰은 의심이 가는 주민들을 빨갱이들처럼 잔인하게 죽이지는 않았다. 적성마을로부터 피해를 당하면 그 마을은 집단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다. 노근리에서처럼 의심받을 만한 짓을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총을 쏘았다. 의심받는 자들 옆에 있는 사람들도 일부 죽었을 것이다.

마을에서 빨갱이들이 피해를 입으면 빨갱이들이 마을을 태웠고, 마을에서 토벌대가 피해를 입었으면 토벌대가 불을 질렀다. 이것이 한국에서나 월남전에서나 다 같이 볼 수 있었던 빨갱이들과의 전쟁이었다. 제주도 주민의 80-85%가 빨갱이었다면 당시의 충돌 양상으로 보아 28만 제주도 인구 중에 1만여 명만 죽은 것은 매우 적게 죽은 것으로 평가된다.

토벌대는 주민들을 게릴라와 분리시키기 위해 선무활동을 많이 했다. 나중에는 산간부락 주민들을 해안가 집단촌으로 옮겨 게릴라들과 멀리 떼어놓았다. 빨갱이로부터 전향한 사람들을 교육시켜 산으로 보내, 하산하기를 거부하는 수많은 주민들을 설득하게 했다. 주민들에게 군이 무장한 새로운 병기의 우수성을 보여주면서 게릴라에게는 희망이 없으니 토벌군 편이 되라고 설득했다.

2년동안의 게릴라 토벌작전과 대-주민 선무활동의 결과 제주도 주민의 대부분이 전향했다. 그래서 제주도 주민들은 한라산에 제2연대장 함병선 대령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공덕비까지 세워주었다. 초기에는 의심스러운 사람들을 죽였고, 피해를 본 마을을 공격하였지만, 나중에는 주민과 게릴라를 공간적으로, 사상적으로 분리하는 작전에 치중했다. 그 결과 9년에 걸친 충돌 과정에서 불과 1만 여명만이 죽은 것이다.

주민 희생자들 가운데 가장 억울한 사람들은 빨갱이들에 의해 참혹하게 죽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금 제주도에서 4.3을 추모해달라고 앞장 선 사람들은 대부분 한마디로 빨갱이었거나 그 동조자들이다.

추모사업에 앞장선 사람들은 '빨갱이들에 의해 죽은 사람'들을 반동분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충돌 9년 동안 '반역을 하다가 토벌당한 사람들', '수상한 거동을 하다가 토벌대에 의해 죽은 사람들'을 모두 '의로운 민중항쟁을 하다가 이승만 역도와 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 정부는 이러한 빨갱이 및 그 동조자들이 하자는 그대로 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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