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폭동 최후의 폭도들(7)
제주 4.3 폭동 최후의 폭도들(7)
  • 김동일 칼럼니스트
  • 승인 2016.04.10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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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버림 받은 남로당의 영웅들

▲ 제주 4.3 사태 자료 사진 ⓒ뉴스타운

7. 버림 받은 남로당의 영웅들

노무현 정부의 제주 4.3 진상조사보고서에는 4.3 폭동의 발발 기간을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1947년 3월 1일은 3.1 기념식장에서 경찰의 발포사건이 발생한 날이고, 1954년 9월 21일은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된 날이다. 노무현 정부가 정의한 제주 4.3의 발발기간은 기존에 규정했던 4.3 기간과는 많이 달랐다. 기존 제주 4.3의 발발 기간은 4.3 사태가 발발하던 1948년 4월 3일부터 마지막 빨치산 오원권이 체포되던 1957년 4월 2일까지라고 정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4.3 정부보고서에서 정의한 4.3 폭동의 기간은 4.3의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가 아전인수 격으로 자기 입맛에 맞게 아귀를 맞춰놓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4.3 기간에 대한 정의는 제주 4.3에 대한 대표적인 왜곡 사례 중 하나이다.

1947년 3.1 기념식장에서 벌어진 발포사건은 4.3 폭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건은 아니었다. 남로당은 1947년 3.1 기념식을 빙자하여 전국에서 대대적으로 정치 행사를 벌였고, 이 행사는 불법 폭력 집회로 변질되어 경찰의 발포가 발생했다. 이날 3.1 기념식장에서 벌어진 발포사건은 제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각지에서 발포사건이 벌어진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따라서 제주에서만 발생했던 남로당의 4.3 폭동을 전국에서 벌어졌던 3.1 발포사건과 연결시키는 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4.3 중앙위원회는 4.3 폭동의 기점을 폭동 발발 13개월 전의 3.1 발포사건으로 규정했다. 이런 이유는 4.3 폭동의 발발 원인을 경찰의 발포로 규정함으로서, 남로당의 폭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경찰의 탄압에 대한 저항이라는 색깔을 입혀, 4.3 폭동을 ‘민중항쟁’으로 윤색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4.3 중앙위원회는 4.3 폭동의 종점도 제멋대로 수정했다. 4.3 폭동은 1957년 4월 2일 마지막 빨치산 오원권이 체포됨으로서, 만 9년에 걸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4.3 정부보고서는 1954년 9월 21일을 종점으로 규정함으로서 마지막 2년 7개월의 기간은 팔아 먹어버렸다.

1954년 9월 21일 한라산이 전면 개방된 이후에도 한라산 중에는 남로당 최후의 폭도들이 여전히 활약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최후의 저항 기간을 삭제해 버림으로서, 남한 좌파들은 4.3을 항쟁으로 치하 하면서도 4.3 폭동 최후의 폭도 5인방에는 외면 했다. 4.3 폭동의 폭도들은 북으로부터 외면 받은 존재였지만, 4.3 폭동 최후의 폭도들은 남한의 좌익들에게도 버림받았던 것이다.

한라산이 개방된 후에도 최후의 5인은 민가를 약탈 하면서 버티다가 1957년 4월 2월 마지막 폭도 오원권이 체포됨으로서, 제주 4.3은 만9년이라는 대단원의 막을 내릴 수 있었다. 폭동을 숭상하는 남한 좌파들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들은 위대한 영웅이었다. 그러나 이 최후의 폭도들은 최후의 기간에 항쟁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들은 항쟁투사의 모습보다는 말 그대로 폭도로 전락하여 목숨을 연명하는 데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4.3 폭동을 4.3 항쟁이라 주장하는 좌파들에게 이 최후의 5인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최후의 5인은 유용성이 떨어진 소모품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6.25가 끝나자 김일성은 6.25 남침의 패전 책임을 물어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 수뇌부를 숙청했다. 6.25가 끝났을 때 4.3 폭동의 남로당 전사들은 끈이 떨어진 상태에서도 저항을 계속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 졌다. 그러나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역사의 장막 저편에서 4.3 폭동의 남로당 전사들은 흙먼지를 날리며 역사의 무대 위로 화려하게 등극했다. 통일 조국을 위해 싸웠던 위대한 전사로, 대한민국 군경의 학살에 숨져간 무고한 희생자로, 4.3의 남로당 전사들은 대한민국의 역사 중심부로 복귀했다. 그러나 여기에 4.3 폭동 최후의 5인은 없었다. 4.3 폭동 최후의 5인은 북한에게도 버림 받고, 남한 좌파들에게는 버림 받는 비운의 주인공들이었다.

제주 4.3 폭동은 1948년 4월 3일 발발하여 마지막 폭도 오원권이 체포되던 1957년 4월 2일 종료되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4.3 중앙위원회는 4.3 폭동의 기간을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라고 자기 입맛에 맞게 바꿔 버렸다. 머리는 붙이고 꼬리는 잘라 버린 것이다. 유리한 것은 붙이고 불리한 것은 잘라서 만든 4.3 폭동의 기간은 전형적인 노무현 정부의 ‘게리멘더링’이었다. 이러한 ‘게리멘더링’으로 얼룩진 제주 4.3 진상조사보고서는 노무현 정부가 역사의 진실을 무시한 채 자기들만의 정치적 취향대로 만들어낸 ‘역사의 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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