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폭동 최후의 폭도들(6)
제주 4.3 폭동 최후의 폭도들(6)
  • 김동일 칼럼니스트
  • 승인 2016.04.0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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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최후의 폭도 5인방

▲ ⓒ뉴스타운

6. 최후의 폭도 5인방

남제주군 서귀면 신효리에 공비 2명이 출현한 것은 1955년도 다 저물어가는 11월 13일이었다. 공비 2명이 신효리 민가에 침입하여 운동화 두 켤레를 훔치고 도주하였다. 이 소식은 경찰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경찰에서는 남한 일대의 잔존 공비는 전라북도 덕유산에서 준동하는 4명이 전부라고 발표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11월 22일에는 한림면 귀덕리에서 공비가 민가에 침입, 주인을 총으로 위협하여 양곡 2두를 탈취하고 도주하는 일이 발생했다. 무장 2명 비무장 2명, 합 4명의 잔비 중에 하나는 국방색 복장에 전투모를 쓴 약 20대 후반 가량의 청년이었고, 하나는 40대로 추정되었다.

이때까지 남아 끈질기게 저항을 벌이던 최후의 제주인민해방군은 5명으로 다음과 같았다.

△두목=김성규(金成奎 중문면 색달리 36세)

△부두목=정권수(鄭權洙 구좌면 상도리 출신 38세)

△오원권(吳元權 구좌면 송당리 39세)

△변창희(邊昌熙 제주시 이호동 22세)

△한순애(韓順愛 여 조천면 와산리 23세)

1956년 4월 3일에는 잔비 1명이 사살되었다. 3일 하오 3시반 경 구좌면 송당리 남방 속칭 체오름 부근에서 잔비를 포착한 경찰이 교전 끝에 1명의 잔비를 사살하였다. 사살된 폭도는 정권수로 알려졌다. 정권수는 흑색 미제 작업복에 차색(茶色) 누비옷 하의를 입고 일본제 철모에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정권수는 구좌면 상도리 출신으로 5명의 잔비 중 부두목으로 알려졌다. 정권수가 소지하고 있던 카빈총 1정과 실탄 14발, 탄창 3개, 만년필 1개, 불온문서 1책, 물리학 책 1권 등도 노획했다. 정권수는 4.3초기에 입산하여 만 8년 동안 살인방화를 일삼던 거물급 폭도였다. 1992년에 다랑쉬동굴에서 발견된 시체들도 양민들이 아니라 정권수 휘하의 구좌면당 소속 공비들이었다. 정권수 시체는 정권수의 친척들이 시체인수를 거부하는 바람에 경찰에서 매장했다.

정권수가 사살될 때 같이 동행하고 있던 공비는 오원권과 변창희로 알려졌다. 1955년 11월에 공비들이 출몰했던 서귀면 신효리와 한림읍 귀덕리는 반대 방향에 있었다. 따라서 남은 잔비들은 2명씩 두 팀으로 분산 활동하는 것이 확실시 되었고, 두 팀에는 각각 1정씩의 카빈총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목 김성규와 여비 한순애 팀은 1954년 3월 이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공비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9월 15일이었다. 4명의 공비가 연동의 민가에 침입하여 식량을 약탈하고 소에 싣고 가려다가 소가 말을 안 듣는 바람에 당황한 나머지 주인을 폭행하고 식량만 챙긴 채 도주해버렸다.

한동안 잠잠하던 공비는 1957년 3월 21일 월평동 견월악 지경에서 경찰의 수색에 발견되었다. 공비들이 경찰에 쫓겨 도망가다가 걸음이 느린 한순애가 생포되었다. 한순애의 배낭에는 소형 식기 1개와 모포 1매, 백미와 보리쌀이 4되가량 들어있었다. 한순애는 1951년 봄에 동네 할머니들을 따라 제주읍에 장을 보러 가다가 폭도들에게 붙잡혔다. 폭도들은 할머니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한순애만을 산으로 붙잡아가는 바람에 폭도가 되었다. 만 7년 만에 한순애는 공비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로써 한라산에 남아있는 폭도는 남비 3명으로 줄어들었다.

한순애는 최근 공비들의 활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근거지는 일정한 곳이 없으며 깊은 밀림 속에 나무기둥을 세워 모포로 사방을 가려 기거와 식사를 하고, 식량은 수확기인 가을철을 중심으로 밭과 민가에 침입, 곡식을 약탈, 곳곳에 은닉 비축해 두며 때때로 하산 방목하는 우마 등 가축을 포살, 반찬과 육식을 하며 산열매도 따먹는다.

한순애의 진술에 의해 경찰은 나머지 잔비 추적에 나섰다. 3월 29일에는 한라산에서 공비와 교전 끝에 김성규와 현창희를 사살할 수 있었다. 두목 김성규에게는 현상금 100만환이 걸려 있었다. 변창희는 4.3희생자에 등재되어 위패가 봉안된 인물로 변창희는 일급 불량희생자에 해당한다. 김성규와 변창희의 시체는 한라산에 눈이 싸인 바람에 5월이 되어서야 시체를 수습하고 가족에게 인계되었다.

폭동 발발일인 4월 3일을 하루 앞둔 4월 2일 기어이 최후의 폭도 오원권이 생포되었다. 오원권은 그의 고향인 구좌면 송당리 장기부락에서 카빈총을 소지한 채 체포되었다. 이제 한라산에는 단 한 명의 공비도 없었으며, 드디어 만 9년의 4.3폭동에 대단원의 종지부를 찍는 날이었다.

오원권은 구좌면 송당리에서 농사를 짓던 농부로, 노모와 아내, 생후 8개월의 아들이 있었다. 폭동이 발발하고 공비 소탕을 벌이던 진압대의 포화에 아내를 잃었고, 소개령이 내려지는 바람에 빈손으로 해안마을로 내려왔다가 다시 먹을 것을 구하러 고향마을로 갔다가 폭도들에게 잡혀 폭도 생활을 하게 된 것이었다.

오원권과 한순애는 서울로 압송되어 치안국에서 국가보안법으로 조사를 받아 오던 중 당국의 기소유예라는 관대한 조치를 받고 고향으로 귀향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희망은 고향에서 가족들과 농사를 짓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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