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하다는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 그는 누구 ?
‘무자비’하다는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 그는 누구 ?
  • 김상욱 대기자
  • 승인 2016.07.17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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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야망에 이슬람 가치에 치중

▲ 펫훌라흐 귈렌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세일러스버그 자택에서 자신이 쿠데타 음모자라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결백을 주장하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나에 대해 제기하는 혐의를 세계가 믿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이번 쿠데타가 기획됐을 가능성이 있고, 이는 더 심한 탄압을 의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뉴스타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 61) 터키 대통령은 터키 내 보수층 사이에서 강력한 충성스러운 지지를 즐기는 인물로 어려서부터 무슬림 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그러나 터키 국내와는 달리 밖에서는 자신에 대한 비판자들을 가차 없이 침묵시켜버리는 인물로 평가되면서 큰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터키의 저널리스트들은 얼핏 하면 기관에 붙잡혀 조사를 받거나, 재판을 받는다든가 외국인 저널리스트들도 곧잘 추방당하곤 한다. 지난 6월의 경우 터키 경찰이 터키 최대의 신문사 자만(Zaman)을 급습했다. 급습 직후 나타난 신문사 간부들은 피로 물들었고, 완전히 주눅이 된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최대 신문 ‘자만’의 마지막 독립판은 터키 언론은 ‘가장 어두운 날’에 직면하고 있다고 정부를 강력히 비판했다. 정부의 통제 아래에 놓여 있던 초판에서는 후안무치할 정도로 친정부 기사를 작성해 검열의 받은 후 그들을 속이고 이 마지막 판을 발행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방식은 터키 국경 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의 경호원들은 미국에서 기자들을 해코지하기도 하고, 독일의 풍자 작가는 TV에서 터키 대통령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터키에서 심문을 받는 등 언론 통제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61세(1954년생)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현재의 집권 여당인 정의개발당(AK)당을 창당한지 1년이 지난 2002년에 권력을 잡았다. 그는 2014년 8월 터키 최초의 민주주의 선거 방식에 따른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되지 전 11년 동안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2015년 6월 ‘정의개발당’은 여론조사에 추락하는 쓴 맛을 보면서 연립정부를 꾸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터키의 최악의 자살폭탄 사건이 발생하자 쿠르디스탄 노동자당(PKK=Partiya Karkerên Kurdistan, 쿠르드어)과 대항하여 전쟁을 확대시킨 에르도안은 같은 해 11월 조기선거(a snap election)에서 확실한 다수당을 만들었다.

* 군부 엘리트층과의 대결 

정의개발당이 권력의 정점으로 부상하기 전 수 십년 동안 군부 세력은 이슬람의 영향을 억제하기 위해서 4번이나 정치에 개입했다. 현재의 친이슬람 정부(정의개발당)를 전복하기 위한 반정부 극우파 조직으로 ‘에르게네콘(Ergenekon)’ 사건으로 고위 군 간부들 17명이 유죄판결을 받고 종신형으로 투옥됐을 때 2013년 에르도안은 군부 엘리트를 누르고 승리를 잡았다.

또 다른 수백 명의 관리들 역시 언론인들과 세속주의자 정치인들과 함께 재판에 회부됐으며, 조사 과정에서 슬레지헤머 작전(Operation Sledgehammer, 1942년 연합군의 셰르부르와 브레스트에 대한 임시 작전) 사건과 유사한 사건으로 불리게 됐다.

2011년에는 200명 이상의 고위 관리들이 슬레지헤머 사건 조사과정에서 억류되었으며, 육해공군의 터키군 최고사령관이 시위로 사임했다. 비판가들은 반체제 인사들을 사법처리를 통해 입을 막는 방법을 쓴다며 강력히 비판했다. 당시 ‘근거 없는 혐의(trumped-up charges)’라는 주장이 무성했다.

그러나 그의 지지자들은 에르도안이 전례 없이 손을 써볼 수 없었던 기득권층에 대한 처벌이라며 대대적인 환영을 했다. 이들 지지자들은 에르도안을 터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정치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urk)가 창출해낸 국가의 수호자로 여겼다.

* 이스탄불 게지 공원 시위 때 에르도안의 행동 

에르도안은 지난 2013년 6월 이스탄불의 중심가인 탁심 지역의 게지 공원(Gezi Park)에서 발생한 대규모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휘둘렀다. 2013년 5월 게지 공원을 철거하고 1940년 철거되었던 탁심 막사와 쇼핑몰을 건설한다는 계획이 세워졌고, 이에 반발하여 2013년 터키 반정부 시위가 발발했으며 게지 공원은 이 시위의 중심지 중 하나이다.

졍의개발당(AKP)의 이슬람 교리를 의심하는 수많은 세속주의자들에 의해 부풀려지면서 게지 공원 시위는 터키의 다른 도시로 크게 확산됐다. 또 주요 부정부패 스캔들이 2013년 12월에는 정부를 강타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으나, 3명의 각료의 아들들도 포함됐다.

에르도안은 터키 밖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는 ‘음모자들’에 대해 크게 격분했다. 특히 미국에 망명한 이슬람학자인 펫훌라흐 귈렌(Fethullah Gulen)을 음모자로 여기며 강하게 비난했다. 또한 에르도안은 트위터 “싹 쓸어버리겠다”고 다짐하고 이 같은 소셜 미디어를 맹렬히 비난했다.

전투적인 카리스마가 있는 에르도안은 301명이 사망한 터키 서부 소마(Soma)에서 발생한 탄광재해를 냉정하게 다룬 2014년 5월 그의 명성이 하늘을 찔렀다.

* 이슬람 가치에 치우친 정치가 

에르도안은 세속주의에 너무 물들지 않아야 한다면서 이슬람 가치 또한 과도하게 내세우는 것을 부정하면서도 터키인들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메시지는 특별히 시골이나 소도시 아나톨리아(Anatolia)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아나톨리아는 정의개발당(AKP)의 전통적인 심장부나 마찬가지이다. 일부 지지자들은 에르도안에게 “술탄(Sultan, 이슬람국의 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2013년 10월 터키는 아주 오래된 제한 정책의 하나인 국가 제도로 돼 있는 여성들은 반드시 머리에 스카프를 써야한다는 금지하는 규칙을 해제했다. 단 사법, 군대, 경찰은 제외시켰다. 그러나 에르도안의 부인 에미네(Emine)는 머리 스카프를 착용했다.

또 비판자들은 에르도안이 간통을 불법화시키겠다는 제안 실패와 ‘알코올 금지 구역(alcohol-free zones)’을 도입하려는 시도를 이슬람교도들의 의도라고 주장하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1954년에 태어난 에르도안은 터키의 흑해연안의 해안경비대의 아들로 자라났다. 13세 때에 그의 아버지는 이스탄불로 이사하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5명의 자식들이 보다 더 나은 훈육을 위해서였다.

10대 시절, 어린 에르도안은 레몬탄산음료(lemonade)와 참깨 빵을 거리에서 팔았으며, 특히 이스탄불의 거친 거리에서도 제법 괜찮게 돈을 벌었다. 그는 이스탄불 마르마라 대학(Marmara University) 경영학 학사를 취득하기 전에 이슬람 학교를 다녔다.

그는 대학 시절, 네흐메틴 에르바칸(Necmettin Erbakan)을 만났다. 네흐메틴 에르바칸은 터키 최초의 이슬람교도로서의 총리가 된 인물이다. 에르도안은 이후 터키 이슬람교운동에 가담하게 됐다.

1994년 에르도안은 이스탄불 시장이 됐으며, 시장 시절 이스탄불을 보다 깨끗하고도 녹색의 도시로 만들며 일을 잘한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1999년에는 그는 종교적 산동 혐의로 4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에르도안은 민족주의 시를 공개석상에서 낭독하기도 했다. 민족주의 시 구절의 일부는 이렇다. “모스크(이슬람사원)은 우리의 병영이며, 돔(둥근 천장)은 우리의 헬멧이며, 뾰족탑은 우리의 총검이며, 신자들은 우리의 군인이다”

2001년 에르도안은 동료들과 함께 정의개발당(AKP)을 출범시켰고, 이슬람을 지향하는 미덕당(Virtue Party)과의 관계를 끊었다. 나중에 이 미덕당은 정당 활동이 금지됐다.

에르도안의 권력 부상은 정의개발당이 2002년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을 때 완성되었으며, 그는 총리가 됐다.

* 어마어마한 야망 

에르도안의 정치적 반대자들은 호화로운 대통령 궁을 그가 주장하는 전체주의적 성향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앙카라 교외 언덕 위의 세워진 1000 개의 방이 있는 흰색의 궁전(Ak Saray : 악사라이 궁전)은 미국의 백악관이나 러시아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전보다도 크며, 6억 1500만 달러(약 6천 980억 원)의 이상의 비용이 들어갔다.

에르도안은 경제적 안정에 힘입어 과거 10여 년 동안의 수많은 정치적 성공을 했다고 생각한다.

터키는 제조업과 수출 강국으로 발전해왔다. 정의개발당 정부는 1990년대의 100%가 웃도는 인플레이션을 정부 통제로 안정화시키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러나 2014년 터키 경제는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경제성장률은 2.9%로 하락했으며, 실업률은 10%를 웃돌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에르도안은 과거엔 터키와 강력한 동맹관계였던 이스라엘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고 있다. 터키가 팔레스타인을 다룸에 있어 과도한 행동을 취했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입장이다. 에르도안은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할 뿐만이 아니라 중동 전역에 걸쳐 극도의 대중적 인기를 끌려고 하는 성향을 가졌다.

그는 또 시리아 다마스쿠스의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 정부에 대항하여 싸우는 시리아의 반정부 세력을 지지하고 있다. 에르도안은 국경지대에서 이슬람 수니파 과격 무장 세력인 이른바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전투요원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시리아인 쿠르드인들을 돕기를 거부하면서부터 터키 남동부에 있는 쿠르드족에 대한 일시적인 평화 전주곡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 터키 군부 쿠데타 에드로안 자작 가능성 제기. 

영국 일간지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펫훌라흐 귈렌은 16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 세일러스버그 자택에서 몇몇 기자를 만나 자신이 쿠데타 음모자라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결백을 주장하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나에 대해 제기하는 혐의를 세계가 믿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이번 쿠데타가 기획됐을 가능성이 있고, 이는 더 심한 탄압을 의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펫훌라흐 귈렌의 언론 고문인 ‘알프 아슬란도간’은 이번 쿠데타가 지나칠 정도로 허술하게 조직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번 쿠데타는 계획이 아주 조잡하다. 또 너무 조잡하게 실행돼서 모든 게 에르도간의 손안에서 노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 에르도안의 주요 경력 

- 1970~1980년대 : 이슬람교도 단체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했으며, 네흐메틴 에르바칸의 지복당(Necmettin Erbakan's Welfare Party)의 멤버가 됐다.

- 1994-1998 : 군장교가 권력을 장악할 때까지 이스탄불 시장

- 1998년 : 지복당 활동 금지. 에로도안은 종교적 혐오를 불러 일으켰다는 혐의로 4개월 동안 옥살이.

- 2001년 8월 : 압둘라 굴(Abdullah Gul)과 함께 이슬람교에 바탕을 둔 정의개발당(AKP : Justice and Development Party) 창당

- 2002-2003 : 정의개발당(AKP) 의회선거에서 확고부동한 다수당 차지. 에르도안 총리로 지명됨.

- 2014년 8월 : 터키를 이끌 터키 최초의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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