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광수 황장엽은 대한민국에 유죄 인가?
제71광수 황장엽은 대한민국에 유죄 인가?
  • 지만원 박사
  • 승인 2015.08.18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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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은 최고의 선물을 준비 했고, 그 선물은 5.18의 진실이었다

▲ ⓒ뉴스타운

황장엽은 광주에 와서 한국 청년을 염탐꾼으로 지목하여 살해 했다

황장엽은 백 프로 천 프로 5.18 광주에 왔다. 사진 상에 나타난 그는 반탐조 조장으로 무전기와 유탄발사기가 장착된 무거운 M16을 가뿐히 들고 부하들을 시켜 염탐꾼으로 보이는 한 젊은 한국인을 체포 구인해 가고 있었으며, 노숙자담요님은 그 한국 청년이 황장엽 조에 의해 살해되었음을 증명하였다.  

정신적 구심점을 잃은 탈북자들 중 많은 사람들은 물론, 사회 상식을 많이 알고 있다 자부하는 지식인들 마져도 자기 주관과 오도된 자긍심을 가지고 "황장엽은 얼굴이 온화한 학자인데 어떻게 광주에 올 수 있다는 말인가? 이는 억지다", "황장엽은 나이가 많다", "황장엽은 학자의 일생을 산 사람이다", "광주에 와서 전투하기에는 나이가 많다" 이런 말들로 광수에 대한 신뢰를 허무는 사람들이 있다.  

광수들에는 정치인, 행정가, 학자, 여자, 외교관, 군인, 고정간첩 등이 총 망라돼 있다

황장엽이 학자여서 광주에 올 수 없었다면 황장엽보다 더 학자인 김태종(1947)은 1980년 5월 당시 평양국제관계대학 교수 신분을 가졌던 자였다. 너무 실세여서 올 수 없었다면 지금 김정은 정권에서 인사권을 거머쥔 문고리 실세 조연준(1937)도 광주에 와서는 안 된다. 1923년생인 황장엽이 너무 나이가 많아 광주에 올 수 없었다면 1916년생인 이선실(여), 1919년인 황순희(여), 1928년생인 려원구(여, 사망), 1921년인 리을설(남자 광주 총사령관)도 광주에 올 수 없었어야 했다. 광주에는 북한의 전설적 인물들의 아들들도 많이 왔다. 

오늘(8.18)까지 확인된 광수(5.18 광주 북한특수군)들의 이력을 보면 지금 현재 장군으로 승진해 있는 광수가 75명, 광주에서 최일선 전투조를 지휘했던 1, 2, 3광수(성명 및 직위 불명), 외교관 11명, 영관장교 6명, 여성광수 7명, 행정관료 4명, 학자 3명, 남녀 간첩 각 1명 등이다.  

황장엽은 대한민국을 속였는가?

월간조선 2013년 5월호에는 전 월간조선 편집장이었던 김용삼 기자의 기사가 실렸다. 거기에는 아래와 같은 요지의 기사가 있다. 1996년 11월 10일, 김용삼 기자는 중국에서 김덕홍을 만나 황장엽이 급하게 쓴 메모를 전달 받았는데, 거기에는 "광주 학생 문제도 그들을 뒤에서 사주한 북의 공명주의자들이 책임을 전가한 일이다"라는 문장이 있었다. 김용삼 기자는 "광주 학생 문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 하다가 망명 16개월 후인 1998년 6월, 월간조선 7월호를 위한 인터뷰를 할 때 "광주 학생 문제"가 "5.18 광주사건"임을 황장엽씨로부터 직접 확인 했다고 한다.  

아래의 2013년 월간조선 5월호 기사 내용은 김영삼 시대의 국정원이 5.18에 대한 발설을 얼마나 민감하게 생각하고 경계 했는지를 잘 나타내 준다.  

"그 때 두 사람과 인터뷰 중 김덕홍씨가 '여기 남한에 와서 꼭 하고 싶은 얘기를 해야 되겠다'면서 '조선노동당 대남 부서가 있는데 그 부서에 소속되어 있던 상당수 사람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이 끝난 후에 일제히 훈장을 받았다. 내 친구들이 그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들도 광주민주화운동 후에 훈장을 탔다고 축하 술을 마시면서 그들에게 직접 들은 것이다' 라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황장엽이 망명할 당시 5.18 광주에 북한군이 왔었다는 사실을 그 어떤 사실보다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것을 남한에 꼭 알려 주려고 했다는 사실은 위 김용삼 기자의 기사에서 극적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당시 황장엽은 누군가에 위임 되어 위탁관리를 받고 있었다. 1998년 6월, 김용삼 기자는 1998년 월간조선 7월호를 준비하기 위해 두 사람과 인터뷰를 했고, 5.18에 대한 두 사람의 폭탄 발언이 포함된 기사를 월간조선 데스크에 제출 했지만, 데스크는 게재 하기를 거부했다.  

황장엽이 망명을 받아준 대가로 한국에 주려던 최고의 선물은 5.18의 진실이었다

이후부터 황장엽은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성역화 하는 어떤 세력"에 위임 되어 위탁관리를 받고 있었고, 결론적으로 그는 국가의 압력에 의해 5.18에 대해서는 일체 진실을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그가 사망하기 얼마 전 그에게 정중한 편지를 썼다. 그는 정중하게 답장을 했다. 자기는 다른 부서에 근무해서 대남사업부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는 광주에 직접 내려와 한국 청년을 데려다 사살 했다. 그가 얼마나 더 많은 한국인을 납치해다가 죽였는지, 그가 M16 유탄발사기로 얼마나 많은 광주시민과 계엄군을 사살 했는지는 모른다. 그가 살해한 한국인들은 그 청년 하나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런 팩트를 대입해 보면 황장엽은 누군가에 위탁관리 되면서 5.18의 진실을 숨기기로 결심 했던 것이 확실하다.  

5.18의 진실을 숨겨 주기로 약속한 황장엽은 자유로운 몸이 되어 젊은 여성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면서 유복한 생활을 했다. 반면 김덕홍은 진실을 말하기로 작정 했기에 그는 지금까지 어디에 사는지 알 수 없도록 비밀로 가려져 연금상태에 있다.  

황장엽, 그는 한국으로 망명하는 최고의 선물을 준비했었고, 그 최고의 선물은 5.18의 진실이었다. 한국으로부터 가장 사랑 받을 수 있는 최고급 정보가 바로 5.18의 진실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2013년 월간조선 5월호 김용삼 기자의 기사와 2013년 4월 22일, TV조선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탈북 했다는 인민군 상장 박승원도 제2의 김덕홍 되어 연금돼 있을 것

하지만 당시의 김영삼 정부의 국정원과 이후의 국정원은 5.18의 진실을 발설하는 탈북자들의 입을 철저히 봉쇄해 왔다. 박근혜는 2015년 6월 15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북한 노동당 고위 간부가 탈북 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채널A와 동아일보는 7월 4일과 5일 연이어 북한 인민군 박승원 상좌가 탈북해 왔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우리 500만야전군은 박승원을 제37광수로 이미 공개한 바 있다. 이후 정부는 북한 노동당 고위급 간부의 탈북 발언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박승원 역시 지금 제2의 김덕홍 신세가 돼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황장엽의 죄와 국가의 죄, 어느 죄가 더 큰가?

그러면 황장엽의 죄는 무엇인가? 황장엽의 죄와 황장엽이 죄를 짓도록 강요한 한국 정부의 죄. 두 가지 중 어느 죄가 더 위중한 것인지, 우리는 반드시 규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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