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최고존엄' 날조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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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최고존엄' 날조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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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재포출신 기쁨조 소생 김정은보다 항일빨치산 가계 최룡해에 줄을 댈 것

▲ 1964년 부터 수차례 조작편집을 거쳐 북한 대외선전용 잡지인 [등대] 1967년 10월호에 게재 된 사진에는 김일성의 빨치산 선배인 최룡해부친 <최현을 중심>으로 좌우에 안길과 김일성을 배치 했다가 1972년 4월 24일 개관 된 '조선혁명박물관'에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옮겨 놓고 좌우에 최현과 안길을 배치 한 사진으로 대체 전시 하였다. 이로써 1967년 7월 이전 북한 내 <제1의 존엄>은 마적단 공비 말단간부 출신 김일성이 아니라 동북항일연군 중견간부출신 소련극동군 88정찰여단 한인정찰대 좌장격인 최현이었음이 명백해 졌다. ⓒ뉴스타운
대한민국에서는 헌법 제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尊嚴)과 가치(價値)를 가지며, 행복(幸福)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不可侵)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 된 바에 따라 모든 국민이 존엄의 대상이다. 

또한 헌법 제11조 ①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②에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못 박음으로써 존엄에 상하후박(上下厚薄)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휴전선과 NLL이북 6.25남침전범집단 아웅산묘지폭파, KAL858기폭파, 천안함폭침 국제테러범 소굴에서는 걸핏하면 '최고존엄(最高尊嚴)'타령이 나오고 있다. 

북에서 내세우는 최고존엄이란 소위‘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2013.6)'과 노동당규약(2012.4) 및 개정헌법(2014.4)에 명시 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유일한 지도사상과 지도적 지침으로 삼아 혁명전통을 계승하고 '백두혈통의 순결성'을 고수하는 최고영도자를 뜻 한다. 

북에는 유일사상(唯一思想)10대원칙에 입각하여 2,400만 주민 중 단 하나의 존엄(尊嚴)이 존재할 수 있을 뿐, 최룡해나 황병서는 물론 현영철, 이영길, 김원홍, 김영철 등 여타의 23,999,999명은 최고존엄에 절대충성 하는 친위대와 결사옹위 총폭탄, 무조건복종하는 노예군상이 있을 뿐, 어떠한 존엄도 존재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외견상 북의 최고존엄은 노동당 제1서기 겸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겸 인민군 최고사령관 공화국 원수(元帥) 김정은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北에서 최고존엄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①김일성-김정일주의를 지도이념으로 하여 ②항일반제반봉건(抗日反帝反封建)혁명전통을 계승하는 것이며, 필요충분조건은 '백두혈통(白頭血統)의 순결성을 고수'하는 것으로서 혈통적 순결성에 하자(瑕疵)가 있는 자는 결단코 최고존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북에서 말하는 소위 백두혈통이란 좁게는 김일성가계를 뜻하며 넓게는 1930년대 만주일대에서 마적단과 공비(共匪)로 전전하다가 1939년 경 일제 관동군의 토벌작전을 피해 소련령 연해주로 도피 했다가 소련극동군 88정찰여단 한인정찰대에 편입 흡수 됐다가 1945년 9월 19일 김일성과 함께 소련군 수송선편으로 원산에 상륙한 60여명의 빨치산 가계를 뜻한다.

1945년 이래 북의 역사는 현준혁 조만식 국내파숙청, 무정 주영하 박헌영 남노당과 중국파 숙청, 최창익 박창옥 방호산 김두봉 소련파와 연안파숙청, 김창만 박금철 김창봉 갑산파 군사파 숙청, 석산 남일 등 수정주의 숙청 등 김일성 일가 독재체제구축을 위한 숙청의 역사인 동시에 김일성행적 날조의 우상화의 역사이다. 

북은 소위 혁명역사와 전통을 보전하겠다는 목적으로 1948년에 박물관을 건립, 1961년 '조선혁명박물관'으로 명명, 김일성이 만 60세가 되는 해 생일 하루 전인 1972년 4월 14일 만수대언덕에 이전 개관하고 김일성의 행적을 중심으로 조작된 기록물과 날조된 기록화(記錄畵)를 사진대신 전시하고 몇 점 안 되는 사진과 물자 등 20만여 점을 전시해 왔다. 

전후 5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피의 숙청과 병행하여 우상화가 극에 달하면서 김일성의 만주에서 행적날조 및 타인의 경력표절, 투쟁업적조작 및 혁명가계날조, 각종 우화(寓話) 유포, 구호나무 발굴 조사 등 해괴한 조작놀음을 계속하는 가운데 소위 항일혁명가들과 함께 찍었다는 사진을 전시하기도 했다. 

만주일대와 소련 령 연해주 하바로프스크 일대에서 김일성 밑에서 '항일혁명투쟁'을 했다는 안길(1907~1947), 최현(1907~1982), 김일(1910~1984) 등과 불상시기에 찍은 (조잡하게 편집날조)사진을 전시하고 이를 [등대] 라는 대외선전용 월간잡지에 수차례 게재, 공개하였다. 

1964년 4월호 등대 잡지에 최초로 게재 된 사진은 나무기둥을 중심으로 좌로부터 김일성, 김일(?), 최현, 안길 등 4명이 찍은(?) 사진을 조악하게 편집 조작하였다가 1965년 10월호 등대잡지에는 같은 사진을 좀 더 말끔하게 조작 게재하였다. 

그 후 1967년 10월호 등대 잡지에서는 김일성 어깨에 무엄하게도 오른손을 걸쳤던 김일(?)이 삭제되고 양손을 바지주머니에 넣고 나무기둥에 비스듬히 기대선 최현을 중심으로 오른편에 역시 바지주머니에 양손을 넣은 안길을 왼쪽에 얌전하게(황공하여?) 부동자세로 선 김일성 사진을 게재 하였다. 이때까지는 누가 보아도 최현이 중심인물이자 '제1존엄'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1972년 4월 14일 김일성 60세 생일전날 신축개관 된 혁명박물관에는 최현 오른쪽에 서있던 안길을 김일성 왼쪽으로 옮겨 김일성을 중앙에 두고 최현이 우측에 안길이 좌측에 선 상태로 조작함으로서 1964년에 등장한 ▲김일성, 김일(?), 최현, 안길 4인의 사진에서 김일이 삭제되고 ▲안길이 최현 우측에서 김일성 좌측으로 이동함으로서 사진에서나마 김일성이 '제1존엄'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북에서 이처럼 황당한 우상화조작 과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노동당선전담당비서 김기남은 확실히 알 것이다. 어쩌면 국가안전보위부장 김원홍이나 정찰총국장 김영철도 어렴풋이나마 알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사자인 최룡해나 김정은은 이런 사실이 있었는지조차도 모를 수 있다. 

몇 장의 사진으로 인해 북한에서 1972년 이후에 대외적으로 전시 공개되고 있는 역사는 혁명의 역사가 아니라 김일성 우상화와 원시 야만적 세습독재의 역사이며 북한주민에게는 착취와 억압 공포 그리고 빈곤과 기아의 역사였음이 명백해 졌다. 

터무니없는 사적날조의 진상이 드러난 이상 오사카 기쁨조 무용수 혈통 김정은에게는 유일의 최고존엄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인 백두혈통의 순결성을 맡길 수 없다는 시비가 일어 날 수밖에 없게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사회에서는 존재해서 안 되고 존재할 수도 없는 '최고존엄(the highest dignity)'이란 것이 북에 있다면 오사카 재포 출신 기쁨조혈통 김정은이 아니라 항일투쟁의 선배이자 소련극동군 88정찰여단 한인정찰대 좌장격인 최현의 아들 최룡해 차지가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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