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원 땅에서 보면 일몰문과 일출문은 각각 호남과 영남에 따로 위치한 두개의 문(非一)이다. 그러나 3차원 하늘에서 보면 별개가 아닌 하나(非異)일 뿐이다. “하나가 아니지만 다르지도 않다”는 비일비이(非一非異)의 좋은 예로 제야(除夜)의 종소리가 있다. 타종할 때의 송구영신(送舊迎新)을 전후로 나누어 생각하면 둘이요, 바뀌는 순간만 강조하면 하나이다. “둘이 됐다 하나 됐다”, 이렇게 말만 오락가락하는 것이지 사실은 단순하다.
7세기 원효는 문득 이것을 깨쳤다. 간밤에 모르고 잔 곳은 따뜻한 토굴이었는데, 다음날 무덤인줄 알고 다시 자려하니 꿈자리가 사나왔던 것이다. 바로 마음 먹기에 따를 뿐이다. 단지 한 마음(一心)에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 두 개의 출입구가 있었던 것이다. 마음은 바다와 같다. 갈릴리는 유입된 물을 회통(廻通)하여 요단강으로 유출시킴으로써 “살아 숨 쉬는 바다” 가 됐으나, 입구만 있고 출구가 막힌 염해는 결국 “죽은 바다”가 되었다.
이 사건 이후 화쟁대사(和諍大師) 원효는 수구(守舊)를 파괴하는 패러다임으로 바꿨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줄려나, 내가 하늘기둥을 찍겠소.”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 설화는 대개 도색적 은유로 해석하지만, 오히려 천둥이 내리치듯 울리는 사회개혁을 위한 구호였다. 그는 실천에 옮겼다. 일단 환속하고, 꾀를 부려 과부 공주와 합방하여 골품부터 깨트렸다. 설총을 얻은 후, 자칭 복성거사(卜性居士)는 광대처럼 춤추며 저잣거리를 헤맸다. 왜? 만백성을 구원하려고.
의상의 화엄종이 귀족을 위한 제식 종교라면, 원효의 정토종은 서민을 위한 풍류 종교였다. 누구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렇게 염불만 외면 불국토에 왕생한다는 구원과 은총의 신앙이었다. 이와 같은 한류 정토종은 오늘날 통불교라 지칭하는데, 사실 정토종은 불교와 그리스도교와의 경계종교이다. 만약 이 염불을 당시 당나라에서 성행했던 경교(景敎)에서 사용했다면, “한량없는 주님의 은총을 성모님께 기원하며”라는 기도문이 된다.
요사이 “멘붕”이라는 속어가 돌아다니고 있다. 정신적 붕괴(mental collapse)의 약어이다. 붕괴는 파동함수가 측정에 의하여 하나의 상태로 결정될 때 나머지 가능한 상태들이 사라져버리는 현상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확정됐을 때 48%의 문재인 투표자들은 이른바 멘붕이 되었을 것이다. 이 멘붕은 100%의 국민대통합 스펙트럼에 단층으로 남아있다. 필자는 이와 같은 우리 내면의 찢어진 틈새를 정신적 절벽(mental cliff) 즉 “멘벽”이라 약칭해본다.
대선기간 중 137명의 문인들이 K 일간지에 “강은 결코 역류하지 않는다”라는 광고자막을 내걸고 진보라고 자임했던 문재인을 지지했었다. 그러나 대선 결과는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좋은 말도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교훈만 남겼을 뿐이다. 멘벽에 갇힌 이들이 감당할 고통의 크기를 생각해보면 우리의 마음이 쓰라리지만, 의외로 패자 문재인의 뒷모습이 깨끗했다는 점은 큰 위안거리다.
옛날에 큰 산불이 나서 암석을 녹였다. 그리고 바위에서 쇠붙이가 흘러나와 식은 후 그 단단한 모습을 숲속에 드러냈다. 그러자 숲을 이루던 나무들이 크게 걱정했다. “저 쇠붙이가 우리 모두를 꺾어버릴 거야.” 이때 하늘에서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너희 나무가 도끼의 자루가 되기 전까지 아무 염려마라.” 이리하여 나무와 철은 서로 자루와 날이란 협력자 관계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탈무드에 나오는 “나무자루” 이야기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국회를 존중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당선인은 야당 몫 48%의 멘벽을 타고 오를 샛길을 찾아 냈을까. 필자는 원효가 깨달았던 “한 마음”을 당선인에게 추천하고 싶다. “오직 마음(唯識)”이 먼저다. 갈릴리 바다 같은 마음으로 모든 색다른 견해를 화쟁(和諍)으로 일통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화쟁의 바탕은 100% 단결된 일치를 유도하는 신라의 화백(和白) 제도였다. 소수, 약자, 반대의 의견을 두루 살려내어 진정한 “민생정부”로서 봉사하는 지혜와 능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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