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숨어있는 역사 보물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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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입구에 조선시대 관아가 있었다

^^^▲ 서울에 숨어있는 역사 보물충훈부와 터
ⓒ 뉴스타운 이인석^^^
조선시대 공신책봉과 공적 관리를 하던 관청 충훈부 표지석에는 ‘충훈부는 국가에 공훈이 있는 공신들에게 상을 내리고 공적을 보존하는 일을 맡아보던 조선시대의 관아이다. 처음에는 공신도감 충훈사로 부르던 것을 1459년 세조 때 충훈부로 고쳤고 6.25 전쟁당시 대부분 파손되었으며 1953년 보신각을 복원할 때 그 기와 일부를 사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국가에 공로가 있는 사람을 공신으로 책봉할 때 ‘공신도감’을 설치하여 공훈심사를 하도록 했는데 조선시대에는 도감과 별도로 공신을 책봉 관리하는 관청을 만들어 관련 사무를 전담시켰으며 세종 16년에 공신도감을 충훈사로 고쳐 불렀고 이때는 참외아문이었는데 1454년 단종1년에 공신의 격이 너무 낮다고 하여 충훈부로 승격시켰다. 충훈부를 다른 이름으로 훈부 맹부 또는 운대라고도 불렀다.

역시 조선시대인 1785년(정조 9년)에 경국대전과 속대전, 그리고 그 후에 간행된 법령집을 통합하여 편찬한 법전인 대전통편에 의하면 충훈부에는 종1품의 수장 아래 당상관의 정원을 세 명으로 하고 도사는 공신자손으로 임명했다 관장 업무는 공신 책봉과 예우, 예장, 공신회맹에서 공신자손의 관리와 천거, 공신자손이 속하는 충의위 관련사무, 도망친 공신노비를 잡아들이는 공신노비의 추쇄에 이르기까지 공신과 관련된 사무일체를 맡았다.

또 해마다 관리를 추천하는 식년천거 때 공신자손 중에서 합당한 인물을 천거하는 권한이 있었고, 사계절의 중간 달에는 공신과 적장자손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였으며 이런 비용을 충당하고 사용하기 위하여 곡식을 재배하는 전답과 노전, 소금을 만드는 염장, 바다에서 어물을 획득하는 어장을 소유했고 이렇게 별도로 공신을 책봉하고 관리하는 관청을 만든 것은 조선시대의 특이한 제도로서 그만큼 조정에서 공신과 세도가의 위상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안국동 로터리 인사동 입구에 있는 충훈부 터는 공신을 책봉하고 관리하는 관아였으니 어느 시민의 말처럼 보훈처의 전신이 아니었겠느냐는 말이 어느 정도 근접했다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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