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상혼(商魂)이 맞장구치는 스위스(Sw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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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상혼(商魂)이 맞장구치는 스위스(Sw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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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세계의 도시를 가다[16]

^^^▲ 마터호른산의 만년설
ⓒ 박선협^^^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곳

스위스는 조용히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곳이다. 그리하여 한번 획 스치고 지나가는 상쾌한 미풍처럼 스위스는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가파른 산기슭, 화강암 지대, 빙하의 침식 작용으로 생긴 절벽에는 소나무 숲이 있고, 작은 폭포가 힘차게 뻗어내려 거울같이 맑은 호수를 만들어 낸다.

계곡에서는 살이 통통하게 찐 얼룩소들이 풀을 뜯을 때마다. 방울소리를 낸다. 중세의 성에서 내려다보면, 여러 화초와 화분이 알맞게 퍼져 있는 마을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파리, 비엔나, 베를린, 런던 같은 유럽의 유수한 대 도시는 사람들에게 현대문화의 물결에 참여할 기회와 자극을 주지만, 사람을 쉽사리 피곤하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스위스는 사색하는 사람들이 자기의 글을 쓰는 곳이다. 그렇길래 많은 작가들이 이곳에 들러서 작품을 썼다. 로망 롤랑이, 헤르만 헤세가, 토마스 만이 이곳에서 글을 썼고, 일찍이 괴에테도 알프스의 산장이나 잔잔한 호숫가에 자리잡고 글을 썼다.

학자들 가운데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 이를테면, 오이겐 블로일러, 카알 구스타프, 융 루드비히, 빙스방거 같이 인간의 내면을 통찰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보덴호湖와 제네바 호반에서 작업을 했는가 하면, 전후에는 독일에서 피난 온 카알 야스퍼스, 카알 바르트 같은 정신적인 지도자가 바젤대학을 근거로 그들의 사상을 키웠다.

스위스 사람들은 이 밖에도 스위스를 떠나, 다른 나라에 가서 큰 일을 한 사람들이 많다. 스위스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필경 알프스 산, 대자연의 아름다운 정기를 타고났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입을 모은다.

자연 뒤에 숨은 인간의 상혼

스위스를 조용히 쉬고 생각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하면, 요즈음 스위스의 젊은이들 가운데는 언짢아 하는 사람도 있다. 아름다운 것 같으나 그 속에 추한 것이 있고, 평화로운 것 뒤에 무서운 갈등이 있으며, 질서 속에 커다란 사회적 모순이 있는 것을 왜 모르느냐고 한다. 지나가는 길손은 그 속에 살고 있지 않고, 살고있다고 해도 늘 손님이라고만 생각하니 스위스 사람이 보는 스위스에 대한 불만을 공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가령 아름다운 산야를 보라. 울창한 나무 사이사이로 꼭 이발기로 깎아 다듬어 놓은 것같은 목장의 잔디밭, 여름이면 온통 갖가지 꽃으로 덮이는 이 푸른 동산은 아이들이 도시락으 싸가지고 들어가서 뒹굴고 노는 장소가 아니라, 그 한 평 한 평이 다 목우牧牛의 사료밭이다. 그러니 함부로 밟고 다녀서는 안 되는 곳이다.

해발 3-4천 미터나 되는 산에 올라가 보라. 그 가파른 암벽에 까지 물건을 날라다 거창한 호텔과 식당을 짓고 산책길을 뚫은 스위스인의 끈질긴 노력이 아니었더라면 어느 나그네가 그렇게 수월하게 알프스를 하루에 오르내릴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속에는 나그네의 호주머니를 아주 자연스럽게 털어 버리려는 매우 빈틈이 없는, 때로는 영악스러운 장삿속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오늘 날 세계의 유명한 관광지란 이렇듯 다 똑같은 상혼에 의해서 경영되고 있다.

그럴싸한 호텔과 기념품가게와 토속적인 색채를 띤 술집, 그리고 그 밖의 인공적인 관광대상등, 조금씩 돈에 물이 들어 순수성을 잃어버린 자연과 물자들이 값싼 감정을 담보로 매매되는 것이다. 유명하다싶은 곳일수록, 돈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일수록 그 나라의 참모습을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인정 어린 산마을 사람들

그렇길래 정말로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될 수 있는 대로 소위 투어리스트들이 가지 않는 곳으로 그 고장 사람들과 함께 2등 열차를 타든지, 버스를 타든지, 아니면 도보로 그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

아아레강 상류를 끼고 곳곳에 잔재된 중세의 옛 성城들을 방문하고, 피곤한 다리를 어느 낮선 마을의 주막집에서 쉬면서 그 강에서 잡은 생선튀김과 그 고장에서 나온 와인을 마시노라면 정말로 그 무뚝뚝하고 고집이 센 스위스 농부의 소박한 세계를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다.

혹은 이딸리아 말을 쓰는 남부 스위스의 테신지방, 고도 1천5백 미터 정도의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기다란 오솔길을 따라 20여호씩 모인 자그만 산 마을들을 이틀쯤 걸려서 횡단하는 멋도 즐길 만 하다.

돌기와에 통나무로 엮은 집 창가에는 깡그리 붉은 제라늄이 화사하게 피어있고, 어쩌다 들어간 자그만 레스토랑은 나무책상과 의자가 너댓개 놓여 있는 주인집의 살림방이었는데, 벽에는 카이젤 수염을 기른 한 노老 장군의 사진과 이 고장 옷을 입고 단란하게 모여 선 가족사진들이 꼭 우리나라 시골 어느 가겟집 안방 같았던 것이 생각난다.

이런 산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소박하고 인정스럽다. 알프스라고 하지만, 그것은 오스트리아 남부의 독일 쪽을 약간 스쳐서, 스위스를 가로질러 이딸리아 북단과 프랑스 국경까지 걸쳐진 큰 산맥이다. 산 덩어리가 워낙 커서 가보지 않으면 그 크기를 상상하기 어렵다. 설악산 같은 것이 몇 개 포개져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스위스의 알프스는 너무나 잘 가꿔져 있다는 것이 정평이다. 호랑이는 물론 없고 마지막 곰을 잡은 지도 몇십 년이 되었다. 독사는 남쪽 알프스에 있다고 하나 한번도 본적이 없다. 사냥이 금지되고 있는 국립공원에느 멧돼지 정도는 있다고 하나 보지 못했고, 다만 노루떼들이 영마루 넘어 가는 것을 망원경으로 보았을 뿐이다.

그러니 아름답고 깨끗하고 편안하기는 하나, 무언지 깊은 산 속에서 맛볼 수 있는 긴박감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아쉬움이었달까.

모험 뒤의 비정(非情)

모든 것이 너무나도 잘 정리되어있어 약간은 지루해진 기자는, 가끔 보통 지도에 있는 길에서 빠져 나와 샛길을 다녀 보다가 혼이 난 적이 있다. 어떤 때는 허리까지 차는 눈 속을 헤매기도 했고, 어떤 때는 절벽 위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곤경에 빠지기도 했으나, 다행히 큰 변을 당하지 않았다. 그 뒤로는 아예 모험을 피하고 지도의 길만을 따라 다녔다.

남 알프스에 속하는 디아보렛짜(작은 마귀)라는 이름의 산에서 자일도 아무 것도 없이 빙하를 건너간 적이 있다. 눈이 발목까지 깔린 얼음판 위에 사람들의 발자국을 더듬어 첫 코오스는 비교적 쉽게 건넜었는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해는 이미 뉘엿뉘엿 서산에 기우는데, 빙판 위에는 눈이 녹아 사람들이 지나간 자국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얼음이 갈라져서 시퍼런 입을 그야말로 마귀의 아가리처럼 벌리고 있지 않은가! 하나씩 뛰어넘을 때마다 등골이 오싹하니 식은땀이 절로 났다. 거의 기다시피하여 건너편 기슭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해가 넘어간 뒤였다. 그래도 평소 건너보고 싶어하던 빙하를 건넌 자신이 무척이나 대견스러웠다.

빙하는 곳에 따라 20-30미터의 깊이를 하고 있다. 산골짜기를 따라 하류로 흘러내리다 얼어붙은 태고적부터의 얼음덩어리다. 이것이 서서히 녹으면서 아래도 하락하기 때문에 계단같은 틈바구니가 생기는데, 여기에 한번 빠지면 구출될 길도 없어 조난, 그 시체는 냉동이 된채 20-30년 후에야 하류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무서운 짐승은 없어도 알프스는 여기저기에 위험한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 다른 하나가 눈사태- 십 수년 전에는 초등학교 하나가 매몰되어서 가엾게도 많은 어린이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가파른 산에는 어디나 바리케이트 같은 철책들이 2중 3중으로 쳐져있다. 이것은 바로 이 눈사태를 막는 말뚝들이다. 아름다운 자연의 비정한 파괴력과 그것을 막으려는 인간의 투지를 여기서 엿볼 수 있었다.

지나가는 길손이야 이 모든 각박한 인간의 사정을 몰라도 된다. 그림엽서처럼 아름다운 스위스를 감탄하고 즐길 수 있었다해서 죄가 될 것은 없기 때문이다.

슬픔을 모르는 축제의 땅

어쩌다 얻어 타는 '자일 바만'(쇠줄에 달려 언덕을 오르내리는 소형 궤도차)의 조그만 정거장에서 60이 넘은 나이 지긋한 차장이 어느 구석에 고이 두었던 모이를 꺼내 뭐라 중얼거리며 땅바닥에 뿌리면 어디선가 예쁜 새들이 모여와서 모이를 먹고 날아가는 정경르 한번쯤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정년퇴직으로 철도근무를 마친 이 노인은 이 사철私鐵에서 일하며 새를 기르느 일과 언덕을 오르내리는 고객과 담소를 나누는 것으로, 하루에도 몇 차례 똑같은 궤도를 빙빙 도는 단조로운 생활을 달래고 있었다.

피어발트쉬레터 호수 중부 스위스의 유명한 경승지 옆에 자그마한 집을 가지고 있는 한 부인-아는 사람들이 '호숫가의 아주머니'라 명명-의 집에는 강아지, 고양이, 오리, 닭 등 동물가족이 오붓하게 살고 있다.

이 집 뜰의 언덕 위에 조그만 자리가 있는데, 거기서 이 아주머니가 소리를 치면 새들이 날아와 그 손에서 모이를 쪼아먹는다. 여기서는 동물들도 적이 아니고 한 식구들이다. 인구가 는다고 불평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스위스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가 겪는 공해公害하고는 거리가 먼 울창한 숲과 맑은 공기를 즐기고 있다.

언덕 위 숲옆에 자리잡은 기자의 숙소에서도 어김없는 새 소리에 잠이 깬 경우조차 있다. 새 소리를 듣기 위해 새벽 4시에 숲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토요일의 정거장은 유달리 법석거린다. 등산을 즐기는 남녀노소, 그 가운데는 알프스의 높은 산을 찾아가 고산식물만 골라 사진을 찍는 한량들도 끼어 있다.

축제에 참가한 뚱뚱한 중년인 제복을 입은 마을의 오케스트라 대원과 사격회원들의 유쾌한 웃음소리, 근무지에서 잠시 주말휴가를 즐기려 가는, 여름에도 항상 두터운 제복을 입은 중립국의 젊은 군인들, 겨울이면 너나할 것 없이 스키를 메고 지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떼지어 모여서서 노래 잘 부르고 시끄러운 키 작은 남 이딸리아의 노동자들.

때로, 등산가는 사람들의 한 옆에 서서 3부 합창을 멋지게 노래하는 경우도 있다 애인과의 이별이 아쉬워서 열차가 떠나가는 바로 직전까지 서로 끌어안고 키스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아무도 헐뜯거나 비방하지 아니하고, 아무도 남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손가락질하지 않으며, 유쾌하게 자기의 발길을 재촉한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일상생활의 긴박감에서 해방되어 무척 관대해진 마을들이, 넓은 정거장 구내를 은연중 축제의 분위기로 만든다. 기자는 이 토요일의 제네바 역을 사랑한다. 그것은 마치 독일과 스위스 국경을 지나가는 라인강의 상류, 브덴호 근처의 사육제의 하루를 즐기던 기분과도 같다.

"우리에겐 너무 슬픔이 없다. 우리는 부족한 것이 없다. 명랑하게 살지만, 당신네 나라의 고통과 슬픔을 너무 모른다"고 어느 스위스 친구가 이야기한 일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그렇지가 않다. 아름다운 자연과 풍성한 환경 뒤에 숨어 있는 숱한 고통을 기자는 많이도 경험했다. 자세히 보면 인간세계에는 어디서든 똑 같은 고민들이 도사리고 있다.

저 토요일의 축제도 부지런한 스위스 사람들이 나머지 요일을 열심히 일하지 않았던들 나무와 꽃 ,그리고 새들을 아끼고 가꾸는 정성이 없었던들, 천혜의 자연, 즐거운 주말축제는 상상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다음은 네덜란드]

^^^▲ 세르티히 계곡
ⓒ 박선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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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2003-09-14 04:45:47
자연과 상혼 .. 아름다움 뒤에는 무서운 갈등 굉장한 날카로움이로군요.
우리 인간사 늘 안고 있는 문제지만 그렇게 명쾌하게 문제점을 집어낸 사람은 없었습니다. 늘 뭔가 좀 하면서 그냥 지나가버렸는데 참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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