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 기본구조 잘못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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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 기본구조 잘못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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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향대 제12회 이순신 학술세미나에서 국내최초 '거북선의 기본구조' 새롭게 규명

^^^▲ '장학근 이순신연구소장' ^^^
국내 대학 최초로 순천향대학교(총장 손풍삼) 이순신연구소(소장 장학근)가 거북선의 기본구조를 새롭게 밝혀내 학계는 물론 충무공이순신을 연구하는 전문역사가들로부터 주목을 받게되었다.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애 따르면 “현존하는 거북선의 기본구조에 대해 잘못 알려졌다”고 지적하면서 2층으로 알고 있는 거북선은 3층 구조라고 주장. “지금까지 알려진 2층 구조의 거북선 구조는 노를 젖고 포를 쏠 수 없어 전투를 할 수 없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복원 거북선의 기본 자료는 '이충무공전서'의 거북선 설명과 그림이다. 거북선 설명문과 그림에 의하면 거북선 측면에인 귀배판, 방패, 현판에 수(數)를 달리한 포혈(포구)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복원 거북선 모두에는 귀배판과 현판의 포구는 없어지고 방패에만 포구를 설치하고 있다. 이것은 기본 자료에 충실하지 않은 것으로 임진왜란 때의 거북선도 아니고, 정조 때의 거북선도 아닌 실체가 없는 거북선이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거북선이 2층, 2·5층, 3층설 등 전술 논리에 맞지 않는 무수한 이론이 제기되게 되었다.(이충무공전서(14권 8책. 1795년(정조19년)는 왕명으로 유득공(柳得恭)이 감독·편집하여 교서관(校書館)에 국(局)을 설치하여 간행한 이충무공 유고전집이다.)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는 ‘거북선고증연구위원회’(위원장 장학근 박사, 이순신연구소장)를 구성하여 거북선의 기본구조를 밝히는 연구에 착수했다. 그 결과 이순신이 밝힌 전투력을 지닌 거북선 구조에 접근하는 연구 성과를 얻게 되었고 그 연구과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학계의 연구 성과에 의하면 거북선의 최대 높이 추정치는 6m이다. 이를 귀배판, 방패, 현판에 각각 2m로 배분하면 임진왜란 당시 평균키가 153cm 였던 조선 수군이 충분이 전투 행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러나 귀 배판이 둥근 형태(◠)이기 때문에 귀배판 아래 상갑판의 최대 높이가 2m라고 하여도 사람이 활동할 수 없는 사구역(死區域)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이해로 인해 거북선을 복원하는 사람들은 상갑판을 없애고 모든 포혈을 방패판(주갑판)에 배치하게 된 것으로 생각 된다.

문제는 거북선이 2층일 경우 ‘포를 쏘면 노를 사용할 수 없고 노를 사용하면 포를 쏠 수 없는 군선이 된다. 이것은 “신이 일찍부터 왜적의 침입이 있을 것을 예측하고 거북선을 만들었는데, 앞에는 용머리를 붙여 그 입에서 대포(총통)을 쏘게 하고, 등에는 송곳칼을 꽂았으며, 안에서 밖을 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게 만들어 비록 적선 수백 척이라도 쉽게 돌입하여 포를 쏠 수 있다.”는 충무공 이순신의 승전보고 기록에 반하는 것이다.

^^^▲ '충남 아산 현충사 유물관에 전시된 거북선 모형'^^^
순천향대학교 거북선고증연구위원회는 거북선 귀배판이 둥근형태가 아닐 것이라는 점에 유의하고 당시 조선의 각종 사실화와 거북선 관련 자료를 다시 검토하게 되었다. 그 결과 조선시대 사실화는 서양의 원근법과 입체 표현과 달리 화가가 보는 정면은 그대로 측면은 눕혀 표현하고 또 보이지 않는 곳도 중요하다고 판단하면 표현하려고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지식을 갖고 학자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이덕홍의 저서 간재집에 나타난 귀갑선도를 입체화(사다리꼴 직육면체)하여 거북선 귀배판 위치에 놓아 보았다. 그 결과 상갑판의 사구역(死區域)이 전투 활동구역으로 변화되는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 결과는 임진왜란 때의 거북선은 물론 대형 거북선체제를 지향했던 영, 정조 시대의 거북선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임진왜란 해전에서 활약한 조선 수군의 주력전선은 판옥선이다. 판옥선은 선체가 크고 높아서 적이 등선육박전(登船肉薄戰: 왜 적이 칼이나 도끼를 들고 우리 군선으로 돌진해 들어와 공격하는 전법)을 할 수 없고, 화력이 강해 적선을 당파분멸(撞破焚滅: 대장군전과 장군전으로 적선을 부순 후 불화살로 적선을 태워 없애는 전법)하는 우수한 군선이다. 이런 우수한 전선을 운영하여 해전승리를 이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은 승전 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판옥선이 아닌 거북선을 다음과 같이 칭찬했다.

“신이 일찍부터 왜적의 침입이 있을 것을 예측하고 거북선을 만들었는데, 앞에는 용머리를 붙여 그 입에서 대포(총통)을 쏘게 하고, 등에는 송곳칼을 꽂았으며, 안에서 밖을 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게 만들어 비록 적선 수백 척이라도 쉽게 돌입하여 포를 쏠 수 있다. 사천해전(1592. 5. 29일)에서는 먼저 거북선을 돌진시켜 천지현황 등 여러 종류의 총통을 발사하자, 산위, 언덕, 배 등에서 쏜 왜적의 탄환이 비오듯이 날아 왔다. <중략> 거북선을 적의 누각선 아래로 곧장 다가가게 하여 용의 입에서 현자 철환을 치쏘게 하고, 천자, 지자 총통으로 대장군전을 발사하여 그 배를 깨트리자, 뒤따르던 여러 전선들이 달려들어 철환과 화살을 번갈아 쏘았다.”

이순신의 보고에 의하면 당시 사천포구의 전황(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일대)은 조선 수군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즉 포구에 있는 왜적들이 산, 언덕, 왜 적선에서 그들의 주력무기인 조총을 이용해 ‘선단보호망’을 설치하여 조선 함대의 접근을 저지했다. 그 결과 조선의 군선은 적선으로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당시 이순신은 “우리가 되돌아 나오면 적이 우리를 약하다 할 것이고 그렇다고 공격하면 피해가 많아지게 되는 진퇴유곡(進退維谷) 상황이라고 하였다. 이 진퇴유곡의 상황을 극복해 낸 조선의 군선이 바로 거북선이었다. 귀배판을 송곳칼로 무장한 거북선을 적 선단으로 돌진시켜 적의 지휘선인 누각선(층각선)을 격파하자 적의 지휘통신이 마비되어 혼란상태가 되었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화력이 우세한 판옥선으로 적 선단을 괴멸시킨 것이다. 즉 거북선이 전투를 할 수 없는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고 조선군에게 승리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이순신은 이러한 거북선의 전술적 가치를 인정하여 그의 승전 보고에 거북선을 위와 같이 소개한 것이다.

이순신이 거북선의 전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한 이후 조정 관리는 물론 일반백성들도 거북선을 해전승리의 요체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순신의 숭모열기와 함께 임진왜란 이후에도 거북선을 많이 만들자는 여론은 거북선 복원열기로 나타났다. 그 결과 거북선 복원은 적은 모형물에서부터 충무공 전서의 기록과 같은 1/1 거북선이 복원되기에 이르렀다.

향후,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는 연차 계획에 따라 임진왜란 때 거북선이 돌격선 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 함수포의 수요와 종류 포의 각도를 연구하고, 거북선의 귀배판이 지닌 전술적 의미를 공학적으로 해석한 후 거북선을 복원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번 5월 11일(화)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는 “현존 거북선의 구조적 문제점과 역사적 고찰”을 주제로 제12회 이순신학술세미나를 연다. 행사장소는 온양관광호텔 크리스탈 볼룸이며 시간은 당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이며 세미나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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