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는 ‘도깨비’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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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는 ‘도깨비’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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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장난이라는 감상은 싸구려 감성으로 쫓겨나고, 착시 도로나 윈드시어라는 메마른 과학적 분석과 차가운 이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래도 가끔은 도깨비장난이라는 낭만과 감성에 사로잡혀 살고 싶을 때가 있다.
제주 신비의 도로(일명 도깨비 도로) (사진 / 네이버 지도)
제주 신비의 도로(일명 도깨비 도로) (사진 / 네이버 지도)

제주도에는 ‘도깨비 도로’가 있다. 제주시 연동에 있는 도깨비 도로는 경사진 도로다. 여기에서는 둥근 공이 중력을 거스르며 경사를 올라간다. 소주병을 눕혀 놓아도 혼자서 구르며 동산을 올라간다. 그것만이 아니다. 자동차도 시동을 끄고 기어를 중립에 넣으면 자동차는 무동력으로 동산을 올라간다.

사람들은 여기를 도깨비 도로로 부르지만, 시청에서는 여기를 ‘신비의 도로’라고 이름 붙였다. 과학적으로는 착시 도로일지 모르지만, 일반인이 보기에는 도깨비장난이 아닐 수 없다. 제주도에는 전통적인 도깨비 신앙이 있었다. 도깨비 신에게 풍어의 기원을 올리거나 무병장수를 빌었다. 그래서 도깨비 도로는 착시가 아니라 틀림없이 도깨비가 장난을 치는 것이 틀림없다.

도깨비는 도로에서만이 아니라 골프장에서도 사람들을 놀린다. 홀 근처에 떨어진 골프공은 멈춘 줄 알았는데 경사를 올라가 홀컵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홀컵으로 들어가던 공이 내리막인데도 불구하고 홀컵 앞에서 멈춰버리기도 한다. 장난치기 좋아하는 도깨비의 얄궂은 장난이 아닐 수 없다. 골프장에서 멀리 보이는 한라산의 비탈면 경사가 사람들에게 골프장 경사도를 착각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제주공항에서는 비행기가 착륙하다가 심하게 흔들리는 경우가 있다. 여차하면 추락할 수도 있는 위험이 발생한다. 기상 관련 용어로는 ‘윈드시어(wind shear)’라고 한다. 기상법에서는 ‘급변풍’으로 개칭되었다. 남풍이 불어오다가 한라산에서 갈라지고, 갈라졌던 바람이 공항 근처에서 합쳐지면서 발생하는 이상 돌풍 현상이다. 이것도 틀림없이 도깨비장난 같아 보이는데 말이다.

제주도 북동 쪽에 위치한 구좌읍 한동리는 옛날 이름이 괴리, 괴이리였다. 괴리에는 옛날부터 도깨비불이 많아서 마을에 화재가 많이 났다. 조선 시대 마을을 방문했던 제주 목사가 “중국 신화에서 불을 처음 만든 수인씨가 홰나무(槐木)로 불을 일으켰는데, 마을 이름에 괴(槐) 자를 쓰고 있어서 불이 자주 나는 것”이라 하고 마을 이름을 바꾸도록 했다.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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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마을 이름을 한동리(漢東里)로 바꿨다. 한라산 백록담이 마을 동쪽에 있었기에, 동쪽의 한라산 은하수의 큰물(漢水)을 퍼다가 불을 끈다는 의미였다. 이름을 바꾼 후로는 마을에 불이 나지 않았다. 도깨비불은 사라졌지만 도깨비는 여전히 한동리에 죽치고 있었던 듯하다. 1997년에 한동리에서 발간한 마을지(誌)에는 마을에서 전해지는 도깨비에 관한 설화나 도깨비 목격담들이 많이 실려 있다.

한동리 골목을 거닐면서 이 동네에 살았던 도깨비들을 생각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한동리에 도깨비불이 끊임없이 나타나 가옥 처마에 불을 붙였고, 도깨비불이 워낙 많아 도시처럼 밝아서 바다에서 보면 시내로 착각해 들어오던 외국 배가 파선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같지만, 광복 후에 벌어진 일들이다.

이제는 휘황찬란한 전깃불과 최첨단의 과학에 쫓겨서 도깨비는 사라졌다. 덩달아 어린이들이 상상의 나래를 펴는 동심도 사라지고, 어린 시절 우리의 추억도 사라졌다. 도깨비장난이라는 감상은 싸구려 감성으로 쫓겨나고, 착시 도로나 윈드시어라는 메마른 과학적 분석과 차가운 이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래도 가끔은 도깨비장난이라는 낭만과 감성에 사로잡혀 살고 싶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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