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영하 장편소설 <검은 꽃>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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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 장편소설 <검은 꽃>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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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부르는 피리소리에 홀려 먼 곳으로 떠났던 사람들의 이야기

^^^▲ <검은 꽃>의 표지
ⓒ 문학동네^^^
"영원히 쓰고 싶은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이 그랬다. 처음엔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씹는 것 같았는데, 나중엔 허공을 걷는 기분이었다."

작가 김영하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실토했다.

"2000년에 한 재미교포를 만났습니다.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워싱턴의 이민역사학자를 만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더군요. 얘기인즉, 한일합방 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간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거기에서 조선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남미로 떠났다,

어느 나라인지는 잊어버렸다, 아마 엘살바도르쯤? 그런데 이들이 거기에 나라를 세웠으나 곧 멸망했다, 이들이 세운 나라는 잊혀졌고 그 흔적도 찾을 수 없다...다소 믿기 어려운 얘기들이었습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가장 먼저 세워진 김구의 임시정부보다 몇 년이 더 빠르게 되는 거니까요.

처음엔 무심코 듣고 흘려버렸는데 그 이야기가 계속 나를 사로잡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오래된 전설에서처럼 운명이 부르는 피리 소리에 홀려 먼 곳으로 떠난, 그래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는 언제나 흥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료조사를 시작했죠. 그러나 완전히 허공에 대고 칼을 휘두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일단 공책을 하나 사서 앞에다 '11 Desperado'라고 적었습니다. 워싱턴 이민역사학자에 의하면 최후에 남은 사람들은 11명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조금 장난스럽게 '11 Desperado'라고 적은 거예요. 그땐 그것이 몇 년 동안 나를 붙잡고 늘어질 프로젝트의 이름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김영하가 이번소설『검은꽃』을 쓰게 된 계기다.

김영하는 이 순간, 나는 1905년생이다!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감수성, 신세대적인 삶을 꿰뚫는 자유로운 상상력의 작가 김영하가 1905년생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를 주목받는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이후 본격적인 첫 장편이라 할 수 있는 『검은 꽃』에서, 그는 엉뚱하게도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 일하러 팔려간(?) 조선인들--이들이 바로 조선 최초의 멕시코 이민자들이다--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의 주무기인 경쾌한 문체와 자유로운 상상력의 바탕 위에 단단하게 자리잡은 서사는 그 어느 작품에서보다 돋보인다. 기울어져가는 대한제국의 패권을 놓고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에 돌입한 즈음인 1905년 4월 영국 기선 일포드 호는 조선인 1033명을 싣고 제물포항을 출발하여 외교관은커녕 교민 하나 없는 멕시코로 출발한다.

다양한 출신 성분을 지니고 있지만 재산이 없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조선인 승객들은 멕시코에 가면 좋은 일자리와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승선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낯선 환경과 에네켄 농장에서의 가혹한 노동이었다.

그들은 대륙식민회사의 농간에 의해 일손이 부족한 멕시코에 채무노예로 팔려간 것이다. 4년이라는 의무기간 동안 그들은 여러 농장에 분산 수용되어 비인간적 대우을 받으며 착취를 당한다. 간혹 파업이나 봉기 등을 통해 반항해보지만 직접적 폭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농장주에 유리한 현지 법에 의해 간접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한다.

4년이란 계약기간이 만료된 후에도 사람들은 경제적 자립을 이루지도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멕시코 전역을 떠도는 신세가 되며 그들 중 일부는 멕시코에 불어닥친 혁명과 내전의 바람에 휩쓸려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인다.

그 와중에 이웃나라인 과테말라에서도 정변이 일어나 혁명군측에서 조선인들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참전해줄 것을 요청한다. 그리하여 42명의 조선인들이 과테말라 북부 밀림지대에 도착해 한동안 정부군과 교전하는데, 그들을 이끈 인물이 그곳에 '신대한'을 국호로 내건 소국을 세우자는 제안을 해서 그곳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소강상태가 지난 후 그들은 정부군의 대대적인 소탕 작전에 의해 대부분 전사하고 만다.

이러한 줄거리는 이 작품을 자칫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민족수난사의 일종으로 오해하게 할 소지가 있다. 민족수난사에 대한 소설화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김영하가 겨냥하는 것은 근대 이후 우리 민족이 걸어야 했던 여정에 대한 냉정한 성찰이다.

김영하는 이 소설이 출간된 직후 번역원의 지원으로 세계 각국의 문인들이 모이는 창작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아이오와로 떠난다.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경험이 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또다른 이야깃거리를 가져다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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