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전만 해도 산동네 빈민들이 꾸리고 살던 집은 거의가 움집 이었다. 움집은 땅에 30~100cm의 깊이로 넓은 구덩이를 파서 만든 집인데 밑면을 방바닥으로 하고 그 위에 지붕을 덮어 살림집 형태로 만든 간이 주거 시설이었다.
움집은 역사적으로 볼 때 한반도에서는 신석기 시대 이후 선사 시대 전반에 걸쳐 나타난 기록이 있다. 인천 송림동의 수도국산은 그 옛날 중국인의 호(胡)국수(당면) 건조장이었는데 그 일대에 움집의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6,25전쟁이후 산동네는 하늘에 걸린 달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먼저 볼 수 있다고 하여 달동네가 되었는데 이름은 시적으로 감상적이나 실제 그들의 생활은 그렇지가 않았다.
6,25전쟁 때 피난길에 올랐던 난민들이 수복하여 옛집을 찾았으나 집은 이미 폭격으로 사라지고 거쳐할 곳이 없어 임시변통으로 빈터에 네 기둥을 세우고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포장박스를 주워 다가 바람막이 벽을 치고 콜라나 통 졸임 캔을 펴서 비 가리개인 지붕을 만들어서 간이 주거공간인 포장박스 집을 만들어 지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집 이름을 하꼬방이라 했다. 그때 만 해도 우리말과 일본말이 혼용되던 시절이었다. 포장박스를 일본말로 보루바꼬(ボ―ルばこ=箱)라 했다. 영어로 쓰면 칼보드박스(cardboard box)라고 하며 이를 풀이하면 판지(板紙)상자”가된다.
미국 같은 부자나라에도 대도시의 노숙자들이 집단으로 모여 판지 집을 짓고 사는 칼보드시티(cárdboard cíty)가있다. 당시 우리의 상황으로 볼 때 판지 상자 집은 불가항력이었을 것이다.
일본인들의 영어 발음은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제대로 발음도 못 할뿐더러 복잡성을 덜기위해 생략을 좋아한다. 원어에서 볼드(board)만을 따서 보루(ボ―ル)라고 발음했고 박스(box)는 하꼬(はこ-箱)라는 자국어를 그대로 쓴 것이 보루바꼬 이다.
일어 문법상 하꼬(はこ-箱)앞에 보루라는 단어가 붙어서 바꼬(ばこ-箱)로 발음 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술 더 떠 일본말의 하꼬(箱)를 그대로 따다 우리말의 방(房)을 합쳐 하꼬방(はこ+방=箱+房)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 후 생활이 안정되며 여유가 생기자 벽으로 쳤던 포장박스를 뜯어내고 대신 널빤지(板子)를 치기 시작하며 판자 집이라 부르게 됐다. 이제는 생활환경이 개선된 주택개량으로 옛 모습을 거의 볼 수없는 추억속의 이름이 되고 말았다.
6,25전쟁 말기 휴전선인 판문점(板門店)에서는 휴전협정을 위한 회의가 연일 개최되며 판문점이란 이름이 보도선상에 오를 때 어떤 이는 그곳이 하꼬방 촌이냐? 고 질문한 넌센스도 있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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