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내전 그리고 국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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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내전 그리고 국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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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열된 국가, 미얀마
- 국제사회의 대(對)미얀마 성명 등은 효과 없어
- 쿠데타 반대를 위한 강렬한 저항운동
- 군사정권 대항 세력에 대한 국제사회 책임 매우 커
- 군부세력과 관련된 지원 모두 차단, 지원 중단해야
유엔과 세계 정부는 쿠데타 세력과 맺은 관계를 전면 중단하고, 현재 부정할 수 없이 실패한 평화적인 절차를 지원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그들은 나라의 모든 소수민족들의 정치적, 문화적, 영토적 권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통치 체제를 구축하려는 연대기구의 민주화 세력을 지원해야 할 엄청난 책임을 져야 한다.(사진 : 미얀마정치범지원협회 홈페이지 AAPP)
유엔과 세계 정부는 쿠데타 세력과 맺은 관계를 전면 중단하고, 현재 부정할 수 없이 실패한 평화적인 절차를 지원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그들은 나라의 모든 소수민족들의 정치적, 문화적, 영토적 권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통치 체제를 구축하려는 연대기구의 민주화 세력을 지원해야 할 엄청난 책임을 져야 한다.(사진 : 미얀마정치범지원협회 홈페이지 AAPP)

미얀마 군부가 지난 21일 전격적으로 민간정부를 상대로 쿠데타를 감행한 이후 미얀마 전국에서는 쿠데타 반대 시위, 파업, 시민불복종 운동 등의 사태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탯마도(Tatmadaw)’로 알려진 미얀마 군대는 반대 시위를 강제 진압하기 위해 잔인한 군대를 배치, 11일 현재 701명 이상의 사람들을 죽였고, 그 중 적어도 46명의 아이들이 죽었다. 잔인한 군대는 시위대를 향해 박격포까지 발사하는 등 있을 수 없는 일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다.

미얀마의 헙법에 따르면, ‘탯마도는 미얀마 대통령이 이끄는 국방안보위원회(NDSC, National Defence and Security Council)에 직접 보고를 하도록 돼 있으며, NDSC는 미얀마의 안보와 국방 문제를 다루는 11명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National Security Council)로 미얀마 정부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고 있다.

미얀마에는 징병제가 없다. 따라서 모든 복무 요원은 이론적으로는 자원봉사자이지만, 대통령이 미얀마 방어에 필요하다고 판단을 하면 징집 명령을 내릴 수 있다.

탯마도는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민족 반란군과 나르코 군대(narco-armies)와 치열한 전투를 벌여 왔으며, 1962년 쿠데타 이후 미얀마 정치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최근, 탯마도는 인종청소, 성노예, 성적 고문, 성폭행, 임의적인 민간인 살해 등의 인권 침해로 국제기구들에 의해 널리 비난받고 있는 중이다.

쿠데타 이후 반()쿠데타 시위를 강압적으로 진압하기 위해 군경의 폭력사태의 대부분은 미얀마의 주요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 3월 말 이후 카렌 주(Karenni state)에서 공중 폭격이 반복되면서 약 19명이 사망하고 4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으며,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탯마도는 카친 주(Kachin state)에서의 군사 활동 등으로 민간인들에 대한 폭력사태가 증가되고 있다.

탯마도와 시위대 및 민간인 조직과의 전추로 샨 주(Shan State)에서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피난 길에 올랐고, 많은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미얀마 군부 세계에서는 잔인한 폭력이 아무리 많이 발생해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미얀마 군부에 의해 희생되어 인구의 약 1/3을 차지하고 있는 다양한 민족과 쿠데타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바마르(Bamar)족과 민족 간의 결속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이는 확실히 군사 지도부의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갈수록 이들에 의한 공격이나 습격이 빈번해지며 그 공격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얀마 사태 해결과 민간통치 회복을 위해 국제사회가 과거의 잘못한 일을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다. 미얀마에서는 통일된 국가다운 국가를 가져본 적이 없다는 점을 이해하고, 국경 안에 있는 여러 소수민족들을 인정해야 한다.

* 분열된 국가, 미얀마

미얀마의 오랜 인종 갈등의 토대는 1824년에 시작된 영국의 식민지화 기간 동안 형성됐다. 영국의 식민지 개척자들은 인구를 나누고 통치하기 위해 인종적 범주와 선호 계층 구조를 부과했다.

2차 세계 대전 동안 카렌족과 같은 민족들은 영국 편에 서서 버마족에 대항해 싸웠고, 그 대가로 독립 국가를 얻기를 희망했다. 1948년 영국이 떠난 후, 카렌과 다른 민족들은 민족자결주의(self-determination)를 위한 투쟁을 계속했고, 오늘날까지 그들은 버마 국가의 비전을 거부하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수십 개의 민족 군대와 정당에서 나타난 수많은 집단들 사이에서 자치와 독립의 움직임이 있었다. 이러한 열망들이 초래한 많은 갈등 중에서, 자율성을 위한 카렌전국연합(KNU, Karen National Union)의 투쟁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는 갈등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2015KNU는 다른 여러 민족 무장 단체들과 함께 다자간 전국휴전협정(NCA, Nationwide Ceasefire Agreement)을 체결하고, 미얀마 평화 절차에 참여하게 됐다. 그러나 이것이 긴장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미얀마군은 휴전협정을 위반해 카렌 영토를 통해 육군 기지와 도로를 지속적으로 확장해 KNU와의 무력충돌이 잦아지고 있다.

2018년 가장 중요한 NCA 서명 주체인 샨 주 회복협의회(RCSS, Restoration Council of Shan State)는 물론, 21일 군부 쿠데타 이후, 완전히 결렬된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참여를 중단했다.

미얀마 민족적 역학관계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해 부족과 언론의 보도의 부족은 평화프로세스 시작 2년 만인 2017년 군이 라카인 주(Rakhine state)의 로힝야족(Rohingya)을 상대로 대대적인 인종청소 운동에 나서면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민간인 학살, 성폭력, 대량 추방은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고, 야권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의 군대의 대량학살 행위를 옹호하는 결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미얀마의 다양한 민족적 구성원들에게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버마화(Burmanization)에 뿌리를 둔 정치적 세계관, 즉 소수민족 언어, 문화, 종교, 영토의 문화적 지배와 지우기 아래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계속 지적되어 왔다.

미얀마는 응집력이 강한 국가가 아니라 군부의 철권력에 의해 장악되면서 강요된 국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군대와 충돌하고 있는 민족 무장 단체들은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많은 경우에 중앙 당국에 의해 오랫동안 버려져 있는 국가의 일부 지역의 사실상의 통치 기구들이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독립적이고 주권적인 국가의 시민으로 이해하고 있다. 지역 시민 사회와 협력하여, 이러한 민족적 조직은 거의 모든 국가 기능을 수행하면서 의료, 교육 및 기타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앙의 미얀마 정부 통치는 미얀마 전 국토를 통일성 있게 다루지 못해왔다.

따라서 대부분의 버마족(미얀마족, Bamar) 시민들이 지지하지 않는 잔혹한 군사정권보다 이러한 사실상의 민족국가들이 더 합법적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사실 소수민족 무장 단체들은 그동안 사소한 것처럼 간과되어 왔지만, 오랫동안 미얀마의 독재에 저항하는 필수적인 요소로 활동해 왔으며, 오늘도 마찬가지다.

* 쿠데타 반대를 위한 강렬한 저항운동

미얀마의 다양한 국민들 사이의 단일화 요인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된 군부의 억압적인 통치였다. 지난 21일 전격적인 군부 쿠데타 이후, 이 무장 단체들은 서로 다른 관점에 놓여 있지만, 군사정권에 대한 그들의 반대 운동에서는 점점 더 결속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그들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그들의 차이점에 대해 소통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는 아웅산 수치 여사와 그녀가 이끌고 있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에 의해 만연된 배신감을 가지고 있는 소수 민족들이 있지만 군사정권에 대한 강력한 저항을 위해서는 서로 연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버마족에 의한 문화적 패권이 아닌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서로 공유되어 있는 정치적 상상력의 창시자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미얀마는 장기전의 내전으로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미얀마 군부가 이 새로운 소수민족 간의 연대에 대응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잔인성과 폭력성은 소수민족들의 결속력을 보다 더 강화시키고 있음을 암시할지도 모른다. 광범위한 시민 불복종 운동(CDM, Civil Disobedience Movement)’을 포함한 군사 통치에 반대하는 시위는 잔인한 진압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계속되며 확산되고 있다.

이 순간이 단순히 아웅산 수치 여사와 다른 억류된 NLD 당원들의 석방과 복직 그 이상이라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양곤과 만달레이에서는 버마족이 다수이지만 인종적으로 다양한 도시들, 붉은 머리띠와 아웅산 수치 여사의 모습, 민족 국기 등이 전통의상과 어우러져 있으며, 연방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미얀마 군사통치의 정지를 요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표지판도 있다.

카친 주(Kachin State)의 주도 미치나(Myitkyina)와 카렌(Karen)이 관할하는 무트로(Mutraw, Hpapun-파푼) 지방에서는 민족적 정체성과 주권을 주장하면서 군사정권을 거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수많은 시위자들의 열렬한 요구로 미얀마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 Committee Representing Pyidaungsu Hluttaw)는 군대의 정부 통제권을 수용한 2008년 헌법을 폐지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중요한 전환점을 나타낸다.

시위운동의 소수민족 간 연대와 결속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군부 쿠데타 세력의 잔혹상이 확산되면서 훨씬 더 연방 민주주의(federal democracy) 쪽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버마족 다수당 의원들조차 다양한 다민족 정치 주체의 일부라는 현실과 맞닥뜨려지고 있다. 이 신흥 다민족 연합은 탯마도(Tatmadaw)의 군홧발 아래에서 수십 년간의 고단한 삶과 죽음에 의해 통합된 기구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1988년 항쟁이나 시민 민주주의 운동(People’s Democracy Movement)‘으로 거슬러 올라가 소수 민족들과 민주화 운동가들 사이에 지지의 유산이 되어 왔다.

고립주의적 전체주의 정권 아래에서 빈곤을 척결해야 한다며 항의하는 노동자 계급이자 학생 주도의 운동 등으로 국민들이 고통 받는 동안 군부 세력은 자신들의 힘을 강화하는 데 자원을 집중시켰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지도자로 떠오른 것은 이 시위운동 기간 중이었다.

최근 미얀마와 미얀마 국경지대에 걸쳐 군사정권에 대항하여 현재 진화하는 연대와 결속의 폭은 전례 없는 일이다.

최근 들어 Z세대는 시위운동의 원동력으로, 소수민족 권리를 요구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들의 적극적인 인터넷과 모바일 사용 덕분에, Z세대의 구성원들은 그들의 부모들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국경을 따라 있는 내전의 이미지와 뉴스를 광범위하게 노출시키고 있다. 물론 군부 쿠데타 세력은 이를 차단하기 위한 강력한 통제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Z세대들은 과련 소식들을 외부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인터넷 접속은 2014년 이후에야 미얀마에서 널리 보급되었고, 그 이후 탯마도반대 시위 때 등 여러 분야에서 반복적으로 금지돼 왔었다.

CRPH보다 젊고 인종적으로 다양한 군중들이 모여 전국 곳곳에서 시위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국민총파업위원회(The General Strike Committee of Nationalities)는 민족국가가 정부에 평등한 대표성을 갖는 연방민주주의를 수립하겠다는 목표를 정리했다.

지난 몇 주 동안 미얀마 정부는 인종적 다수 지배를 넘어, 식민주의와 현대 미얀마 국가의 집단 학살적 폭력 흔적을 넘어서는 광범위한 정치적 상상력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 미얀마 국민 모두의 관점과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

민간 정부와 의회 의원들 사이에서도 소수 민족이 국가가 나아가야 할 소중한 동맹국이라는 인식이 있다. CRPH는 국가의 민족 무장 조직을 국가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삭제했다. 이는 국가의 다양한 민족들 사이에 단결을 이루기 위한 실질적인 진전이다.

과거 NLD 정부가 저지른 역사적 부당함과 배신감을 감안할 때 소수민족은 그러한 동맹을 신뢰하는 데 신중하다. 다만 미얀마 중부에 있는 반파시스트 버마족의 비상사태는 민족 행정부와 달리 자체 군부가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반()쿠데타 운동은 외국의 개입이 없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소수민족들과 그들의 무장 민족 그룹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다. 사실 군부 통치의 전복을 위해 민족 전체에 걸쳐 협력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들이 뉴스에 점점 등장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도시 지역 출신의 민간인들, 그들 중 대부분은 CRPH의 회원들을 포함하여 버마족이 현재 난민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민족 무장 단체들에 의해 통제되는 지역에 피난처를 취하고 있다.

미얀마 노조는 2천명이 넘는 난민들에게 음식과 피난처를 제공하고 있다고만 말한다. 군 병사들이 쿠데타 반대세력에 합류하기 위해 KNU 영토로 망명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군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민족 무장 조직들의 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강조되고 있다.

식민지 이후의 민족주의 시대의 산물인 미얀마는 국경 안에 있는 수많은 민족들 사이에서 아직 정치적 상상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 프로젝트에 대한 반()권위주의적 공동비전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순간과 마주하고 있다. 운동가들과 민간 지도자들이 그들의 집에서 끌려 나가고 무고한 시위자들과 소수민족의 민간인들이 매일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해방이라는 새로운 문법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지금이 그 가능성이 무르익은 순간이기도 하다.

카렌, 로힝야, 카친 그리고 다른 많은 비()버마족들에게 현상유지는 불가능한 상황이 도래되었다. 군부 쿠데타와 두 달간의 항의 시위에 비춰볼 때, 국제사회가 미얀마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꿀 때가 됐다. 지금까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비난 성명이나 내거나, 군부와 연관된 미얀마 기업에 대한 제재, 일부 군인들에 대한 제재가 전부이다. 미얀마 군부 세력은 이러한 국제사회의 연약한 압박을 버텨내는데 이미 이골이 나 있으며,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탯마도의 끝없는 공격 속에서 심각한 결함이 있는 평화 과정을 촉진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실수였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기부국 정부(Donor government)는 그들이 인종적(소수민족의) 우려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유엔과 세계 정부는 쿠데타 세력과 맺은 관계를 전면 중단하고, 현재 부정할 수 없이 실패한 평화적인 절차를 지원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그들은 나라의 모든 소수민족들의 정치적, 문화적, 영토적 권리를 보장하는 새로운 통치 체제를 구축하려는 연대기구의 민주화 세력을 지원해야 할 엄청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게 해서 태동된 군사정권에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의 구축이 가능해질 수 있고, 민주주의 회복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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