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광복 62주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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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광복 62주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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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깃발이여, 영원히 이 땅에서 사라져 버려라

^^^▲ 해방 역사적 순간의 국민들^^^
조선총독부의 최후

“독립 준비를 해도 좋소!”로 송진우를 설득하던 오까 경찰부장은 절박한 심정 끝에 어찌할 줄을 모르더니 종내엔 협박적인 언사로써 비상사태를 맡아달라고 간청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송진우에게 졸라댄 얘기의 내용이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조선총독부가 가진 권력을 모두 빌려줄 터이니 이를 맡아서 자기네들을 보호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조선총독부의 권력을 4분의 3까지 줄 터이니 맡아주고 신문, 라디오, 교통기관, 헌병, 경찰, 검사국 등까지 다 밀어주는 댓가로 일본인의 거류를 인정해주고 신변 문제와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문제를 책임지라는 것이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

송진우가 끝내 이를 거부하자 이번에는 낭산 김준연을 찾아갔다. 결국 김준연은 마지못해 경기도지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날이 8월 14일로서 아침 9시경부터 무려 대여섯 시간이나 설득 공작이 계속되었다.

그날 서울에는 미군 폭격기 B29가 나타나 시민들이 방공호에 피난하는 등 법석을 피워야 했는데, 그들 일인들은 국내에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점과 학생들의 동향에 관심을 모으고 있었다.

8월 14일 밤 라디오 방송은 15일 정오에 중대 방송이 있으리라는 것을 예고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정오, 전 세계에 방송된 일본 천황 유인의 힘없는 목소리는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알리고 있었다.

사슬을 벗어나 광명으로

한국 민족은 36년간의 쇠사슬을 풀고 감격에 찬 해방의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이다. 3천만이 몸부림치며 환호하던 8월 15일, 그러나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기란 결코 손쉬운 일이 아니었다. 역사는 그것을 사실로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일본 천황의 항복 방송으로 최후의 막을 내린 조선총독부는 그로부터 미군이 우리나라에 상륙하던 날까지 우렁찬 독립만세와 감격 어린 흥분으로 뒤덮힌 우리 3천만 동포들의 아우성 속에서 전전긍긍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8월 21일, 서울에는 미군 비행기가 나타나 근일 내에 하지 중장이 상륙하리라는 비라를 뿌리고 다녔다. 미군이 처음으로 이 땅에 나타난 것은 1945년 9월 9일의 일이다. 이날 하오 4시, 일제의 식민지 착취와 압박으로부터 3천만 동포가 해방되었음을 실증하는 일본의 항복 조인식이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거행되었다.

역사적인 순간이다. 하지 중장을 중심으로 하는 미군측 대표단과 아베 조선총독, 상월 조선군 사령관, 산구 진해 경비부 사령관 등이 오금을 펴지 못하고 식은 거행되었다.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나라 해방의 역사적 순간이었으며 자주 독립을 위한 시련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항복 조인식은 30분만에 끝났다. 일본의 깃발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군중들의 박수갈채가 천지를 진동하는 듯 했다. 제국주의 깃발이여, 영원히 이 땅에서 사라져 버려라, 온 국민은 이렇게 울부짖고 있었던 것이다.

9월 12일, 아베총독을 정식으로 파면하고 16일에는 일본인 경관도 일제히 파면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일본인의 게다짝 소리는 이 땅에서 사라져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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