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깍두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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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젖은 깍두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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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록 몸은 약하지만...

마음은 백범이었다.

내가 백범 김구를 존경한 이유도 물론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존경대상이고
무엇보다도 그 분의 가문과 인생이 흡사한 부분이 많았던 것도 그 이유였다.
다른점이라면 어렸을 때 김구선생과 달리 개구쟁이가 아니었다는 것을 재외
하면 한 번 결심한 일은 어떻게 해서든지 밀어붙이는 불도저식의 사고력을
가졌다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그리고 깁구의 어록 가운데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와 '마음좋은 사람이 되자'는
결심을 한 것도 필자와 일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였음에도 한 때 불교를 접 한 경력도 있었는데(김구는
일경을 피해 공주 마곡사라는 사찰로 들어가 일시적으로나마 승려가 된 바
있으나 필자의 외할머님은 6.25동란으로 남편과 친정식구들을 잃은 충격으로
1.4후퇴 때 사찰로 들어가 생활한 것이 인연이 되어 임종 전 까지 불교로 귀의
하셨다) 그리고 몰락한 양반가문(백범의 선조는 11대조가 영의정이었으나
역적모의로 모든 관직을 박탈당했지만 필자의 조부는 전쟁이 후 내리막길로
들어섰다.)이었으며 안경을 착용했다는 점에서 일치했다.

이렇듯 혹자들은 필자의 사고방식이 부정적이라고 한다.하지만 학창시절부터
20대까지만 해도 <오체 불만족>의 작가 오토다케 히로타다처럼 밝고 건강했다.
그러나 인간의 심리는 부정적이었다가 긍정적일 수 있고 긍정적이었다가 부정
적일 수 있는 것이 인간세상의 돌아가는 원리이다.

이전에도 기사화 했듯이 취업난이 심각하다지만 파헤쳐보면 일자리는 아직
까지는 충분하다.(경기가 더 악화되지 않는 한...)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의
인식이다.수습기간도 없이 첫 대면에서 몸이 좀 불편에 보인다며 집에나 가라
는 식으로 외면하는 건 우리사회는 여전히 복지 후진국이라는 사실임이 명백
히 드러나는 결과이다.3~6개월에 걸친 수습기간을 거치면서 영 아니라면 그
때는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만약 초기 인형극단과 인터넷신문사에서 필자에게 처음 연락했을때 눈치를
채고 그냥 시민기자로만 활동하라고 말을 했었더라면 없는 교통비들여 지방
까지 내려가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리고 마치 완전히 취업 한 사람처럼 식구
들과 교회에 그렇게까지 자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미 인터넷신문에 그동안 기재된 칼럼을 모아 책으로 내었고 지금도
단 한가지만이라도 이루려 하고 있다.

기사유출을 거론하면서 법적조치한다고 했을때 이미 인터넷신문에서 고정
연재를하던 시민기자분 4명이 연재기사를 책으로 엮어내었다.(그 분들 모두
안정 된 본업을 병행하고 있다-_-;)이렇듯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는 차별
감에 울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이것으로 눈물 젖은 깍두기를 마치려 한다.단 우리사회의 장애인에대한 인
식이 봉건시대에서 머물지만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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