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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치의 벼루^^^ | ||
시는 지난 2002년도부터 몇 차례에 걸쳐 김선치의 벼루를 문화재로 지정해줄 것을 경상북도에 신청했다. 이에 경상북도는 본 벼루에 대해 지난 4월초부터 5월초까지 30일간 문화재 지정예고를 한 후 경상북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난 6월 29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84호로 지정되었음을 공고했다.
경상북도는 이 벼루가 고산석(高山石)으로 14세기 또는 15세기에 제작되었다는 시대가 확실한 명문(明文)이 새겨져 있고, 그 주인공이 고려의 문인이며 무신인 김선치가 12세 때 자서(自署)한 ‘金先致 年十二’라는 명문이 음각된 벼루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가치를 지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84호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 벼루는 1762년 김선치의 14세손인 김담(金湛)에 의해 발견될 당시 문경현감(聞慶縣監)이 특별히 제작케 한 벼루집은 목질이나 양식이 당대의 것으로 인증되고 있다. 특히 이 벼루를 두고 조선시대 당시의 문사(文士) 30여명이 기(記), 시(詩), 가(歌), 행(行) 등으로 연기(硯記, 벼루에 관한 기록)를 써서 찬양하고 있어 그 정신문화적 가치는 매우 높다 하겠다.
한편, 이 벼루의 주인공인 낙성군((洛城君) 김선치(金先致, 1318~1398)는 본관이 상주(尙州)이며 17세에 나주판관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1342년(충혜왕 복위 3년) 낭장(郞將)으로 전라도도순문사(全羅道都巡問使) 유탁(柳濯)을 따라 왜구를 격퇴했고, 공민왕 때는 홍건적(紅巾賊)을 물리쳐 일등 공신에 책록 되었다. 우왕 초엔 투항해 온 일본 해적 후지 쓰네미쓰(藤經光)의 무리를 밀직부사(密直副使) 김세우(金世祐)의 명령으로 유인하여 죽이려다가 실패한 사건으로 수졸(戍卒)로 충군(充軍)되기도 했다. 이 후 그는 1378년(우왕 4년) 낙성군(洛城君)에 봉해지고 추충보절찬화공신(推忠保節贊化功臣)에 책록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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