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차
스크롤 이동 상태바
밤 열차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머니는 침묵하며 성경책만 보았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예수쟁이라서 형이 잘못되어 간다고 야단을 쳤다. 형이 노름판에서 얻어맞았다는 말을 어머니는 정자나무 밑에서 들었다.

새로운 뉴스처럼 동네 노인들은 떠벌렸다. 읍내에 다니는 작부의 아버지가 동네에 나타나서 사실과 관계없이 소문을 냈다. 어머니는 허겁지겁 읍내로 달려갔다.
"많이 다쳤습니까?"
"중상입니다."
"어떤 놈입니까,"
"아직 모릅니다. 자기들끼리 치고 받아서,"
"내가 죄가 많아서 그렇지,"
순경은 알면서도 대답이 없었다.

어머니는 울면서 하나님을 찾으며 아들을 불렀다. 정성이 부족한 것과 돈이 없어서 아들이 그렇게 됐다고 가슴을 쳤다. 하늘이 노해서 그렇다고 울부짖었다. 할머니는 형에게 살이 끼어서 그렇다고 어머니를 닦달했다.

형은 어머니의 마음과 다르게 점점 나쁜 일을 저지르기만 했다. 그때 패싸움도 도깨비가 먼저 일을 저질렀다. 그리고 자기는 빠져 나왔다. 형이 모든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안 성호는 도깨비와 심하게 다투었다. 그러나 그 때도 역시 도깨비는 웃기만 했다.

검은 모자와 제복을 입은 순경이 또 다시 동네에 나타났다. 정자나무 밑에 노인들은 또 입방아를 찌었다. 아버지는 집안에만 계셨다.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어머니에게 순경은 아들이 있는 곳을 물었다.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모릅니다."
"바른 대로 대지 않으면 은닉죄로 처벌하겠습니다."
"은닉죄가 무엇인데요?"

어머니는 경찰관이 말한 은닉죄가 무엇인지를 몰랐다. 법률에 가장 밝은 노인에게
이야기를 듣고서야 알았다.
"아들을 숨겨 주는 것이 은닉죄라고,"
"나쁜 놈들 같은 이라고,"
형이 병원에서 아픈 몸으로 도망을 갔다는 것을 알았다.

패싸움에서 여러 명이 다쳤다고 했다. 형이 주범이고 도깨비는 종범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또 물었다. 주범이라는 소리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종범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도깨비가 종범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형은 주범이 되지 않기 위해서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픈 몸으로 도망간 것을 알고 엄마는 통곡을 했다. 아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은닉죄 걱정을 했다. 도망을 간 것이 또 도깨비에게 유리하게 만들었다.

언제나 죄진 자가 도망을 가게 마련이라는 철칙이 확인되었다. 얼마가 지나간 후에 형은 말쑥한 차림으로 동네에 나타났다. 엄마는 무조건 아들이라는 이유로 얼싸 안고 울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몹시 화를 냈다.

성호는 그때처럼 아버지가 화를 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 형이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노름판에서 돈을 좀 딴 것 같았다.

형은 신수가 훤해 보였다. 케네디를 흉내낸 복장은 누가 보아도 멋있는 청년이었다. 지성적인 것을 겸비했다면 정말 케네디를 닮았다고 성호는 생각하며 걱정했다. 하지만 형의 음흉한 행동은 '라스콜리니꼬프를 닮아 가고 있었다.

형은 역시 별이었다. 무엇에 쫓기는 듯 새벽에 바람과 같이 다시 사라졌다. 어머니는 소문이 나는 것이 싫어서 모른 척 하려고 했지만 정자나무 밑에서는 벌써 형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바람처럼 퍼졌다.

도깨비는 그 특유의 침묵과 미소로 또 순경의 호감을 사고 무사했다. 성호는 그러한 도깨비를 매우 싫어했다. 자기가 일을 저지르고 나면 형은 가세하여 일을 더 크게 벌리고 나중에 모든 책임을 혼자 지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 되었다.

형은 읍내 사람들의 바람잡이였다면 도깨비는 형의 바람잡이였다. 도깨비가 바람을 잡으면 형은 '라스콜리니꼬프'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사고가 터지면 도깨비는 빠지고 형은 모든 책임을 졌다.

성호는 그런 악순환을 볼 때마다 형을 영웅으로 보기보다는 바보로 보기 시작한 것은 철이 들면서였다. 전과가 있는 것 때문에 늘 형이 모든 사고의 책임을 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성호는 도깨비에게 요즘도 노름을 하느냐고 물었다. 손을 끊은 지가 오래 되었다고 했다. 손을 칼로 자르고 다시 하는 것을 보았다. 성호는 웃으며 "그것을 어떻게 끊겠어, 지금도 하고 있겠지." 형이 노름을 하게 된 이유도 도깨비 같은 친구가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술이 심하게 취해 왔다. 바닷가의 야경이 창문을 통해 들어 왔다.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멀리 검은 산이 서 있다. 그리고 바다 물결이 짙은 회색으로 꿈틀대는 것이 보였다. 가로등은 희뿌연 색을 내며 거리를 은색으로 비추고 있었다. 가끔씩 밤늦게 귀가하는 사람들이 어디로 인지 바쁘게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창가에서 멀리 보이는 곳에는 몇 척의 배들이 잠을 자고 있었다. 시계추처럼 반복하며 흔들리는 바다 물결이 가로등에 반사되어 아름다운 밤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성호는 옛날의 감상이 사라지고 만사가 귀찮아졌다. 그냥 잠들고 싶었다. 멀리 떠나고도 싶었다. 그렇게 형이 있는 곳을 알려고 애를 썼지만 도깨비는 입을 열지 않았다. 정말로 모르고 있는 것인지, 알면서도 입을 열지 않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정말 도깨비는 대단한 자였다. 그렇게 모질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쁜 일을 하고도 무사하다고 생각하자 성호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마시던 술잔을 비웠다. 그리고 쏟아지는 눈물을 주먹으로 닦아 냈다. 왜 이 시각에 보기 싫은 사람과 같이 앉아 있어야 하는지 슬픈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평생을 아들이 잘되기를 바랬지만 형은 거꾸로 가는 전차처럼 다른 삶을 살았다. 마주보고 앉아 있는 도깨비의 얼굴이 더욱 보기가 싫었다. 계속 침묵하고 있는 도깨비에게 침을 뱉고 싶었다. 그의 묵비권은 정말 대단했다. 그러니 형만 당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더 하게 했다.

도깨비는 역시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이제 그만 일어나자고 했다. 성호는 무엇인가 도깨비로부터 알아보려고 하던 것을 포기했다. 나중에 책임질 일을 하지 않는 도깨비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성호는 도깨비와 작별을 했다. 그리고 늦은 밤 열차를 타고 서둘러 서울로 돌아왔다.

(다음에 계속)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기획특집
가장많이본 기사
칼럼/수첩/발언대/인터뷰
방송뉴스 포토뉴스
오피니언  
연재코너  
지역뉴스
공지사항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뉴스타운TV 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