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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대의 고독을 위하여 ⓒ 한국 수필문학 추천 작가회^^^ | ||
수필가 약 250여명이 참석한 심포지엄에서 주제 발표자로 나온 박종숙은 '나는 수필의 반역자이다.'라는 논제를 발표했고, 최홍식은 수필 쓰기 사례 등을 발표하고 토론했다.
또한 매년 발간하는 수필가의 '수필 선집'을 발간하고 있는데, 이번 호는 15번째의 수필 선집으로 『갈대의 고독을 위하여』를 발간했다.
이 책은 수필 작가 130명이 공동 집필한 책으로 1부에는 「버리고 떠나기」「그곳에 가면」「그래 왔냐」「돌아온 배」「여자는 여자」 등 5부로 구성하여 각각 25편 내외의 신작 수필을 싣고 있다.
이중에 뉴스타운의 논설위원인 조성연 수필가는「이성이란 무엇인가」를 기고하였다. 이 글을 아래에 게재한다.
이성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사는 동안에 많은 난제들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마다 현자와 우매한 자의 처신방법이 다르다. 현자는 감성과 이성이 폭발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자기에게 유리한지를 판단하고 올바르게 행동한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그 반대로 한다.
그렇다면 이성이란 무엇인가? <완장>이라는 영화 이야기를 해보겠다. 영화 속의 주인공이 완장을 차자 무서워졌다. 순박한 농부는 슬며시 돈 봉투를 손에 쥐어 주었다. 그는 웃으며 못이기는 척하고 받았다. 얼마 후에 농부의 논에는 풍성한 물이 흘러들어 갔다. 타들어 가던 벼가 되살아 나는 것을 보고 완장의 위력을 실감한다.
목격자들은 그들이 처한 입장에 따라서 다르게 말했다. 그러한 것은 흔한 일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누구든지 한번씩 그런 짓을 다 해보았기 때문에 별일이 아니다.
또 그 반대편들은 하나님이 주신 물을 팔은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이다. 공동 소유의 물을 팔은 것은 봉이 김선달보다 더 악랄한 짓이다. 이성과 감성, 도덕과 양심, 소박성과 악랄함 같은 것을 상대 비교하며 다투어서 결론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어려워진 문제를 말주변도 없고 제일 가난하게 사는 한 농부가 쉽게 해결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주면 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해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지만 그 농부는 자기 논의 물고를 열어서 물을 아래로 흘려 보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물고를 파기 시작했다.
그 때서야 그렇게 말한 이유를 알았다. 모든 물고를 열면 하나님의 것이 되며 공평하게 해 주실 것이라는 그의 말뜻을 알게 되었다. 그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을 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악한자는 누구인가, 물을 팔은 자인가, 그 것을 알면서도 돈을 주고 산자인가, 아니면 이미 경험을 한 죄진자들인가, 이성적 판단을 원하는 논쟁자들인가, 물고를 열어서 행동으로 보여준 보잘것없는 농부인가. 이렇게 물으면 누구나 쉽게 어느 것이 답인지를 알게 된다. 공평성과 순리대로가 정답이다.
이성이란 사물을 판단하는 힘으로 참과 거짓,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을 식별하는 능력으로써 이성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이성 능력을 양식 또는 자연의 빛이라고 말한 데카르트
데카르트는 모든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게 갖고 있는 이성 능력을 '양식' 또는 '자연의 빛'이라고 말했다. 이성은 어둠을 비추는 밝은 빛이지만 반대로 혼돈은 어둡고 예측이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감성적 욕망은 밝은 빛인 이성에 견주어 보면 어둡고 맹목적인 힘으로 이성과 대비된다고 보았다.
칸트는 사람이 이성을 잃게 되면 광기(狂氣)가 넘치게 되는데 그와 같은 것은 기쁨. 슬픔. 분노. 욕망. 불안을 만들어 내는데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해서 생기게 된다. 분노가 폭발하면 이성은 어떻게 행동하고 그것을 받아드릴지를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들은 감성이 폭발한 후에 어떤 난제들이 생기면 그것을 변명하기 위해서 가언(假言). 망어(妄語). 허언(虛言)을 하여서 또 다른 문제를 가져오게 된다.
현대 사회는 이성을 잃게 하는 많은 난제들이 상존하고 있어서 감성의 폭발로 이성을 잃을 기회가 많다. 그러한 점에 대해서 성경에서는 "미련한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羞辱)을 참는다."라는 말이 있다.
불교의 경전에는 삼독(三毒)으로 탐욕, 어리석음, 성냄을 말하고 착한 마음에 해를 끼치는 세 가지 번뇌를 말하고 있다. 분노하면 법(法)을 보지 못하고 도(道)를 알지 못한다. 욕을 참으면 성냄을 이기고 선은 선하지 못함을 이긴다고 보았다.
공자는 구사(九思)를 말하고 분이 날 때는 환란(患亂)이 일어나지 않을지를 생각하라고 했다. 코란에서도 화가 나면 참으라는 말로 "하나님께서는 감내하는 자와 함께 하신다."는 말이 있다.
부디 이성으로 불을 끄라
셰익스피어는 적을 친다고 난롯불을 지나치게 지피면 자신도 화를 입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부디 이성으로 불을 끄라,"는 말을 했다. 히포크라테스는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질병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병"이라고 말했다. "분노하지 말라, 분노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는 말이 있고 그 반대로 "분노하되 반드시 필요한 때에만 분노하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분노를 참으라는 말에 반하는 말들도 있다. 사색가 몽테뉴는 분노에 대해서 억제보다 발산을 택했다. 나는 내 격정 속으로 끓이는 것보다 폭발시키는 것을 더 좋아한다. 발산시키면 저절로 식는다. 그 뾰족한 끝을 자신을 향하게 하는 것보다 바깥을 향하게 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분노는 도덕성과 용기의 무기라고 보았다. 따라서 노여워해야 할 것에 노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부드러움으로 고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어 훈계하는 열정에 충동된 거룩한 분노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 깊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이성과 감성이 균형감각을 가지고 중용을 지킬 때 이성적 판단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성은 늘 비리와 규칙 위에 있어야 선한 것을 얻게 되지만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성은 감각과는 구별되는 지적 이해력과 직관력이다. 협의로는 학문, 진리, 영원한 실재 원리를 파악하는 정신적 능력이다. 그러나 요즘 그릇된 판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집단에 의해서 말로 논쟁을 하고 감성적 또는 기분에 따라서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어떤 욕구를 이성이 억제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 선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그 해답은 언제나 올바른 이성 판단력이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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