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사회가 남성 중심적으로만 조명되어 왔기 때문에, 그 동안 은폐되고 왜곡되어 온 여성의 삶과 활동을, 남녀가 평등한 사회로 지향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사회학은 양성간의 차이를 선천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 차이가 성차별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것으로 이해하고, 여성이란 어려서는 부모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늙어서는 자식을 따르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것에 길들여져 왔다.
하지만 오늘에 와서는 양성간에 평등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대우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믿으며 행복하게 삶을 추구하는데 맞추어져야 한다.
따라서 양자의 주관적 편견이 사라져야 하지만, 아직도 그 잔재가 여러 곳에 존재하고 있다. 양성간의 대립은 주체와 객체, 이성과 감성, 공적과 사적, 자연과 문화 등에서 이원화 구조로 나타나지만, 한쪽이 없는 사회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남성이 없는 세계가 아닌 남성 중심의 체계가 없는 사회의 지향이다. 페미니즘은 다소 어려운 말을 주장하는 것 같지만, 현재도 양성간에 서로 인식하지 못한 채, 충돌하며 존재한다.
그 예로 '사내답다.'는 말을 흔히 하는데, 그것도 따지고 보면 그러하다. 남성이 은연중에 여성보다 강해야 되고, 고통도, 두려움도, 우는 일도, 무거운 것도 들고, 앞서야 하며, 양보해야 한다는 것 모두가 그러하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 식당 같은 곳에서 자리에 앉을 때 의자를 빼서 앉게 하고, 많은 것에 우선권을 주며, 자기 부인이 아닌 다른 여성에게도 그렇게 한다. 처음 보는 양성간에도 아주 친절하게 "하이" 하며 웃고 인사한다.
우리는 자기와 관계없는 양성간에 인사를 잘 하지 않고, 화난 얼굴로 지나치며, 여성이 모르는 남성에게 인사하는 것을 결례로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는 윗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않지만, 미국인들의 경우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자기 이름을 잊었다고 생각해서 서운하게 생각한다.
여성이 멀리 있는 사람을 손짓으로 부르면 교양이 없다고 한다
이슬람권에서는 여자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하면 몹시 화를 낸다. 그것은 혼전에 다른 남성과 어떤 관계도 맺어서는 안 되는 규율 때문인데, 그것을 무시하고 만난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지만, 이것이야말로 남성들의 편력이다.
여성이 멀리 있는 사람을 손짓으로 부르면 교양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다. 이것은 관습적 차이로 양성간의 편력이라고 볼 수는 없다.
미국인들은 부르는 것도 우리와 다르게 손을 수평으로 들고 안쪽으로 손짓을 해서 부르는데, 우리 여성들이 만약에 그렇게 했다면 건방지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에스키모인은 머리를 끄덕이면 부정의 뜻이지만 우리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야 부정이 된다. 젊은 여성이 노인이나 시아버지 앞에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그렇게 하면 욕을 먹는다.
양성간에 이러한 신체 언어를 다르게 보는 것도 편력이다. 외국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몸이 다면 몹시 싫어하고, 잘못하면 반드시 사과 하지만, 우리는 남의 발을 밟고도 태연한 사람이 있다.
양성간에 뻔히 쳐다보는 것이 욕이 되고, 이상한 여자가 되지만, 외국인은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며 말한다. "밥이나 먹어"라는 말도 부정, 긍정, 위협적인 것이 있어서, 표정과 말의 강약을 함부로 쓰면 문제가 되지만, 양성간에 불만스러울 때 제일 많이 쓴다.
왜, 여자가 담배를 피우면 안되나
흡연 문제도 그렇다. 유럽에 가면 아들과 어머니가 손을 잡고 담배를 피우며 걸어간다. 하지만 욕을 하는 사람이 없다. 만약에 한국의 여성이 담배를 꼬나 물고 길거리를 활보하면 욕을 먹기 십상이다.
또한 한국 남성의 흡연 비율은 전체 인구의 48%가 되지만 여성의 경우는 4%이다. 더욱이 남성들은 담배를 아무 데서나 함부로 피우지만 여성들은 제한된 공간인 카페나 화장실에서 피우는 정도다. 그런데 여성들이 담배를 피운다고 난리다. 그것도 남성의 편력이다.
남성은 싸움을 잘 일으키고, 여성을 부추겨서, 싸움이 커지면 말리는 형식이고, 여성들은 눈물을 보이는 등, 실익을 얻는다. 친척을 비난하는 일도 여성이 많이 하지만, 자기 친정 일에는 몹시 화를 내고, 시댁 쪽은 잘하면서 거리감을 가지고 산다.
남성들은 대화를 자기 쪽으로 유리하게 이끌려는 경쟁심과 주도권 때문에 본질을 오도하는 대화가 많다. 양성간에 스포츠와 연속극 같이 서로 다른 취미로 인해서 텔레비전 채널로도 다툰다.
남성은 알지도 못하면서 고장난 물건을 손수 고치려고 하고, 여성은 전문가에게 완전하게 고치려고 한다. 이러한 양성간의 차이를 이해 못하면 편력이 생긴다.
여성들은 사소한 정보를 잘 교환하지만, 남성들은 그 반대로 중요한 것도 혼자서 처리하려고 해서 다툰다. 또한 선천적으로 남성은 여성에게 약하다.
젊은 남성이 예쁜 여성을 보면 정상적인 의사 소통이 안 된다. 무조건 황홀경에 빠져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 못해서 낭패를 본다. 미모인 여성이 길거리에서 차가 고장나면 도와주려는 일도 그러하다.
남성들이 불리하면 여성들에게 "집에서 애나 보지, 뭐 하러 돌아 다녀"하고 서슴없이 그런 말을 한다. 그것은 불만이 생겨서 힘을 사용하겠다는 위협적인 말이지만, 이 말이야말로 남성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편력의 전형이다.
돈을 중시하는 여성에게 굶지 않고 사는 것도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면, 요새 굶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응수하게 되는데, 그 때에 남성이 가장 화를 낸다고 한다. 그것은 남성의 자존심과 무능력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남성의 얼굴을 바로 쳐다보면 상대방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되는 관습도 그렇다. 여성이 거스름돈을 탁자 위에 놓는 것도 접촉을 피하려는 것이고, 남성이 다가오면 자세를 가다듬고 옷깃을 여미는 것 역시, 여성이 예속을 당연시하는 행위가 된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면 법률적, 제도적인 것이 아니라도 수없이 많은 양성간에 문제가 있다. 그래서 평등을 주장하지만, 오래된 관습과 유습으로 쉽게 개선되지 못한다. 하지만 양성간의 편력과 우월주의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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