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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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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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문요원들을 축출하고 검찰 및 경찰의 보안기능도 사실상 해체했다

▲ ⓒ뉴스타운
최근 인기만화이자 드라마인 '미생'을 보게 되었다. 많은 주옥같은 대사와 시도 나왔지만 역시 무역상사맨들의 치열함을 볼 수 있어 너무도 좋았다. 그리고 불현듯 1970년 초 일본의 종합무역상사제도를 도입하여 수출입국의 기틀을 세우신 박정희 대통령의 혜안이 생각났다. 총성없는 전쟁이란 수출전선에서 능력과 팀웍, 성공과 실패, 인생과 사랑을 상사맨들의 일상이 희화적이지만 어느정도 축약되어 감동을 주었다.

1970년대 당시가 위대한 것은 한일국교정상화와 월남전 참전 등으로 시작된 조국근대화의 위대한 구상이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수출진흥을 위한 총력체제를 구축한 점이다. 이것은 한민족이 숙명처럼 안아온 가난의 굴레와 한반도권에서 벗어나 경제와 국제 사회로 진출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국제경영계에선 이 시기를 국부 구축의 1단계인 요소 조건의 시기로 평가한다.

이후 한국은 1980년대 투자단계( 2단계 )로 진입했다. 하지만 그후 한국은 소위 한국병이란 국가지도력의 실종을 겪게 된다. 민주화 이후 1990년대는 국가경제의 장기계획은 사라지고 국가정책은 표류하며 사회적으로는 방종이 넘쳐 소위 "샴페인을 너무 일찍터트린" 격인 거품경제시대를 맞이 했다. 그리고 거품경제의 종말은 1997년 IMF로 나타났다.

이 와중에 정권교체는 더욱 치명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국가운영방식의 전환보다 가시적이고 단기적인 처방을 낳았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박정희 대통령이 육성한 수많은 기업들이 일방적으로 정리되었다. 또한 진보로 위장한 DJ정부는 국가위기를 정권의 강화를 위해 악용하는 재능도 있었다. 안기부를 국정원으로 개명했을 뿐아니라 수많은 대북전문요원들을 축출하고 검찰 및 경찰의 보안기능도 사실상 해체했다.

이후 한국경제는 기나긴 침체경제의 시대로 이어지고 있다. 초기엔 경제활성화를 위해 신용카드와 가계대출에 제한을 완화했으나 민주화 이후 수출과 국가경쟁력이 없는 상황에서 가계부채는 폭증하기 시작했다. 경제는 절반이 순수 경제가 아니라 양식(교양), 문화 등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입증되었다. DJ정부의 원죄성은 이후 또다른 종북(친북)정부로 이어져 원칙과 방향을 잃은 나라에 치명상을 입혔다.

때로 국가는 대외적 경쟁력이 있음에도 분열과 음모로서 자멸하는 경우가 역사에서 자주 나타난다. 과거 서구세력이 침략할 당시 인도와 중국에서 그러했다. 노무현정부가 끼친 해악은 천년동안 지켜온 단일민족의 전통과 남북 대치에서 형성된 국가정체성을 해체한 것이다. 한때 탄핵까지 당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대(종)북카드에 매달린 반역성을 보인 것이다.

민주화 한 세대가 경과한 오늘날 앞에든 상사맨들의 드라마인 '미생'이 반가운 것은 과거 수출현장과 해외진출의 역군들이 국가경쟁력을 세계최강으로 견인한 시대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동을 누비고 안데스산맥을 헤매면서 수출대국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때때로 스스로 기업을 일구어 '대우(김우중)의 신화'와 같은 무용담을 남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IMF와 장기경제침체를 겪으면서 이들을 영웅시하는 진취적인 기상은 사라지고 공무원과 같은 안정적이고 비진취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세태가 지배하는 것이다.

한일국교정상화 등 지한파로 유명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는 최근 저서 [보수의 유언]에서 20세기 일본의 최대실책인 태평양전쟁개전과 '잃어버린 20년'은 보수의 원칙을 잊은 관료주의의 산물이라 분석한다. 국가비전과 애국심, 노블레스 오빌리지가 결여된 관료주의의 폐해는 한반도와 달리 700년의 전국시대를 거친 사무라이(무사)의 나라 일본의 노정객이 지적하는 아이러니 였다. 최근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이자 클린턴정부에 참여했던 조지프 나이(Joseph Nye Jr.)는 21세기는 국가경쟁력의 관건은 군사력과 경제력과 같은 하드파워(유형권력)이 아니라 글로벌 아젠다, 교육, 문화와 같은 소프트파워(무형권력)이 될것으로 예측한다. 결국 나카소네총리의 관료주의는 소프트파워의 빈곤에서 야기되는 것이다.

한국(조선)의 역사는 관료주의의 역사 였다. 전제정(세습절대왕조)의 또다른 이면은 농업관료국가였기 때문이다. 사대부사회는 무반을 천대시하고 경원했고 국제적으로 폐쇄적이며 국내적으로 차별과 국민의 대다수를 문맹과 빈곤에 방치했다. 반면 유럽의 중세적 특성을 가진 일본은 분권(번)과 다이묘를 중심한 무역(통상), 장인제도, 국민적 교육으로 서구인들의 눈에 중국과 조선과 다른 유럽적 전통을 놀라워했다. 그들은 일본인과 일본 사회의 저력을 알아보고 인정한 것이다. 일본의 우수성은 고대 로마처럼 자국의 전통이나 문화를 아끼지만 선진제도나 문물을 기꺼이 수용하는 점이었다.

오늘날 한국의 국가적 위기는 세계화시대를 견인하려는 1960-80년대의 종합상사맨들의 치열함과 이를 받쳐준 단합된 국가의식이 해체된 점이다. 또한 이것은 변화와 도전이 아니라 안정과 수구의 상징인 관료주의가 관료사회 뿐 아니라 산업, 언론, 교육 등에도 무차별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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