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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EFA 챔피언스리그 로고 ⓒ 뉴스타운^^^ | ||
유럽 최고의 인기를 넘어 지구촌 전체의 축제로 자리잡은 챔피언스리그는 그 이름에 걸맞게 역사 또한 흥미진진하다.
1955년 당시 유럽축구연맹(UEFA)의 많은 회원국들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클럽 축구보다는 국가 대표팀 간 경기에 더 큰 관심을 쏟았다.
그러던 중 프랑스 스포츠 일간지 <레키프>의 편집자이던 가브리엘 아노가 참가국을 전 유럽국으로 한정하고 수요일 야간에 토너먼트로 치를 수 있는 클럽 대항전을 구상하였다.
1955년 4월 2일부터 주요 16개 팀 대표자들이 이틀 동안 모임을 해 이 아이디어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챔피언스리그의 시초가 되는 이 대회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유러피언 컵'이라는 명칭으로 리스본에서 막을 올렸다.
유러피언 컵 초기 시절은 레알마드리드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5년 연속 우승컵을 거머쥔 레알마드리드를 대적할 상대라면 이후 3년 연속 우승을 품에 안은 아약스와 바이에른 뮌헨 정도가 있었을 따름.
하지만 절대 강자는 없는 법. 내로라하는 클럽들이 모여 경기를 치르는 만큼 어떤 팀도 장기 집권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이후 진행된 챔피언스리그의 특징이었다.
그렇게 지속되어 온 유러피안컵에도 일대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줄곧 유러피언 컵이라는 명칭 아래 진행된 토너먼트 경기가 1992/93 시즌에 이르러 현재의 라운드 로빈 방식과 전통적인 토너먼트 방식을 혼합한 '챔피언스리그'로 변경된 것.
챔피언스리그의 결승전이 열리는 5월 마지막 주 토요일은 유럽 축구팬들에게 일 년 중 가장 성스러운 날로 기록될 정도로 유럽 전역에서 챔피언스리그의 의미는 각별하다.
그러나 챔피언스리그 역사에서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악몽으로 남는 두 개의 크나큰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1958년 2월 챔피언스컵 준결승에서 레드스타 베오그라드 팀을 격파한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귀국길에 재급유를 위해 독일의 뮌헨에 착륙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졸지에 갑작스런 비행기 폭발로 알짜배기 주전 선수를 여덟이나 잃어 버리는 참사를 당한 것이다. 당연히 최고의 인기구단이었던만큼 당시 사망자 가운데는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요 선수 3명도 포함돼 있었다. 비단 한 클럽만의 비극으로 그치지 않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상처가 아물 즈음 1985년에 또 한 번 비극이 찾아왔다. 잉글랜드의 리버풀과 이탈리아의 유벤투스가 결승에서 맞붙은 벨기에의 브뤼셀 헤이젤 경기장에서 훌리건들의 폭동이 발생해 양쪽 팬들을 갈라놓은 펜스가 붕괴되면서 39명이 사망했고 250명이 부상당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이 사고는 챔피언스리그 역사에서 지우지 못할 상처로 남았다. 이 사고로 잉글랜드 클럽의 국제 대회 출전이 5년간 금지되기도 했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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