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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뜻한 마음으로 시를 쓰는 홍금자 시인 ⓒ 뉴스타운^^^ | ||
홍금자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2개월 전, 시인의 집 겸 출판사에서 였다. 아담하고 따스함이 묻어나오는 그녀의 집은 ‘시 마을’이라는 출판사로 쓰이기도 한다. 큰 도시권의 삶에서 작은 마을을 만든 시인의 집을 찾았다.
아름다운 삶의 반추
처음 홍금자 시인을 만났을 때, 시뿐만 아니라 삶과 얼굴에서까지 따뜻함이 묻어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시낭송을 하며, 시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는 독자들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그녀는 유난히 “독자들을 위해”라는 말을 자주 했다.
87년 예술세계 등단한 뒤, 그녀는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시를 대했다. “독자들을 위해” 그리고 “좋은 시를 보급하기 위해” 이 두가지 마음만으로 홍금자 시인은 시를 일상으로 끌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녀의 일상이며, 아름다운 삶을 끝없이 써내려가는 시인의 반추이다.
그녀가 처음 시 낭송을 한 것은 경기도 장흥의 한 찻집에서였다. 지금의 마음처럼 그 때도 그녀는 오직 좋은 시를 알리기 위해 시 낭송을 했다. 그녀의 스승이자, 시낭송의 오랜 동반자인 황금찬 시인과 함께 그녀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무려 7년동안 시 낭송을 했다고 한다.
홍금자 시인에게 시 낭송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그녀가 시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가만히 시를 써내려가듯 독자들에게 나지막히 속삭이는 시 한 줄, 한 줄은 그녀의 삶에 쓰여진 시구와도 같다.
시 낭송은 단순히 시를 암기해서 읽는 게 아니예요. 그 시의 정서를 온 마음으로 읽어내야 하는 것이 시 낭송이죠. 저는 시 낭송을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문학이라는 예술 장르를 퍼포먼스처럼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시 낭송을 하면 마음이 순화되고 언어가 순화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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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뜻한 마음으로 시를 쓰는 홍금자 시인 ⓒ 뉴스타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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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움의 감성이 묻어나는 시집 ⓒ 시마을 ^^^ | ||
흔한 질문이지만, 예술가들이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이것이다. 예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진부하지만, 각자의 관점을 엿볼 수 있는 질문이다. 그러나 의외로 예술가들은 예술에 대해 거창하게 말할 줄 모른다. 거창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예술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리라. 홍금자 시인 역시 거창한 예술관이 아닌 소박한 예술관을 털어놓았다.
자기 자신을 보이기 위해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많죠. 그런데 자기 자신을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 문학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시낭송을 하면, 작은 사회가 변화되는 것을 느끼죠. 물론, 큰 변화가 아니라 미세하고 보이지 않을 수 있는 변화일 뿐이예요. 그렇지만, 그 변화야말로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시작 아닐까요?
작은 사회의 미세한 변화. 소소한 일상처럼 털어놓는 예술관. 이것이 그녀의 삶과 문학을 지탱해주는 핵심이었다. 단지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것. 홍금자 시인이 꿈꾸는 작은 세상이다.
이제 홍금자 시인이 꿈꾸는 세상에 변화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그만큼 시를 공유할 수 있는 인구가 증가해가고 있고, 다시 서정시를 노래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그동안 독자들이 시를 외면했던 것에 대해 홍금자 시인은 ‘난해시의 오랜 지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난해시의 대표적인 시인은 이상으로, 현상과 사물에 대해 현실에서 벗어난 인식과 접근방법을 택한 시다. 물론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이 크지만, 난해시의 도입으로 독자들은 “시는 어려운 것”이라 규정하게 됐고, 시인들은 스스로를 “어려운 시를 쓰고 있다”는 생각하게 됐다.
시인들의 시는 같은 문학인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일반인들에게 알려져야 진정한 마음의 시죠. 물론 시는 개성적이고, 개인적인 장르입니다. 나름대로의 작품성, 독창성은 전문가의 비판이 필요하지만, 시 본연의 기능은 정신을 맑게 해주는 것이죠.
인터뷰를 마치고 홍금자 시인의 집을 나오자 눈발이 쏟아졌다. 그러나 나는 이제 갑작스런 날씨의 변화에도 따뜻하게 웃을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 내 손에 커다란 우산 하나를 쥐어주고, 눈바람속에서 멀어질 때까지 나를 바라봐준 시인이 있었기에. 그녀가 준 우산이 따뜻한 마음으로 모든 눈발을 맞아주었기에.
마치 까치발 들어 우물을 들여다봤던 유년의 기억처럼. 우물속의 구름이 걷히고 작고 작은 시인의 따뜻한 집이 그곳에 숨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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