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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의 몸은 아름다운 우주이다^^^ | ||
또한 사람들은 ‘부끄럽다’라는 인지능력이 감정화되어있기 때문에 동물들과는 다르게 몸을 인지해낸다.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종족의 번식을 추구하며 생식기와 몸을 대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에게 몸은 본능적으로 ‘성’을 환기시키는 시각적 효과로 작용하게 되었다.
성의 영상화와 이미지가 시각적으로 자극을 시키면서 사람들에게 성은 밝혀서는 안 될 "치부"의 관념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것이 동물과 사람이 이성의 몸을 대할 때 느끼는 감정, 행동의 대처 방법이 차이점을 유발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라 지적할 수 있겠다.
이처럼 인간은 누구나 청소년기나 사춘기 때에 이성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느끼며, 나와 다른 성의 몸을 보고 싶은 욕구와 감정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자식이 분별없는 나이에 이성의 몸을 보는 것에 대해 우려 섞인 감정을 내비치는 것이 대부분 우리 시대의 부모들의 모습이다. 바로 이러한 관점의 차이에서 부모와 청소년간의 성에 대한 시각의 차이점이 생기며 청소년기에 성은 ‘금기시되고 말조차 할 수 없는 존재’로 각인되었다.
어려서부터 ‘이성의 몸은 보아서 안 될 것’으로 어른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받아 길들여진 청소년들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이성에 대해 갖는 호기심과 관심이 잘못된 것인지, 잘된 것인지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그 누구도 자신이 느끼고 있는 욕망이 본능적인 것이라 설명해주지 않았다. 다만 그것을 억제하고 금지시키는 것을 가르치며 머릿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욕망을 거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 본능을 억제하고 금지시키는 것. 그것이 어른들이 제도권과 주입식의 아이들을 쉽게 다룰 수 있는 가장 쉬운 성교육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의 성과 봉건의식의 잔재, 그리고 여성의 몸
흔히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 일컫는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어른들과 제도권 사회에 길들여지지 않고 반항하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이를 영웅으로 대접한다. 이른 바 “짱”이라는 이름아래 이들은 비제도권에서 또 다른 제도를 만들어가며 자신들의 시기를 즐기는 것이다.
그만큼 감정적으로 순화되지 않고, 타협되지 않을 나이에 오히려 어른들은 모든 것을 금지시킴으로써 사회와 제도에 타협할 수 있는 인격이 형성되리라 믿는 듯하다. 그러나 청소년기의 심리는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만 함으로써 “짱”이 되는 변형된 영웅주의가 팽배하는 세계가 청소년들의 세계이다.
그러나 "짱"이 되고 싶어하는 심리는 어디까지나 남학생들만의 심리이다. 여학생들의 경우는 반대로 여성이 가지고 있는 몸과 성장과정에 겪게 되는 몸의 변화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부끄러워한다. 특히 초경을 겪은 여학생들은 여성, 엄마가 된다는 자긍심을 가지게 되는 것보다 누가 볼까봐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하며 의기소침해진다.
초경뿐만 아니라 폐경까지 모든 것을 감추어야 하는 여자들의 '월례행사'는 옛부터 봉건사회속에서 여성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사회의 윤리적 구조가 한 몫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른들의 성교육에서 "여성은 무조건 정조를 지켜야 한다. 몸을 지켜야 한다."라는 의식을 물려받은 탓도 있다. 즉, 우리 사회는 이유없이 '아이를 낳는 모체의 몸'을 무조건 '성적인 몸'으로 환기시키면서 여성의 몸 자체를 금기와 금언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한 예로 여학생들이라면 월경을 하는 날이 되면 이런 경험이 한번씩쯤은 있었을 것이다. 남자가 주변에 있을 때 눈치를 보며 몰래 주머니에 생리대를 집어넣고 화장실에 갔던 일, 남자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말하면 괜히 몸을 웅크렸던 일, 가게에 가서 남자가 있나 없나 보고 생리대를 재빨리 계산하고 숨겨야 했던 일, 그리고 생리대를 사는 게 챙피해서 동생이나 엄마에게 시킨 일, 이것이 여자들이 매달 일주일씩 1번은 겪어야 하는 행사이다.
최근에 와서는 여대생을 주축으로 하여 월경을 남자들에게 체험하게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여성의 몸을 알리고 있다. 이러한 행사끝에 다다른 결론은 남자들 역시 여성의 몸을 단지 이성에 대한 욕망으로만 느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성 역시 광고 카피처럼 "자신있게 당당하게" 세상앞에 나설 수는 없어도 우리의 몸을 부끄러워 해서는 안 된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나는 봉건이 지나치게 나쁜 사회적 잔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봉건과 전통의 보수의 의식 자체가 아니라, 현대의 진보에 맞게 의식을 개혁하지 않음에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옛 봉건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화의 물결과 범람하는 정보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여성의 몸과 변화에 대해 똑바로 말해주지 못하는 것은 어른들의 관념속에 아직도 봉건시대의 잔재가 남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여성의 몸은 단순히 성적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도구가 아니다. 한 달에 한 번, 겪는 생리는 남자나 다른 사람에게 드러낼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움츠러들 만큼 감출 것이 아니다. 당당하게 여성의 몸 스스로를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치부나 수치가 아닌 것을 깨닫게 된다. 왜곡되고 낡은 성의 관념에 의해 여성이 가지고 있는 신비스러운 몸이 금언시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끝없이 생성과 소멸로 준비하는 공간. 그곳이야말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사랑이 가득한 우주가 아니겠는가. 10개월동안 생명을 품고 있는 배보다 더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은 언제나 여성의 몸엔 생명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증거로 우리는 치부가 아닌 월경을 겪는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사랑의 우주를 품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여성의 몸이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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